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Unexpected hanging paradox대표적인 역설의 예시. 내용은 대략 아래의 이야기와 같다.
어느 사형수는 이번 주 월-금 어느 하루 정오에 처형될 것이라고 선고를 받는다. 한편 이 나라에는 사형은 반드시 사형수가 예상치 못할 불시에 집행되어야 한다는 법이 있었다.
여기에서 사형수는 생각 끝에, 절대로 자신이 사형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목요일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다면, 금요일 아침엔 분명히 금요일 정오에 사형이 집행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금요일에는 사형이 집행될 수 없다.
금요일은 절대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으므로, 수요일까지 처형되지 않는다면 목요일 아침엔 사형이 집행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목요일에도 사형은 절대 집행될 수 없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도 사형을 집행할 수 없으므로, 화요일까지 처형되지 않는다면 수요일 아침에 사형 집행을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수요일도 사형은 집행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화요일, 월요일 모두 사형을 집행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형집행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게 사형수는 안심했지만 그 주의 어느 날[1] 정오 사형수가 예상하지 못한 불시에 사형집행인이 찾아와 형이 집행되었다. 사형수의 논리와 달리 사형이 집행되면서도 법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사형수는 생각 끝에, 절대로 자신이 사형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목요일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다면, 금요일 아침엔 분명히 금요일 정오에 사형이 집행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금요일에는 사형이 집행될 수 없다.
금요일은 절대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으므로, 수요일까지 처형되지 않는다면 목요일 아침엔 사형이 집행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목요일에도 사형은 절대 집행될 수 없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도 사형을 집행할 수 없으므로, 화요일까지 처형되지 않는다면 수요일 아침에 사형 집행을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수요일도 사형은 집행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화요일, 월요일 모두 사형을 집행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형집행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게 사형수는 안심했지만 그 주의 어느 날[1] 정오 사형수가 예상하지 못한 불시에 사형집행인이 찾아와 형이 집행되었다. 사형수의 논리와 달리 사형이 집행되면서도 법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2. 오판
한국에서는 어째서인지 아래와 같은 잘못된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혹은 논리 퀴즈 책 등에서 명확한 정답을 도출 가능한 방식으로 변형했을 수도 있다.사형수가 수감되어있고 그는 자신이 곧 사형 당할 것을 알고 있었다. 사형수는 자신이 이번 주 화~금요일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나라에는 특별한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월요일엔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였고, 다른 하나는 사형수가 단 한 번의 기회로 사형 당일 간수에게 '오늘 사형이 집행될 것이다.'라고 말을 하면 사형 집행을 취소하고, 무기징역으로 집행을 바꾸는 제도였다.
여기에서 사형수는 생각 끝에, 절대로 자신이 사형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① 목요일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다면, 금요일에 나는 '오늘이 사형 집행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금요일은 절대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다.
② 금요일은 절대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으므로, 수요일까지 처형되지 않는다면 목요일에 나는 '오늘이 사형집행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목요일에도 사형은 절대 집행될 수 없다.
③ 목요일과 금요일은 절대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으므로, 화요일에 처형되지 않는다면 수요일에 나는 '오늘이 사형집행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수요일에도 사형은 절대 집행될 수 없다.
④ 화요일에 사형을 집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사전에 알려진 정보가 된다. 결국 나의 사형은 집행될 수 없다.
이러한 완벽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형은 예정대로 집행되었다.
이 판에선 사형수의 논리에 확실한 오류가 있는데 결정적인 차이는 사형수가 "오늘이 사형집행일이다"라는 말을 한 번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점을 생각하면 ①부터가 정확하지 않은데, 목요일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어도 만약 '오늘이 사형집행일이다'라고 이전 날에 말해 버렸으면 금요일에 처형이 잡혀 있어도 사형수는 아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즉 '금요일은 절대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다'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후의 논리도 의미가 없다.하나는 '월요일엔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였고, 다른 하나는 사형수가 단 한 번의 기회로 사형 당일 간수에게 '오늘 사형이 집행될 것이다.'라고 말을 하면 사형 집행을 취소하고, 무기징역으로 집행을 바꾸는 제도였다.
여기에서 사형수는 생각 끝에, 절대로 자신이 사형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① 목요일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다면, 금요일에 나는 '오늘이 사형 집행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금요일은 절대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다.
② 금요일은 절대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으므로, 수요일까지 처형되지 않는다면 목요일에 나는 '오늘이 사형집행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목요일에도 사형은 절대 집행될 수 없다.
③ 목요일과 금요일은 절대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으므로, 화요일에 처형되지 않는다면 수요일에 나는 '오늘이 사형집행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수요일에도 사형은 절대 집행될 수 없다.
④ 화요일에 사형을 집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사전에 알려진 정보가 된다. 결국 나의 사형은 집행될 수 없다.
이러한 완벽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형은 예정대로 집행되었다.
단적으로 목요일까지 사형수가 아무 말도 안 한 상황에도 사형수가 목요일에 오늘이 사형집행일이라고 말했는데 사형이 금요일로 예정되어 있어서 죽는 건 당연히 가능하다. 애초에 이 버전에서 사형수의 상황은 화, 수, 목, 금 중 하루를 찍어 맞춰야 하는 야바위 게임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즉, 말 한 마디만 바꾸었지만 원래 사형수의 역설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어버리니 주의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문제로 논리학자들이 몇십 년 동안 지금까지 토론했을 리가 없다.
3. 본 역설의 해설
이 역설의 근본적 원인은 결국 '예상치 못할 불시에'라는 표현의 의도적 애매모호함에 녹아 있고, 즉 '사형수가 사형이 집행될 것을 예상한다'라는 표현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해석되고 있는지가 이슈가 된다. 만약 이 표현을 다음처럼 해석한다면,A1) 사형수는 월-금 중 정확히 하루 정오에 처형된다.
A2) 사형수가 날 d 아침에 A1과 자신의 상태에서 논리적 추론으로 '처형일은 d이다' 결론을 얻을 수 있다면, 처형일은 d가 아니다.
이러면 사형수를 목요일에 처형할 수 있는데 목요일 아침에 사형수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는 '목요일, 금요일 둘 중 하나에 처형당한다'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이 해석은 위의 패러독스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고 사형수가 예상했으면 처형이 피해진다는 사실을 사형수 조차 모른다는 일종의 왜곡이다. 하지만 이것을 받아들여 이 표현을 원문에 최대한 가깝게 해석한다면
A1) 사형수는 월-금 중 정확히 하루 정오에 처형된다.
A2) 사형수가 날 d 아침에 A1, A2와 자신의 상태에서 논리적 추론으로 '처형일은 d이다' 결론을 얻을 수 있다면, 처형일은 d가 아니다.
비록 이대로는 애매모호해 보이지만 실제로 A1, A2 두 명제는 1차 논리 명제로 바꿀 수 있고 A1과 A2를 동시에 가정하면 명제논리 차원의 모순을 끌어낼 수 있다. 즉, 저 표현을 저렇게 해석한다면 저 사형수의 논리에는 틀린 것이 없고 법안이 실제로 모순되었다는 진짜 역설이 나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A2의 진술 자체가 거짓말쟁이의 역설처럼 자기참조를 하는 셈이니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히 내재되어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에 이 역설에 사람들이 위화감을 느끼는 이유는 상단의 논리적 해석이 저 역설을 보았을 때 보통 느끼는 의미와 어딘가 다르다는 점인데 그럼 정확히 무엇이 다를까? 이것 때문에 논리학자들이 현재까지 논문을 써오며 이 역설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놓고 현재까지 키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분석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사형수의 사형에 대해서는 다음의 두 명제와 그 역이 있다:
p:사형수는 죽는다. q:사형수는 그가 그날 죽는다고 생각한다. ~p:사형수는 죽지 않는다. ~q:사형수는 그가 그날은 살아남는다 생각한다.
즉, 사형수가 기대한 명제는 다음과 같다:p이면 q이다. ~p이면 ~q이다. 여기서 사형수는 p,q가 서로 참이고 ~p, ~q를 서로 거짓인 관계로 설정하고 있어, ~p를 전제로 하면 ~q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판사는 p,~q를 사실, ~q, p를 거짓으로 설정하고 있으므로, 판사에게는 p이면 ~q이다, ~p이면 q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즉, 명제 q를 해석하는 입장에 따른 차이로 인해 모순이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판사가 사형 집행을 성공할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판결일수를 늘리면 사형수가 살아남을 확률은 1/(사형 집행 예정 일자수)이므로 점점 줄어든다. 대신 무한대로 늘리면 사형수는 사실상 안 죽는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이 계산도 쉬운 결론이 나진 않는다.
만약 현실에서 비슷한 상황을 생각한다면 '예상'과 '불시'라는 요소는 이 역설에서만 논리적 추론이라는 형태로 바꿔 놓았지 사실 매우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역설이 일어난다기보다는 전술한 변형된 버전으로서의 게임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역설의 내용과는 전혀 다르지만 이런 게임은 교수가 학생들에게 내는 서프라이즈 퀴즈, 불시에 하는 음주운전 등의 불법단속 등에서 이미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1] 이게 월, 화, 수, 목, 금요일 중 어느 요일인지는 판본에 따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