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6 20:40:56

빈센트 친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사건의 배경과 과정3. 창작물

1. 개요

Killing of Vincent Chin

1982년 미국 디트로이트시에서 중국계 미국인인 빈센트 친(Vincent Jen chin, 陳果仁)이 공장에서 해직당한 2명의 미국 백인과 시비가 붙어서 결국 피살당한 사건.

2. 사건의 배경과 과정

당시 일본경제적인 급성장과 미국의 막대한 대일 무역 적자 등으로 미국인들은 분노하였고 경제적 패권의 지위를 일본에게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짐에 따라 반일 감정이 강해졌으며[1] 특히 일본산 자동차가 미국으로 대량 수입되면서 미국 자동차 업계의 입지는 좁아져만 갔다. 디트로이트시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인종적 반감의 화약고였고 미국 국내 시장에서 일본 자동차의 침투가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하락을 가속화시킴에 따라 근로자들은 그 책임으로 일본을 지적하였으며 일부 국수주의 단체들이 일본산 자동차를 때려부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할리우드 등에서 제작된 영화 중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낸 작품들을 꽤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1982년 크라이슬러 공장 감독관이었던 로널드 에벤스(Ronald Madies Ebens)와 해고된 의붓아들인 마이클 니츠(Michael Nitz)는 빈센트 친이 다가오는 결혼식에 앞서 친구들과 함께 총각파티를 하고 있던 지역 술집 밖에서 빈센트 친과 시비가 붙었다. 그들은 빈센트 친이 일본계가 아닌 중국계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 자동차의 침투와 관련하여 빈센트 친을 일본인으로 단정하여 붙잡고 공격하면서 "너같은 XX 때문에 우리가 실직했다"는 인종차별적인 폭언을 퍼부었고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강타하여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혔다. 빈센트 친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뇌손상으로 절명하였으며 유언"이건 공평하지 않았어" 였다.

에벤스와 니츠는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재판에서 집행유예 3년과 약간의 벌금형만 선고받고 풀려났다.[2] 그래서 유족들이 반발하여 항소했지만 항소심에서도 결국 범인들은 무죄를 선고받아 풀려났다.[3] 이 사건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커다란 반발을 샀다.

3. 창작물

1988년 재미교포 영화감독 크리스티나 최가 이 사건을 다룬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는가?(Who Killed Vincent Chin?)"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작품성을 인정받아 198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으며 2021년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보존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1] 이때는 미국의 뒷골목에 일본인들을 겨냥한 "너희 나라에 다시 핵폭탄을 떨어뜨리기 전에 빨리 미국에서 꺼져라!"라는 협박성 낙서까지 적힐 정도였다. (출처: 거리로 나온 넷우익/ 야스다 고이치 저/ 후마니타스)[2] 3780달러였는데 벌금이 3000달러였고 780달러는 법원 비용이었다.[3] 이 중 1명은 나중에 인터뷰에 나와서 자신의 죄를 시인했기 때문에 징역 25년을 선고받았지만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무죄로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