士大夫
1. 개요
고대 중국에서 구분한 신분 질서로, 고려, 조선 시대 문관 관료의 총칭. 사대부란 士(지식인)와 大夫(관료)의 합성어로서, 학문적 교양과 정치적 실무 능력을 갖춘 학자적 관료를 일컫는다. 쉽게 말해서 지식인과 관료를 합친 명칭이다.2. 설명
본래 대부(大夫)와 사(士)는 같은 계층이 아니다. 주나라 시대 기준으로 대부는 가(家)를 물려받는 세습 계층인데 주나라와 주나라 제도가 이어진 춘추전국시대까지 가(家)의 범위는 단순한 현대 4~5인 가족이 아니라 마을 전체의 수백 명의 속민들을 다스리는 단위로 보면된다. 반면 사(士)는 대부 처럼 가문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일신의 재능, 즉 문무를 겸비한 지식인 겸 무사 출사하는 실무자 이다.후대 한반도와 중국 왕조에서 통일왕조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나라 시대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모하는데 중앙 귀족 기존의 천자- 제후- 대부- 사 분류는 사회의 변동에 따라 변했다.
따라서 주나라 시대의 성읍국가에서 진나라와 한나라 이후의 통일제국에서 제후는 천자의 같은 성을 쓰는 친척으로 제한되고, 중앙권력에 중국 대륙을 완전히 통제한 순간 지방에서 중앙통제없이 권한을 행사하는 대부와 같은 존재는 사라졌다. 중앙에서 파견한 지방관 아래 그저 지역유지나 토호 정도로 약화 되었기 때문에 진한시대 통일왕조 이후 굳이 대부에 해당하는 계층을 찾자면 천자의 조정에 출사하는 경대부들만이 유의미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는 지식인 계층인 사와 합쳐져서 문무 관료층을 나타내는 명칭으로 변모했는데 사(지식인 士)+대부(관료 大夫)로 합쳐져 사대부라 불리게 되었다.
중국의 경우 명청시대에 과거제도는 조선시대보다 더 촘촘하고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지방시험인 수재나 거인에 합격하면 대부로 취급해주었다. 대부로 취급 된다는 것은 조정관리에 무릎을 꿇지 않고 살인이나 강상죄가 아니면 형벌이 면제되는 특권이 있었다. 왜냐 하면 예는 밑으로 서민이 지킬 필요가 없는 대신, 형벌 역시 위로 대부에 미치지 않는다는[1] 유교적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준으론 출사하기 전에 유교 소양을 갖춘 지식인이라면 사, 조정관리로 임용되면 대부로 여겼다. 벼슬 품계로는 5품이상 자급부터 대부 명칭을 쓴다. 또한 한국에서는 사대부라 하면 고려~조선 시대의 문신을 의미한다. 신진 사대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