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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청하

夫淸河
1943년 9월 1일 ~ ([age(1943-09-01)]세)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사회기관단체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제주(濟州)[1]이다.

2. 생애

1943년 9월 1일 전라남도 제주도 조천면(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서 아버지 부사림(夫仕琳, 1917. 10. 5 ~ 1948. 10. 26)[2]과 어머니 순흥 안씨 안인수(安仁洙, 1923. 3. 20 ~ 2007. 12. 1)[3] 사이의 1남 1녀 중 외아들태어났다. 외도국민학교, 귀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하고 어느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6살 되던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아버지가 외출한 뒤 고향 마을 몇 사람과 함께 어느 굴에 피신했다가 1948년 10월 26일[4] 토벌대의 손에 변을 당했고, 그 또한 토벌대를 피해 마을에 있는 어느 굴에서 3일간 숨어 있었다. 외조부 안성오(安成五)가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했고, 외조모와 함께 친조모 광산 김씨(1875. 12. 1 ~ ?. 1. 28)[5]의 집안 사람으로서 순경으로 근무하던 '김 순경'을 찾아 구좌면 김녕리로 갔다. 그러나 그로부터 '폭도들은 여기에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조천면 북촌리로 가서 외조모의 손에서 자라났다. 이후 인근 동복리에서 공비들의 기습으로 토벌대 소속 군인 2명이 전사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49년 1월 17일 조천면 북촌리에서 마을 주민 300여 명이 학살당한 '북촌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그 또한 '너븐숭이' 근처 밭으로 끌려나갔으나 토벌대가 총살형을 집행하던 순간에 외조모가 치맛자락에 그를 숨겼고, 때마침 사격중지 명령이 떨어져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이튿날 군인들의 지시로 조천면 함덕리로 갔다가 그 사이 어머니가 박씨 집안으로 개가했기 때문에 제주보육원[6]에 보내졌고, 이곳에서 12년간 생활했다.

중앙대학교 졸업 후 1972년 11월부터 1979년 4월까지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 회장을 지냈고, 1973년 2월 28일부터 1981년 1월 18일까지 제4·5·6·7대 한국사회사업가협회(現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1976년에는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상록보육원 대표이사 겸 원장에 취임해 현재에 이른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제주도 제주시·북제주군·남제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현오봉 후보와 무소속 변정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제주시·북제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김우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 열공계(悅公系) 20세 하(河) 항렬.[2] 제주부씨족보 권2 361쪽에는 夫仕으로 등재되어 있다.[3] 안성오(安成五)의 딸이다.[4] 양력 11월 26일[5] 김승영(金承永)의 딸이다.[6] 제주시 이도일동 삼성혈 근처, 용담동, 화북동, 외도동 등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