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02:13:51

사디오 마네/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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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디오 마네의 선수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클럽 경력

2.1. 초창기

어릴 적 세네갈 다카르에 있는 아카데미 제네레시옹 풋(Académie Génération Foot)이라는 축구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 아카데미는 프랑스의 FC 메스[1]와 제휴를 맺은 관계로 매해 아카데미에서 제일 재능있는 18세 선수가 메스를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며 마네가 이런 케이스였다.[2] 그렇게 2011년 당시 리그되 소속의 메스와 프로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1군 무대를 밟게 되었고, 초반엔 부상[3]과 향수병으로 힘들어했으나 점차 자리를 잡아가며 2012년 1월 14일 SC 바스티아와의 리그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면서 프로 무대에 첫 출장했다. 2011-12 시즌 기록은 19경기 1골.[4] 그러나 이 시즌 메스는 3부리그인 샹피오나 나시오날로 강등을 당해버린다.

2.2.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이후 마네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12년 여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명문인 잘츠부르크로 이적하게 된다. 잘츠부르크에서 마네는 자신의 기량을 본격적으로 꽃피우기 시작했고, 10월 31일 오스트리아 컵에서 첫 해트트릭을 달성하고, 이외에도 경기당 1개에 육박하는 공격포인트를 꾸준히 뽑아내면서 오스트리아 무대를 평정했다. 2014년까지 리그에서 63경기 31골을 기록했다.

이에 위르겐 클롭 감독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비롯하여 유럽의 여러 강팀들은 물론, 러시아와 중국의 클럽들도 마네의 재능을 눈여겨보았고 오퍼를 넣었다. 마네는 돈을 쫓거나 무조건 빅클럽으로 가 벤치에 앉기보단 자신의 기량을 뽐낼 수 있는 곳으로 가길 원했고 결국 2014년 9월 1일, 12m 파운드의 이적료로 사우스햄튼 FC로 향하게 되었다.

2.3. 사우스햄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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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입 후 10월까지는 팀의 템포에 약간 적응하지 못하고 후보로 밀려있었으나, 12월 26일 크리스탈 팰리스 전 부터 3경기 연속 득점하며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된다. 이후 두샨 타디치와 함께 사우스햄튼의 양측면을 담당하며, 특히 강팀들을 상대로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한편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에서 2분 56초만에 해트트릭을 달성하여 EPL 역대 최단시간 해트트릭[5] 기록을 갈아치우게 되었다. 2014-15 시즌 기록은 리그에서 30경기 10골.

2015-16 시즌 시작 이후로 마네의 기량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지켜보고 여름 이적 시장에서 영입을 시도하였으나, 성사되지는 못했다. 이번 시즌에도 역시 지난 시즌의 좋은 모습을 기본적으로 잘 이어가고 있다. 비록 시즌 중반 4개월간의 골 침묵을 겪긴 했으나, 3월 20일 리버풀 전에 페널티킥을 날린 이후 각성하여 팀의 추격골, 그리고 역전골을 넣어 3-2 역전승에 기여한다. 5월 1일 맨체스터 시티 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팀의 4-2 승리를 견인했다. 시즌 최종 스탯은 15득점.

시즌 종료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링크는 점차 사그러들었고, 마리오 괴체 영입에 실패한 위르겐 클롭리버풀이 마네에게 접근하였다.

2.4. 리버풀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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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FC 바이에른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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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 6월 22일, 오피셜이 떴다. 계약기간은 2025년까지#

뮌헨에 도착후 알리안츠 아레나로 향했으며 계약서에 서명하고 바이언 유니폼을 입으면서 본인의 바이에른 뮌헨 이적을 팬들에게 알렸다. 본인의 새로운 감독인 율리안 나겔스만과도 만났으며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기자들과 입단 인터뷰를 가졌다.

등번호는 17번을 달게 되었다. 레반도프스키의 이적으로 9번을 달 기회가 올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자기가 직접 17번을 골랐다고 한다.

2.5.1. 2022-23 시즌

7월 9일 1군 훈련에 참석했으며 바이언 선수단과 인사를 나눴다. 연습경기 중에 트래핑 후 환상적인 바이시클 킥을 보여주며 첫 훈련부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슛은 아쉽게도 요하네스 솅크가 선방하였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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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미국투어 DC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선발출전하였고 바이언 데뷔전을 치루게 되었다. 전반 5분 루카스 코파도가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마네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본인의 바이언 첫 데뷔골을 기록했다. 전반 44분에는 그나브리의 골을 어시스트 하면서 전반에만 1골 1도움으로 맹활약을 펼쳤다. 페널티킥 이후에도 2번의 골망을 갈랐으나 전부 오프사이드 선언되면서 아쉬움을 삼켰지만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바이언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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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마네
DC 유나이티드와의 경기 후 모로코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 CAF 시상식에 참여했으며 모하메드 살라, 에두아르 멘디를 제치고 가장 많은 표를 받아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마네는 시상식을 마치고 미국투어에 다시 합류하지 않고 곧바로 뮌헨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미국 투어 직전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며 스트라이커 자리가 공백이 생겼고 마네는 지난 시즌 후반기처럼 폴스 나인 형식으로 최전방 공격수로 배치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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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L 슈퍼컵 라이프치히와의 경기에서 선발출전하였으며 전반 30분 그나브리의 패스를 받아 팀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후반전에 두 번의 골망을 갈랐지만 모두 오프사이드 선언되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팀은 5-3으로 승리하였고 마네는 바이언에서 첫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되었다.

리그 개막전 프랑크푸르트 전에서도 그나브리의 크로스를 받아 헤더로 팀의 세번째 골을 넣었다. 이로써 자신의 첫 두 경기에서 연속 득점에 성공했는데, 이는 10년 전 마리오 만주키치 이후로 첫 사례라고 한다. 그 외에도 유기적인 공격의 중심축이 되어주었고, 팀은 6대1 대승을 거두었다.

리그 2라운드 볼프스부르크 전에서 저번처럼 그나브리와 투톱으로 선발출전하였으며 전반 초반 그나브리의 패스를 받아 골망을 갈랐으나 오프사이드 선언되었다. 후반전에는 코너킥 상황에서 사네의 슈팅이 굴절되면서 뮐러가 헤딩으로 마네에게 연결했고 마네가 헤딩으로 골을 성공시켰으나 뮐러의 위치가 오프사이드 선언되면서 또 다시 아쉬움을 삼켰다. 경기평점으로 빌트는 2점 키커는 3.5점을 부여했다.

리그 3라운드 보훔 전에서 뮐러와 투톱으로 선발출전하였다. 전반 39분에 코망의 헤딩을 몸을 날려 골을 넣었으나 핸드볼 판정으로 골이 취소되었다.[6] 이후 2분만에 코망의 키패스를 받아 수비수를 제치고 팀의 4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후반 15분에는 코망이 페널티 박스안에서 파울을 얻어냈고 키커로 나서서 골을 성공시키면서 2골을 기록하였다. 빌트는 마네에게 최고 평점 1점을 부여했고, 빌트가 선정한 이주의 팀에 선정되었다.

리그 4라운드 묀헨글라드바흐 전에서 전반 33분 뮐러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기록했으나 VAR판정으로 오프사이드 선언되면서 골이 취소되었다.[7] 37분에 다시 골망을 흔들었지만 마네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다. 후반 15분에는 뮐러의 패스를 받아 골이나 다름없는 슈팅을 때렸으나 좀머가 선방하였고 세컨볼을 다시 슛을 했으나 또 좀머가 막아버리며 골 사냥에 실패하였다.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나는 여전히 VAR에 대해 운이 없다며 아쉬움을 삼켰다.

포칼 1라운드 빅토리아 쾰른과의 경기에서 선발출전했으며 후반 53분 그나브리의 패스를 받아 팀의 3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팀은 5-0으로 대승. 최근 6경기 5골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리그 5라운드 우니온 베를린 전에선 우니온의 텐백 전술에 고전했으며 별다른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후반 막판 우파메카노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잘 마무리해 골을 시도했으나 베를린의 키퍼 쇠노우의 멋진 선방으로 이번 경기 아쉬운 활약을 펼쳤다. 팀은 1대1 무승부.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인테르 전에서는 원톱으로 선발출전했으나 부진한 활약을 펼쳤다.

리그 6라운드 슈투트가르트 전에서 후반 35분에 교체 투입되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 바르셀로나 전에서 선발출전하였다. 전반전 39분에 토마스 뮐러와 동선이 겹치면서 좋은 기회를 놓치는 모습을 보였고 전체적으로 부진한 활약을 펼쳤다.

리그 7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 원정에서 선발출전해 부진하였고, 빌트 평점 6점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8R 레버쿠젠 전에서는 자말 무시알라의 어시스트를 받으며 리그 4호골을 넣었다. 이후 또 골을 넣었으나 파울로 인해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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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3차전 빅토리아 플젠 전에서는 왼쪽 윙어로 선발출전하였다. 전반부터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전반 20분 측면에서 볼터치 하나로 2명을 순식간에 제치더니 드리블 돌파로 4명 정도를 추가로 제치고 골을 넣으면서 팀의 3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전반 35분에는 무시알라의 골을 어시스트 했으나 VAR 결과 마네의 위치가 오프사이드 선언되면서 골이 취소되었다.[8]후반 4분에는 돌파하는 사네를 보고 크로스를 올렸고 사네의 골을 도우며 어시스트까지 기록하였다. 팀은 5:0으로 대승하였고 마네는 경기 MOM으로 선정되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4차전 빅토리아 플젠 전에서 전반 9분만에 고레츠카와의 연계 플레이로 팀의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팀은 4:2로 승리

리그 10라운드 프라이부르크 전에서 왼쪽 윙어로 선발출전하였다. 후반 9분 그나브리의 크로스를 받아 골키퍼 키를 넘기는 슈팅으로 자신의 리그 5호골이자 팀의 네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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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큰 공헌을 한 선수에게 수상되는 소크라테스 상을 수상했으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과 후반기 리버풀을 이끈 공로로 발롱도르 2위에 수상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포칼 2라운드 아우쿠스부르크 전에서 왼쪽 윙어로 선발출전하였고 잦은 턴오버, 빅찬스미스를 2회를 기록하며 팀 내에서 워스트급 활약을 펼쳤다. 그나마 좋았던 점은 키미히의 역전골 장면에서 압박으로 아우쿠스부르크 수비진의 실책을 유도해 골로 연결했다는 점. 이후 나겔스만의 인터뷰에 의하면 발롱도르 시상식으로 인해 프랑스에 다녀와서 밤을 샛기에 피곤한 부분도 있었다고 밝혔다.

11R 호펜하임 전에서 교체투입 되어 약 30분 가량 플레이했으나 왼쪽 윙에서 최악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어 팬들의 빈축을 샀다. 마네가 있는 왼쪽에선 알폰소 데이비스의 드리블 말고는 아무것도 풀리는 게 없었고, 경기막판엔 오프사이드이긴 했지만 엄청난 빅찬스 미스를 생성하는 등 눈 썩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쯤되면 마네를 벤치로 내리고 에릭 막심 추포모팅을 원톱 스트라이커로 내세우는게 훨씬 낫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5차전 바르셀로나 원정에서는 전반 10분만에 벨레린의 뒤쪽으로 침투해 그나브리의 킬패스를 받아 몸싸움에서 벨레린을 튕겨내고 마무리해 선제골을 넣었다.

리그 12라운드 마인츠 전에서 왼쪽 윙어로 선발출전하였으며 전반 5분만에 그나브리의 골을 어시스트하였다. 전반 42분에는 본인이 직접 페널티킥을 얻어내어 키커로 나섰고 키퍼에 선방에 막혔으나 세컨볼을 다시 집어넣으며 분데스리가 6호골을 기록하였다. 후반 12분에는 크로스로 고레츠카의 헤딩골을 어시스트하며 1골 2도움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리그 13라운드 헤르타 베를린 전에서 전반 11분 드리블로 중아으로 직접 공을 몰고가 우측의 무시알라에게 패스했고 무시알라가 골을 성공시키면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리그 14라운드 베르더 브레멘 전에서는 선발출전했으나 전반 20분만에 부상을 당해 교체됐다. 검사 결과 힘줄 부상으로 몇주동안 결장한다고 하며 이에 따라 카타르 월드컵 출전도 무산되었다.

1월 24일 수술을 받은 뒤 처음으로 러닝 훈련을 재개했으며 2월 1일 볼 훈련을 재개했다.

2월 6일 팀 바로 옆에서 볼 훈련을 했으며 곧 컴백이 다가왔음을 알렸다. 스카이스포츠에 의하면 파리 1차전은 너무 이르며 26일에 우니온 베를린전에 복귀가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2월 19일 팀 훈련에 복귀했다.

리그 22라운드 우니온 베를린 전에서 후반 65분 교체로 투입되면서 3달만에 부상 복귀전을 가지게 되었다. 투입된지 5분만에 더리흐트가 끊어낸 볼을 직접 드리블해서 몰고 가며 욕심내지 않고 뮐러에게 연결해 득점 찬스를 만들어줬으나 뮐러의 슛을 뢰노우가 얼굴로 선방하면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할 기회를 놓쳤다. 후반 40분에도 연계 플레이로 데이비스에게 득점찬스를 생성해줬지만 이번에도 뢰노우에 선방에 막혔다. 팀은 3:0으로 승리했고 비록 공격 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며 만족스런 복귀전을 치루었다.

리그 24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 전에서 오랜만에 선발출전하였다. 부상으로 빠진 추포모팅을 대신해 그나브리와 함께 투톱으로 뛰었다. 전반 19분 세트피스 혼전 상황 속에서 오버헤드 패스로 파바르에게 연결하여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전반 38분에는 왼발 슈팅을 때렸으나 기키에비츠의 선방에 막혔고, 전반 44분에는 팀동료에게 한 낮은 크로스가 수비수, 골키퍼의 발에 굴절되었고 떠오른 볼을 사네가 헤딩으로 집어넣으며 팀의 4번째골에 기여하였다. 후반 4분에 골망을 흔들었으나 오프사이드 선언되었고 2분 후에는 데이비스의 패스를 영점을 맞추지 못하고 왼쪽으로 어이없게 날려버렸다. 후반 27분에 마티스 텔과 교체되었고 팀은 5:3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근래 몇 경기에서는 썩은 폼을 보여주며 바이에른 뮌헨 팬들의 원성을 한 몸에 사고 있다. 특히 프라이부르크와의 포칼 경기에서는 자기팀 공격을 도와주지 못할 망정 오히려 불필요한 파울로 프리킥을 내줘 상대의 결승골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기도 했다.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맨체스터 시티 전에 교체 출전 하였으나 경기장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폼을 보여주었다.

빌트 보도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는데 경기 중에 마네에게 팀동료인 르로이 사네가 비판적인 발언을 했던 것[9]에 불만을 품고 경기가 끝난 뒤 사네의 얼굴을 폭행했다는 것. 심지어 사네의 입술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강하게 폭행을 저질렀다는 보도가 플레텐베르크 등 꽤나 공신력있는 보도들에서도 나오고 있어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하극상) 플레텐베르크에 따르면 선수단 또한 마네의 행동에 비판적이고 구단에서 벌금, 출장정지, 심지어는 방출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팬들의 반응은 축구도 못하는 놈이 팀 동료 폭행이나 저지르며 팀 케미를 망가뜨린다고 당장 꺼지라는 반응이다. 사네에게도 비판적인 바이언 팬들이지만, 그 바이언 팬들이 사네 편을 들어줄 정도로 심각한 사건인 것.

결국 공식적으로 벌금 및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아 호펜하임전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마네는 사후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선수단에게 사과를 했으며 사네와 마네 둘 다 구단 훈련장에 복귀했다. 벌금 규모는 44만 2000파운드(한화 약 7억 2000만원) 정도로 알려졌는데, 마네가 43만 파운드의 주급을 수령하는 만큼 일주일 주급 정도의 벌금형이 내렸다고 볼 수 있다.

독일 빌트지에 따르면 갈등의 원인은 사네가 경기 중 마네에게 플레이에 따른 논쟁 중 감정이 격해져 Black Shit이라는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했다고 전해졌다. 마네는 최근 숙모의 죽음에 따라 심리적으로 굉장히 어려워하는 상태였으며 사네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감정적으로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위의 인종차별적 발언 보도에 대해, Black Shit이 아니라 Black Sheep이라는 보도 또한 있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아니라 무리에 끼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사실 사네 또한 아버지가 세네갈 계열인 흑인 혼혈인인데다가 가족, 배우자, 아이들이 모두 흑인이기 때문에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보다는 이쪽이 더 설득력 있어보인다. 빌트의 보도가 세네갈 쪽 언론을 인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더욱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세네갈 쪽 언론에서는 사건이 터진 초반에 사네가 마네에게 맥도날드 가서 일이나 하라고 했다는 식의 마네를 두둔하는 거짓보도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빌트에 의하면 바이언 선수 누구도 사네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것을 들은 적이 없으며 마누엘 봉케, 필립 케슬러에 의하면 사네는 마네에게 "날 좀 내버려둬!"라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투헬 감독은 토요일 분데스리가 경기를 앞두고, "이번 일은 너무 큰 사건이었다. 마네는 사과했고, 나는 그를 믿는다. 마네가 훈련에 계속 머무르는 것은 중요하지만, 출전 정지되었고 벌금을 받게 될 것이다. 라커룸에서 일어난 사건은 라커룸에 남았으면 좋겠으며 우리 팀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런 상황이 생기는 것을 필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사건을 용인하지 않는다." 라고 해당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팀 내부에서 여전히 마네가 받는 임금에 걸맞는 폼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과 의심이 돌고 있으며 빌트에 의하면 뮌헨은 마네에게 이적 제의가 온다면, 여름에 마네를 매각하여 공격수 보강을 하고 싶다고 보도하였다.

스포르트 1 보도에 따르면 뮌헨 관계자들은 마네의 첫 시즌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최고 수준의 경험이 많은 선수가 더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훈련에서 마네의 활용에 대해 의문이 들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또한 마네가 리버풀에서 만들었던 '폭발성'이 뮌헨에서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밝히면서 경기장에 있을 때에 활동률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마네가 소유한 공에서의 경기력 효과는 확실히 떨어진 게 보인다고 보도하였다.

마네가 10월 이후 득점하지 못하면서 스카이스포츠 독일은 뮌헨이 사네와의 사건 이후로 여름 이적 시장에 판매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하였다. 올리버 칸은 스카이 스포츠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마네의 거취에 대해 질문에 대해 "마네는 여전히 자기 자신을 찾고 있으며, 많은 격려가 필요한 선수이다. 마네는 바이ㅔ른 뮌헨에서 경쟁하는 타입에 익숙하지 않다. 마네가 조만간 우리를 도와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챔스 8강 2차전 맨체스터 시티 FC전 63분에 리로이 사네와 교체되며 출전했며 크로스로 페널티를 얻어냈다. 허나 이외에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이 경기 이후 SSC 나폴리빅터 오시멘이나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가 이번 시즌이 끝나고 떠난다면 마네를 영입할것이라는 보도가 떴다.

리그 29라운드 마인츠전에서 선발출전했으며 전반 29분 칸셀루의 크로스를 받아 팀의 선제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팀은 후반 3실점하며 역전패.

2023년 5월, 첼시 FC와 링크가 뜨고 있다. 이후에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도 링크가 뜨고 있다.

사디오 마네의 바이에른 뮌헨 이적은 실패로 마무리 되는 모양새다. 실패 할 줄 몰랐던 영입이라는 운영진에 대한 변호가 이뤄지고 있는 모양이지만 리버풀을 떠나기 2시즌 전부터 경기력에 기복이 있었고 마지막 시즌에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 되는 수준까지 내려왔었다. 마네의 마지막 시즌이 그나마 유종의 미로 끝났던 건 사실상 측면에서 밀려나 폴스나인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디오 마네는 동나이대의 비슷한 클래스의 EPL 측면 공격수들에 비해 운동 능력 의존도가 매우 높고 그외 다른 볼 다루는 기술이나 킥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즉 운동 능력이 내려오는 30대가 되면 기량 자체가 가파르게 꺾일 수 밖에 없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고 바이에른 뮌헨의 마네 영입은 애초부터 복권 긁는 시도에 가까웠다. 그래서 사디오 마네의 바이에른 뮌헨 이적에 대해서도 성공 가능성을 비관하는 분석도 많았다. 무엇보다 뮌헨은 수년간 루카 토니, 마리오 고메스, 마리오 만주키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 같은 월드클래스 9번 유형 공격수의 수혜를 누려왔던 클럽이기 때문에 그와 스타일이 전혀 다른 마네의 폴스나인에 적응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윙어로서 폭발적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였다. 마네가 그동안 리버풀과 세네갈 국대에서 보여준 클래스를 생각하면 뮌헨의 레전드인 프랑크 리베리아르연 로번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유사한 활약을 기대했지만 그들의 데뷔 시즌에 보여준 활약상의 절반에도 못미친다는 평가가 많다.[10]

결국 6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세르주 그나브리, 르로이 사네와 함께 방출 리스트에 올랐다고 한다.[11]

6월 22일 빌트에 따르면 현재 마네 영입전은 뉴캐슬이 가장 앞서있다고 한다.

2023년 7월에는 알 나스르가 마네의 영입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7월 20일 90min에 따르면 알 나스르가 마네와의 개인 합의에 성공했다고 한다.

7월 28일 결국 파브리지오 로마노HERE WE GO를 띄우면서 알 나스르 FC로의 이적이 거의 확정되었다. 이적료는 약 €25M이라고 한다. 메디컬 테스트는 8월 1일에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2022-23 시즌: 38경기(선발 27경기) 12골 6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분데스리가 25 18 7 7 5
챔피언스 리그 9 6 3 3 1
DFB-포칼 3 2 1 1 0
DFL-슈퍼컵 1 1 0 1 0
합계 38 27 11 12 6

2.6. 알 나스르 FC

한국 시간으로 8월 2일 알 나스르 FC 오피셜이 떴다. 계약 기간은 2027년까지. # 등번호는 10번을 배정받았다. 이적료는 €40M.

2.6.1. 2023-24 시즌

알 나스르 FC에서의 첫 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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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클럽 챔피언스컵 준결승과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였으며, 사우디에서의 첫 트로피를 들었다.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1R 알 에티파크전에 선발 출전하여 리그 데뷔골을 넣었으나[12] 팀은 1:2로 패배했다.

3R 알 파테전에서 첫 멀티골을 기록하며 좋은 폼을 보여주며 호날두와 점점 좋은 호흡을 맞춰 가고 있으며 팀에 큰 기여를 끼쳤다. 역시 5:0으로 대승하였다.

이후로도 꾸준히 어시스트와 득점을 올리며 호날두와 엄청난 호흡을 맞춰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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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부문 세네갈 대표에 선발되어 전 경기에 출전했지만,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팀의 성적은 8강.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에 선발되었으나, EPL 경기로 인해 늦게 소집이 되어 조별리그 2차전부터 경기에 투입되었지만, 별다른 활약 없이 팀의 탈락을 지켜보았다.

2017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가봉에 선발되어 좋은 조별 라운드를 치뤘으나, 8강 카메룬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며 쓴 맛을 맛봤다. 패배 후 눈물을 보이기도.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도 좋은 모습들을 보이며 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러시아 월드컵 일본과의 조별 라운드 2차전에서 골을 기록하는 등 팀의 중심축 역할을 잘 수행했으나, 세네갈은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체력 저하의 여파인지 전술의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전반적으로 17-18 시즌 리버풀에서 보여준 과감한 측면돌파와 뒷공간 침투, 치달 등은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오히려 정적으로 볼을 소유하고 주변 동료들에게 정확한 패스를 연결하는 등 전방 플레이메이킹을 잘 수행해 주었다. 플레이가 폭발적이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이고 여유로웠다고 볼 수 있는데, 결국 세네갈이 16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도 통한 마네의 폭발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팀 동료 모하메드 살라와 비슷하게 개인의 폼은 준수했으나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감당해내지는 못한 월드컵.

2019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이집트에서 케냐 전에서 멀티골을 넣고 우간다 전에서 1골을 넣으며 세네갈을 17년만에 결승까지 이끌었으나, 알제리에게 0-1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2021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카메룬 조별리그 짐바브웨와의 첫 경기에서 후반전 추가시간 7분에 페널티 킥으로 결승골을 넣고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잔여 두 경기에서 모두 무득점 무승부를 거뒀으나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16강 카포베르데 전 뇌진탕 충격을 받으면서도 완벽한 감아차기로 골을 넣었지만 이후 득점 장면에 발생한 뇌진탕으로 교체 아웃되었다.

다행히 8강 적도기니 전에 복귀해 전반 선취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3-1 승리에 기여했다.

4강 부르키나파소 전에서 1골 1도움으로 맹활약하며 팀의 결승행의 1등 공신이 되었다. 반대쪽에서는 이집트가 3연속 연장 혈투를 벌인 끝에 올라와 팀 동료인 살라와 결승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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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 이집트 전에서는 전반 초반 PK를 얻어냈으나 방향을 읽어낸 상대 키퍼에게 막혔다.[13] 실축 이후에도 굴하지 않고 세네갈의 맹공의 중심이 됐지만 상대 키퍼의 신들린 활약 속에 경기는 연장전으로 도입했고, 연장에서도 승부가 갈리지 않아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이후 세네갈이 1개의 PK만 놓친 반면 이집트가 2개의 PK를 놓치며 5번 키커로 나서 경기를 끝낼 기회가 생겼고, 이번에는 실수 없이 왼쪽 코너로 강하게 차넣으면서 조국에게 사상 첫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 우승을 안겨주었다.[14] 이후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면서도 슬픔에 잠긴 살라를 위로해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이후, 카타르 월드컵 아프리카 최종 예선에서 승부차기 끝에 이집트에 승리하면서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로 인해 네이션스컵에 이어 자신의 팀 동료인 살라를 두 번 연속으로 좌절시킨 셈이 되었다.

2022년 6월 24일, 베냉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앙리 카마라를 제치고 세네갈 국가대표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을 앞둔 11월 9일, 소속팀에서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월드컵 출전 여부가 상당히 불투명해졌는데, 일단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11월 17일에 결국 수술이 결정되어 2회 연속 월드컵 출전은 무산되었다.[15][16]


[1] 2005년 안정환이 뛰었던 클럽이다. 하지만 단 6개월만 뛰고 독일 분데스리가의 뒤스부르크로 이적했다.[2] 파피스 시세디아프라 사코도 이렇게 메스로 진출하였다.[3] 메스로 향했을 때 이미 내측 반월판 파열이라는 심각한 수준의 부상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마네는 이것을 사실대로 얘기하면 세네갈로 쫓겨날까봐 처음엔 말하지 않았다고. 결국 수술을 받고 9개월 후에야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었다.[4] 깅강을 상대로 득점하였다.[5] 이전 기록은 로비 파울러가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기록한 4분 33초.[6] 본인도 핸드볼을 직감했는지 골을 집어넣은 후 코망에게 윙크를 하며 자신의 손등을 가리켰다.[7] 마네의 위치는 온사이드였으나 사네가 공을 비켜주는 과정에서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는데 다나엘 슐라거 주심은 사네가 득점과정에서 관여했다고 판단하여 오프사이드를 선언하였다. 다만 경기 후 오프사이드 판정이 적합한지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8] 파일:FePfdvQXwBgXrvd.jpeg.jpg육안상으로는 온사이드로 보였으나 VAR 판독결과 마네의 발이 아주 미세하게 앞서 있었고 오프사이드로 판정되었다.[9] 패스를 받으러 오지 않고 스루패스를 받으려는 움직임을 갖는 것을 비판했다고 한다.[10] 당장 리베리의 데뷔 시즌인 2007-08 시즌은 팀을 다시 분데스리가포칼컵 더블을 주전으로 안겨주는 맹활약을 펼쳤고, 개인 수상도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것을 시작으로, 2008년 UEFA 올해의 팀 선정, 옹즈도르 3위, 그리고 비독일 국적 선수로서는 사상 두 번째로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를 수상하였다. 로번의 데뷔 시즌인 2009-10 시즌도 팀을 다시 분데스리가포칼컵 더블을 주전으로 안겨주는 맹활약을 펼쳤고, 무엇보다 팀을 9년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시키면서 준우승에 크게 일조한다. 직후 개최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오렌지 군단의 주전으로 2골 2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면서 전승으로 결승전에 진출시키고 전승준에 크게 일조한다. 개인 수상에서도 2009-10 시즌 VDV 11,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고, 2010년 비독일 국적 선수로서는 사상 네 번째로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를 수상하였다.[11]토마스 투헬은 첼시 시절 티모 베르너카이 하베르츠를 중용해서 챔스 우승시켰던 만큼 마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세르주 그나브리와 리로이 사네를 남겨둘 가능성이 높다.[12] 알리 알하산이 어시스트[13] 페널티킥을 차기 직전에 살라가 키퍼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장면이 잡히기도 했다.[14] 실축했다면 다음 키커는 살라였다.[15] 이때 세네갈은 마네의 부상 회복을 위해 주술사를 고용하기까지 했다.[16] 그래도 세네갈은 마네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칼리두 쿨리발리의 활약으로 16강에 가는 저력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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