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불새》의 마지막 에피소드.[1]특이하게도 과거와 미래의 사건을 다룬 에피소드가 교차하며, 과거에도 미래에도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는 구조로 이어진다.[2] 과거는 백제가 멸망한 뒤 얼마 되지 않은 고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미래는 불새를 모시는 종교단체 '빛'이 세계를 지배하고 지하에서 빛을 무너뜨리려 하는 '쉐도우'의 활동을 다루고 있다. 봉황편의 이야기처럼 종교를 권력의 수단으로 삼으면 어떤 비극이 생기는 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과거편에서는 불교와 향토신앙의 대립을, 미래편에서는 빛과 쉐도우의 대립을 보여주며 과거편과 미래편 모두 기존의 억압하던 지배층을 무너뜨리니 새로운 지배층이 새로운 신앙을 수단을 삼아 또 다른 억압체재를 만드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에 질린 주인공과 히로인의 인간의 세계를 떠나 잊혀진 신령들의 세계로 떠난다.
2. 줄거리
2.1. 과거편
과거편의 주인공은 이누가미 스쿠네.(犬上宿禰: 일반적으로 쓰이는 犬神이 아니라 犬上이다.) 본래 하리마라는 이름의 백제왕족으로 의자왕의 아들인 여풍장(풍왕)을 따르고 있었으나 백강 전투[3]에서 당나라 군대에게 붙잡혀 산채로 얼굴 가죽이 벗겨지고 대신 늑대 얼굴 가죽이 뒤집어 씌워져서 늑대의 머리를 가지게 된 인간이다. 그 대신에 스쿠네는 신과 요괴, 인간 사이를 오가는 반 인간, 반 요괴적인 존재가 된다.이후 호랑이와 싸우다가 상처를 입고 빈사 상태에 빠진 것을 지나가던 노파[4]가 치료해줘 겨우 살아남은 스쿠네는 당나라군의 추격을 피해 왜국으로 도망치려 하는데 마침 백강 전투에서 대패하고 부하들에게 프래깅을 당한 왜의 장군 아베노 히라후를 발견해 같이 배를 타고 백제를 떠나게 된다. 일본으로 건너온 스쿠네는 이누족(狗族)이라는 요괴의 종족과 접하고, 족장의 딸인 마리모를 노파의 의술을 따라해 살려줘서 이누족의 족장인 루베츠의 신임을 얻고 마리모에게 연모를 받게 된다. 덕분에 이누족의 길 안내를 따라 장군을 조정으로 돌려보내고 그 공으로 왜왕에게 영지를 하사받는다.
그리고 노파의 의술과 본인이 펼치는 선정으로 인해 주민들에게 큰 신임을 얻고 영지도 풍요롭게 바뀌어 이누가미 마을의 호족으로 안정적으로 자리잡는다. 참고로 같이 다니는 노파에게는 구치이누(腐狗 = 썩은 개)라고 불리는데, 만화에 나오는 주석대로 실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백제의 욕이다(...) 백제의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복신을 풍왕이 제거하는 과정에서 나온다.[5]
몇년이 지나고 야마토 왕권은 강력한 정권 안정을 위해 각지에 불교를 도입하려 하는데, 백제의 조상신을 믿던 스쿠네와 토착 종교를 믿던 영지민들은 거기에 반발한다. 인간의 세계에서 반발이 확산되는 한편으로, 신들의 세계에서도 불교의 신들과 토착의 요괴(과거에는 신으로 모셔지던 존재들)들이 싸움을 시작하나 요괴들은 불교의 신들에게 패배하여 도망치게 된다. 이누가미 스쿠네도 조정의 군대에 붙잡히게 된다.
이누가미 스쿠네는 조정의 분란을 해결하는데 공적을 세우고, 결국 왕자 오오아마노 미코는 불교를 강제로 전파하여 토착신앙을 말살하는 것을 중지한다. 한편 그 과정에서 싸움 속에 중상을 입었던 스쿠네는 얼굴을 덮고 있던 늑대 가죽이 썩어 벗겨지고, 그 안에서 멀쩡한 인간 얼굴을 되찾게 된다. 하지만 그 대가로 스쿠네는 반인간 반요괴의 존재가 아니게 되어 요괴들과 소통하던 능력과 기억을 잃어버리며 온전히 인간 세계에 속하는 몸이 된다. 조정에서는 스쿠네에게 벼슬을 내리려 하지만 스쿠네는 야인으로 살기 위해 거절한다. 스쿠네를 사랑하던 이누족의 요괴 소녀 마리모는 이제 스쿠네의 앞에서는 암컷 늑대의 모습밖에 보일 수 없게 되어 절망하지만 부모에게 먼 훗날 다시 태어나 맺어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왕자 오오아마는 결국 최초의 덴노인 덴무 덴노가 되어, 불교도 토착신앙도 아닌 태양을 국가의 상징으로 삼기로 결정한다. 부연하자면 이 덴무 덴노 이전의 정권은 백촌강 전투(백마강 전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백제와 대단히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백제 멸망 이후 덴무는 한반도와의 연을 끊고, 외래 종교였던 불교보다는 토착적인 종교를 통해 자주성을 내세우려고 한 것이다. 덴노라는 명칭은 덴무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일본서기 등을 편찬하기 시작하여[6] 이전의 국왕들도 덴무로 소급하고 과거를 독자적인 역사로 조작하였다. 이후로도 불교의 세력은 크게 융성했으나 토착종교 역시 융성하게 된다.[7]
2.2. 미래편
미래편의 주인공은 반도 스구루. 불새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 '빛'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빛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지하에 숨어 있는 반체제 조직 '쉐도우'의 일원이다. 스구루는 '빛'이 신체로 모시고 있는 불새를 빼앗아 오라는 임무를 받고, 몰래 지상으로 올라온다. 이 과정에서 '빛'의 순찰팀 하나를 공격해 없애버리는데 자신보다 연하인 여병사는 죽이지 않고 떠난다. 그 후 '빛' 측의 간부에게 시집을 간 자신의 누나의 집에 숨었다가[8] 누나로 변장하고 빛의 신전에 들어가서 불새를 탈취하려 하지만 빛이 모시고 있는 불새는 단순한 모형에 불과했다. 빛의 교단에 붙잡힌 스구루는 빛의 경전이 스피커로 반복되는 '늑대 가면'을 강제로 쓰고 교화소에 들어가게 된다.반도 스구루는 교화소에서 자신을 적대시하는 여죄수 고누마 요도미를 만나게 된다. 이전에 자신이 살려주었던 그 여병사가 스구루를 놓친 벌로 죄수가 되었던 것. 결국 그녀와 서로 죽고 죽이는 대결을 벌이게 되지만 문득 그녀에게 반해 서로 사랑하게 된다. 결판이 나지 않으면 둘 다 죽는 상황이었기에 찌르게 되지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으로 요도미는 상처를 회복하여 살아나게 된다. 그러는 한편으로, 스구루는 자신의 몸에 점차 늑대의 털과 같은 검은 털이 돋아나고 이누가미 스쿠네의 기억을 꿈에서 떠올린다.
마침내 쉐도우는 불새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려 '빛'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봉기하여 빛의 교단을 공격한다.[9] 스구루는 이 와중에 변신이 급격히 진행되어 전생의 이누카미 스쿠네와 같이 늑대의 얼굴을 한 인간이 된다. 그리고 고누마 요도미도 과거에 자신이 스쿠네를 사랑하던 이누족의 마리모였다는 전생을 기억해내고 늑대의 모습으로 변한다.[10] 스쿠네는 예전부터 자신을 좋아하던 쉐도우의 소녀 이노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빛의 교단에 돌격하여 자폭으로 인간의 삶을 마친다.
스구루의 아버지인 쉐도우의 지도자는 스구루를 쉐도우의 영령으로 모시게 하고 무너진 '빛'을 대신하여 과학기술로서 불로불사를 주겠다는 교리의 '불멸교'를 창시한다.
2.3. 결말
인간의 모습을 완전히 버리고 과거에 이누카미 스쿠네였던 모습으로 돌아간 반도 스구루는 마리모의 모습으로 돌아간 고누마 요도미와 만난다. 그들은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손을 맞잡고 이누족이 떠나간 요괴의 세계로 함께 간다.3. 애니메이션
2004년 나온 TV 애니메이션 8~11 화가 태양 편에 해당한다. 감독은 타카하시 료스케. 작화감독은 니시타 마사요시. 줄거리가 상당히 많이 각색되었고, 원작을 보고 나서 보면 서로 다른 작품인가 싶기도 할 정도다. 과거와 미래가 교차되지만 과거만 다루었고 미래는 다루지 않았다.4. 기타
불교를 침략자로 묘사한 몇 없는 작품. 보통 불교는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11] 특이한 사례. 그리고 일본 만화인데도 고대 백제인이 주인공이라는 점도 특이하다.[12]백제 왕족 출신인 스쿠네가 불교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고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로 묘사되는데, 정확히는 불교에 대한 교리 자체를 부정한다기보다 자신은 토착신과 불교 가운데 어느 쪽도 아니고, 자신들이 믿어오던 신을 자유롭게 믿으며 살고 싶은데 거기에다 불교를 강요하며 토착 신앙을 배척하고 말살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불교에 적대적인 것도 불교 교리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극중 불교 승려들이 왕권에 영합해서 불교를 내세워 이누 일족을 비롯한 토착신앙들을 마귀로 부르며 배척, 말살하려는 태도로 이누가미 스쿠네를 먼저 습격해서 반격한 것에 가깝다.
백제는 작중 배경인 7세기보다 훨씬 이전인 4세기부터 불교를 신봉하였고, 왜국에 불교를 전달해 준 국가도 백제이며, 불교 수용 문제를 놓고 숭불 입장을 보였던 소가씨 일족마저 우려할 정도로 나라 전체가 불교에 크게 심취해 있었는데 백제의 왕족이었던 스쿠네가 불교를 믿지 않았다는 점이 의아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신궁(백제) 문서 참조) 무왕이 세웠다는 궁남지가 도교적 요소가 있음이 지적되거나, 백강 전투의 패배로 주류성이 함락되던 날 백제 유민들이 통곡하면서 "오늘로써 백제의 이름이 끝났으니, 조상의 무덤조차 뵙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百濟之名 絶于今日 丘墓之所 豈能復往)"고 한탄한 것을 보면 백제가 불교 일변도였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극적인 시나리오를 위한 각색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국내 정발 단행본에는 이 바로 뒷 페이지에 이누야샤의 광고가 붙어 있어서 뭔가 느낌이 기묘해진다.
러버즈7, 연애디스토션, 우이우이Days 등을 그린 작가 이누가미 스쿠네의 예명과 오너 캐릭터는 여기서 따왔다.
[1] 원래는 마지막 에피소드가 아니었지만, 데즈카 오사무가 완결을 못 하고 사망해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2] 안타깝게도 2004년에 제작된 TV 판에서 다뤄진 태양편의 경우엔 과거의 이야기만 다뤄진다. 사실 2004년판 불새 애니는 전체적으로 평이 별로 좋지 않다.[3] 백제를 돕기 위한 일본의 원군이 한반도에서 궤멸된 전투. 일본에서는 백촌강 전투, 한국에서는 백마강 전투라고 부른다.[4] 본인은 스스로를 신선이라고 소개하는데 사실 신선보다는 괴짜 노인네로 많이 비추어진다. 다만, 의술이나 점술, 처세술은 신선이라 자칭할 정도로 뛰어나고 필요할때는 진지하게 임해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5] 일본서기 덴지 2년(서기663년) 6월조. “백제왕 풍장이 복신의 모반할 마음을 의심하여 가죽끈으로 손바닥을 꿰어 결박하였다. 그러나 풍장은 자기로서는 처단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신하들에게 “복신의 죄는 이미 이와 같다. 참할 것인가 않을 것인가” 하고 물었다. 달솔 덕집득은 “이와 같은 악역자를 방치하여서는 안된다”고 말하니 복신은 집득에게 침을 뱉고 ‘이 썩은 개 못난 노예(腐狗癡奴)같은 놈아’ 하고 말하니 왕은 건아를 소집하여 복신의 목을 베고 소금에 절였다.“[6] 완성은 후대[7] 즉위하기 전의 오오아마는 형인 덴지 덴노의 불교 진흥 정책에 반발하고 사찰에 벼락이 떨어져 전소되자 "신들께서 분노하여 벼락을 내리신 것"이라고 하는 등 불교에 대해서도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지만, 즉위한 뒤에는 누가 자신의 자리를 넘볼까 두려워하면서 "형님의 그 편집증적인 성격이 이해가 된다"며 "왕권을 지키고 강화하는 데에는 역시 형님이 했던 대로 불교가 쓸모가 있겠다"며 즉위하기 전과 달리 불교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형이나 조카와 달리 불교를 섬기는 것이 아닌 통치 수단으로 여긴다는 점이 다르다.[8] 사실 반쯤은 스파이다. 더군다나 빛의 교주와 쉐도우의 리더는 사실 형제.[9] 시살 불새는 존재했지만 잡지 못해서 가짜를 만들었다. 더군다나 고누마 요도미가 죽지않는것 때문에 지금 있는 불새는 가짜라고 선동해, 내부의 병사들까지 빛을 배반한다.[10] 이 때 교주는 전신화상으로 사망.[11] 더구나 작가인 데즈카 오사무 본인이 석가모니의 생애를 만화로 그리기까지 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다만 같은 불새 시리즈 안의 봉황 편에서도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불교에 대해 다소 시니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불교라는 종교 자체보다는 불교를 내세워 권력 강화에 이용하는, 즉 부처와 왕을 동일시하는 위정자들을 비판한 것에 가깝다.[12] 사실 한국에서도 고대 백제인이 주인공인 만화는 별로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