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사이먼 2세 드 상리스 Simon II de Senlis | |
생몰년도 | 미상 ~ 1153년 8월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노샘프턴 백작령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노샘프턴 백작령 | |
아버지 | 사이먼 1세 드 상리스 | |
어머니 | 헌팅던의 마틸다 | |
형제 | 월테오프, 마틸다 | |
배우자 | 이사벨라 드 보몽 | |
자녀 | 사이먼 3세, 이사벨라 | |
직위 | 제2대 노샘프턴과 헌팅던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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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무정부시대에 스티븐 왕의 편에 서서 마틸다와 대적했다.2. 생애
아버지 사이먼 1세 드 상리스는 피카르디의 샹티이와 에르메농빌의 영주였던 랜드리 드 상리스의 막내아들로, 윌리엄 2세 치세 때 잉글랜드로 이주한 뒤 헌팅던의 마틸다와 결혼하면서 노샘프턴과 헌팅던의 백작으로 선임되었다. 헌팅던의 마틸다는 데인족 전사 시워드가 창립한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월테오프는 헌팅던과 노팅엄 일대를 지배하다가 잉글랜드 왕국을 정복한 윌리엄 1세에게 복종한 뒤 노섬브리아 백작에 선임되었지만, 1075년 윌리엄 1세에 대항한 봉기에 가담했다가 진압 후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마틸다는 월테오프의 영지를 그대로 물려받았고, 사이먼 1세와 결혼해 사이먼 2세 외에도 월테오프[1], 마틸다[2]를 낳았다.1111년에서 1113년 사이, 사이먼 1세가 예루살렘 순례를 떠났다가 라 샤리뜨쉬르루아르에서 병사했다. 장남이었던 사이먼 2세가 아버지의 영지와 작위를 물려받아야 했지만, 아직 나이가 어렸기에 어머니 마틸다가 섭정했다. 마틸다는 남편이 죽은 후 스코틀랜드 국왕 말 콜룸 3세의 아들인 다비드와 재혼했다. 잉글랜드 국왕 헨리 1세는 이 결혼을 주선하면서, 다비드에게 백작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이 때문에 사우스 요크셔에서 미들식스까지 이어지는 마틸다의 광대한 영토가 다비드의 통제하에 놓였다. 마틸다는 다비드와 결혼 생활을 이어가면서 여러 자녀를 낳다가 1131년에 사망했다. 사이먼 2세는 헨리 1세에게 어머니의 영지가 자신에게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헨리 1세는 이제 스코틀랜드 국왕이 된 다비드 1세를 회유하길 희망했기에, 그가 아내의 영지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도록 허용했다.
1135년 12월, 헨리 1세가 사망하고 조카 스티븐 왕이 잉글랜드 왕위에 올랐다. 다비드 1세는 스티븐 왕의 등극을 인정하지 않고 헨리 1세의 딸 마틸다를 잉글랜드 여왕으로 옹립하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전쟁을 일으켰다. 1136년, 스티븐 왕은 다비드 1세와 협상한 끝에 다비드 1세가 헌팅던의 마틸다와의 사이에서 낳은 헨리 왕자를 헌팅던 백작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1138년 다비드 1세가 또다시 잉글랜드를 침공하자, 스티븐 왕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헌팅던 백작위를 몰수하고 사이먼 2세에게 넘겼다. 1139년 4월 스티븐 왕은 헨리 왕자에게 헌팅던 백작위를 재차 넘겨줬다.
1138년, 글로스터의 로버트가 마틸다를 잉글랜드 여왕으로 옹립하고자 반란을 일으키면서 무정부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사이먼 2세는 스티븐 왕의 가장 충성스러운 동료 중 한 사람으로서 마틸다 세력에 대적했다. 1141년 2월 2일 링컨 전투에서 스티븐 왕의 편에 서서 항전했고, 스티븐 왕이 이 전투에서 패배하여 생포된 뒤 스티븐 왕의 왕비인 불로뉴의 마틸다에게 가담했고 9월에 윈체스터 전투에서 글로스터의 로버트를 생포해 스티븐 왕과 교환하는 데 기여했다. 스티븐 왕은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그에게 보답하고자 1141년 여름에 헌팅던셔와 노샘프턴셔에서 헨리 왕자의 영지를 몰수한 뒤 사이먼 2세에게 양도했다. 그의 권세는 나중에 헌팅던셔와 노샘프턴셔를 넘어 베드퍼드셔까지 확장되었다.
이후 여러 수도원을 설립하거나 후원하는 등 영지 관리에 힘쓰던 그는 1153년 8월에 사망했고, 노샘프턴의 세인트 앤드류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연대기 작가 헌팅던의 헨리는 사이먼과 스티븐 왕의 장남 외스타슈 4세는 마틸다와 그녀의 아들 헨리 플랜태저넷를 용납하지 않았으며, 두 사람이 잇따라 사망한 덕ㄷ분에 무정부시대를 종결한 월링포드 조약이 체결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헨리 플랜태저넷은 1154년 왕위에 오른 뒤 다비드 1세의 장남 헨리 왕자의 아들인 스코틀랜드 국왕 말 콜룸 4세에게 헌팅던을 넘겨줬다. 사이먼 2세의 상속자인 사이먼 3세 드 상리스는 1174년 헨리 2세가 스코틀랜드로부터 헌팅던을 도로 회수한 후에야 헌팅던 백작에 선임되었다.
3. 가족
- 이사벨라 드 보몽(? ~ 1188년 이후): 제2대 레스터 백작 로베르 드 보몽의 딸. 사이먼 2세가 사망한 후 제르베 드 더들리와 재혼했다.
- 사이먼 3세 드 상리스(1138 ~ 1184): 1174년부터 노샘프턴과 헌팅던 백작.
- 이사벨라 드 상리스: 윌리엄 3세 무디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