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7 11:04:07

산양대전

1. 개요2. 시놉시스3. 줄거리4. 내용

1. 개요

개화기 무렵에 나온 삼국지연의 팬픽.

유비적벽대전에서 승리한 뒤를 시기를 배경으로, 조조와의 ‘한중(漢中)’ 쟁탈전에서 승리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자룡전"/"조자룡실기"라는 제목으로 나온 판본도 있다. 산양대전은 10회 분량의 장회소설이며, 경판 삼국지 3권, 또는 삼국대전이라는 활자본 후반도 산양대전과 동일한 줄거리다.

<회목> (유일서관판 및 세창서관판)
1: 조조 한나라 치기를 의론하고 한효 선봉이 되어 진군하다.
2: 선주와 공명이 적병 막기를 근심하고 운장과 맹기가 일시에 들어오다.
3: 팔장을 죽여 처음 공을 세우고 명무를 버려 위진에 횡행하다
4: 마초 한효를 대전하고 운장이 맹기를 구하다
5: 관운장이 위진중에 이워싸이고 조자룡이 산양수를 뛰어건너다
7: 조자룡이 삼국병을 쓸어버리고 조맹적이 수염을 깍고 도망하다
8: 대연을 배설하여 삼장을 위로하고 한왕과 위왕이 구계산에 모이다.
9: 공명이 (?)하니 조조가 대참하고 양진 제장이 재주를 시험하다
10: 노장 황충이 조인을 생금하고 진법을 보고 가마니 퇴병하다

조자룡전이나 조자룡실기라는 제목으로 나오기도 했던 만큼, 여러 오호장 가운데서도 조자룡이 활약이 크게 두드러진다. 군략적인 면보다는 장수들의 무용을 강조하는 묘사가 특징. 실제 역사와는 거의 무관하고, 삼국지연의의 팬픽에 가깝다.

2. 시놉시스

유비가 산양수에서 조조의 선봉 한효에게 공격을 당해 위기에 빠지자, 관우마초가 나서서 조조군을 물리치나 포위당해 위기에 빠진다. 그때 천문을 보고 위기를 알게 된 조운이 유비를 구원하러 말을 달려 오나, 산양수에는 오왕 손권이 조조와 결탁하여 배를 모두 없애버려서 건너갈 배가 없었다.

하지만 조운은 하늘의 정기를 받아 말을 타고 산양수를 건너뛰어 구원에 나서고, 조조군의 포위망 속에 뛰어들어 관우와 마초를 구해내며 조조를 혼비백산 하게 만든다.

그 뒤 제갈량이 나서서 여러 한나라의 여러 장수들을 데리고 조조군의 진영에 찾아가 무예 대결을 벌인다. 조조군의 장수는 모두 한나라 장수들에게 투구가 깨져 패배하고 망신을 당한 조조군은 후퇴하게 된다.

3. 줄거리

한나라 말 한ㆍ위ㆍ동오의 삼국이 분쟁 할 때, 위왕 조조는 산양수(山陽水)에서 한나라와 싸우다 대패하고 돌아와 분을 참지 못하여 모사 정욱과 제장들에게 그 심정을 토로하였다. 정욱은 한나라의 군사적 우위와 모사 제갈량의 지략이 높음을 말하며, 조조에게 덕을 쌓고 때를 기다릴 것을 권유했다. 이때 서량태수 한효가 한을 높이 평가한 정욱을 비웃으며 군사를 내어주면 한을 치겠다고 자원하니, 정욱이 산양수 전투의 패배를 상기시켜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한효를 선봉으로 삼아 한을 치게 하였다. 한효는 대군을 거느려 산양수를 건너 마하력을 지나 주야로 진군한 끝에 한나라 지경에 이르러 말 잘 타는 장수로 하여금 패문을 가져다 한왕에게 전하게 했다.

이때 제갈량은 성주 유현덕과 함께 신야(新野)에서 천하사를 이논하던 중, 천기를 보니 산양수 쌍무에서 패한 조조가 분을 참지 못하고 머지않아 침노할 듯하여, 군사를 내어 방비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자룡(조운)ㆍ맹기(마초)ㆍ한승(황충)ㆍ운장(관우)ㆍ익덕(장비)가 멀리에 있음을 걱정했다. 마침 수문장이 위병이 성 아래에 이르렀음을 고하여 성 밖을 보니 적군이 가득함을 보고, 유비가 낙심하여 방성 통곡했다. 공명은 태사관에게 후에 좋은 소식이 없으면 유비를 모시고 피할 것을 명하는데, 마초와 운장이 달려왔으므로 크게 기뻐하였다.

마초가 선봉되기를 자청하나, 공명은 운장을 선봉으로 세우길 주장했다. 마초가 매우 낙담해 하자, 운장이 마초를 선봉으로 세우기를 권유했다. 이에 공명이 운장의 뜻을 알고 마초를 선봉에 세우고 운장은 중군으로 삼았다. 그리고 적진에 이르거든 한효의 명장 8인이 덤벼들 때 적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한효와 싸우다 당하기 어려우면 운장과 의논하라고 계교를 일러 주었다. 관우와 마초가 공명의 계교를 듣고 숙성문을 바라고 나아가, 마초가 위군을 향하여 돌진했다.

이때 한효의 부장 8인이 일시에 내닫자 마초가 순식간에 8장의 머리를 베어들고 종횡무진하다가 중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운장에게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니, 운장은 그를 칭찬하면서도 적을 가볍게 여기지 말 것을 당부했다. 마초가 다시 위군 중으로 쳐들어가니, 서회가 아우의 원수를 갚고자 대적하였으나 쉽게 승부가 나지 않던 중, 장숙이 서회를 도와 협공하였으나 둘 다 죽임을 당하였다. 위장들이 마초를 대적할 의논을 할새, 이정신이 철궁으로 마초에 대항하였으나 마초의 창 아래 죽었고, 한현의 아우 한총이 형의 죽음에 분개하여 마초의 팔에 활을 맞혔으나 그도 마초에게 죽음을 당했다.

운장이 마초를 쫓아와 팔에 살이 꽂힌 것을 걱정하였으나, 살이 세 겹 갑옷을 뚫지 못해 상처가 없었다. 이때 위나라 진중에서는 마초를 당할 자가 없어 근심하던 중에 선봉 한효가 직접 나섰다. 그는 마초와 백여 합을 싸우닥 상대방이 지치기를 기다려 원앙진을 쳐 에워쌋다. 이에 관우가 위진에 뛰어들어 마초를 구하여 동운교로 돌아와 위로한 후 다시 적진으로 갔다. 관우가 한효와 더붙어 싸우다가 마침내 그를 죽였다.

이때 조조는 한효가 관우의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경하여 탄식하니, 정욱이 오왕 손권과 서촉 강동에 청병하여 운장을 잡아 한을 치자는 계교를 냈다. 손권과 강동 역시 한을 치려던 중 위국의 청병을 받고 기꺼이 응하였다. 군사를 모으고 남병산 아래에서 결진하기로 약속한 후, 조조가 청병의 재주를 보려고 무겁산에 올라가 진세를 바라보니, 관우가 만군 중에 들어와 많은 군사를 죽였다. 조조가 관우를 에워싸라는 명령을 내리자, 관우는 수십 겹의 적군에 둘러싸여 수없이 적병을 쳤으나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를 본 마초가 관우를 구하려 적진에 뛰어들었으나 그 역시 적진 중에 갇혔다.

조조가 관우를 잡으려 서황을 보냈지만 도리어 죽임을 당하였고, 장요도 군사만 잃고 돌아오자, 정욱은 진 속에서 굶겨 죽이자는 의견을 냈다. 관우는 여러 날을 갇혀 굶주리고 지치게 되니 탄식을 하였다. 이때 조자룡이 사천을 지키다 잠 못 이루던 중, 운장이 유혈이 낭자하여 한의 위태로움을 고하는 꿈을 꾸었다. 또 천기를 살펴보고 한나라의 위태로움을 알아, 여러 장수들에게는 뒤따라올 것을 이르고 남병산(南屛山) 아래로 달려갔다. 정욱이 역시 천기를 살펴 자룡이 올 것을 예측하고, 산양수에 배와 사람이 없게 하여 자룡을 막자는 계교를 냈다.

자룡이 단기로 산양수에 이르니 인적도 배도 없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다가, 문득 말을 향하여 물을 건너뛸 것을 외치니 말이 순식간에 산양수를 건넜다. 자룡이 한산 고소대(姑蘇臺)에서 보니 위군만 있고 한군이 없자, 이미 두 장수가 죽은 줄 알고 통곡을 하다가, 마초의 군관을 만나 두 장수가 위군 진중에 갇힌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자룡은 위진 속에 들어가 두 사람을 구해내어 동운교에 두고, 다시 적진에 뛰어들어 도망가는 조조를 쫓았다.

자룡이 "수염 좋은 자가 조조이니 잡으라."고 군사들에게 명하니 조조는 수염을 자르고 도망하였다. 한참 뒤쫓던 자룡은 조조의 천기가 밝음을 보고 그를 잡지 못할 줄 알아 거짓 호통을 치며 화살로 공격하니 정욱이 이를 잘 막아내었다. 자룡은 정욱의 충심에 크게 감탄하고 도망치는 조조를 살려보냈다. 자룡이 동운교로 돌아오니 관우와 마초가 크게 치하했다.

조조가 남병산의 대패를 원통해하자 정욱은 묘계를 내어, 군사를 매복시킨 뒤 한왕을 구계산으로 유인하여 잡자고 하였다. 제장이 찬성하니 조조는 유비에게 구계산에서 만나 화친하자는 서신을 보냈다. 흉계를 모르는 유비는 기뻐하여 즉시 답신을 보냈다. 공명이 뒤늦게 이를 알고 조조의 간계임을 간파하여 계책을 세워 두었다. 약속한 날에 유비가 구계산에 이르러 조조와 이야기를 나눈 뒤, 조조가 공명을 보고자 하니, 공명이 좌우에 자룡과 익덕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그 비범한 기상을 보고, 조조가 자신을 따를 것을 권유하였으나, 공명이 크게 웃으며 도리여 한실 종친을 배신한 행동을 나무라니 위구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조조가 서로 재주를 겨루어 이기는 쪽을 섬기자고 제안하니 공명도 동의했다. 먼저 위군 중에서 조홍·허저·문빙이 나와 활을 쏘니, 한진에서도 유봉·관평이 나오 활을 쏘았다. 이때 장비가 150보 밖에서 한쪽 갑옷을 달고 쏘아 맞혀 구멍을 내었다가 다시 막았다. 여기에 조운·마초·황충도 가세했다. 조조가 분해하다가 방덕으로 하여금 창법을 자랑하게 하니, 한진에서는 조운이 장창을 빗겨 들고 나아가 싸웠다. 곽회의 투구가 깨지자 위진에서는 하후돈이 나아가 한진 중을 종횡무진하니 왕평이 맞아 싸워 투구를 깨니 도망치고 말았다.

여러 번 패한 조조는 분한 마음에, 양진에서 장수 하나씩 내어 겨루자고 하였다. 장비가 허저와 더붙어 싸웠는데 허저는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다시 조홍을 내보내니 마초가 맞아 투구를 벗겼다. 다시 위연이 나아가 방덕과 싸우는데, 위연이 지쳐 도망하다가 철퇴를 던져 방덕의 가슴을 맞추었다. 방덕이 약속 파기를 꾸짖으며 칼을 날려 위연의 말을 치니, 조조가 기뻐하며 장합을 내보냈다. 한군 중에서는 관평이 맞아 싸우는데 철퇴를 들어 치니 장합의 투구가 깨졌다. 조인을 내보내자 황충이 맞아 싸우다가 조인을 잡아 투구를 벗기고 얼굴에 먹칠을 하여 돌려보냈다. 조조가 화를 내며 공명에게 싸움을 걸었다. 이에 공명이 자룡을 시켜 철궁에 왜전을 먹여 조조의 투구를 맞추니, 조조가 크게 놀라 말에서 쓰러져 본진으로 돌아갔다.

공명이 장비·황충·마초·유봉·조운에게 명하여 진법을 펼쳐 보이게 했다. 조조가 그 진법에 대하여 좌우에 물으니 사마의가 기마 둔갑법이라 대답하고, 그 진법이 조화로움에 대하여 말하였다. 조조는 더 이상 다툴 뜻을 잃고 그만 돌아갈 준비를 하게 하였다. 공명이 선주(유비)에게 조조가 돌아갈 것고 사마의가 그 진법에 대하여 말하였을 것이라 하고, 자룡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려 마창산성에 매복하였다가, 밤 삼경에 조조군이 지날 때 치면, 조조는 잡지 못하더라도 군기 마필은 무수히 얻을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그날 밤 조조군이 지났으므로 자룡이 매복하였다가 엄살하니, 조조는 겨우 목숨만 부지하여 도망하였다. 자룡이 개가를 올리고 수많은 군기 마필을 얻어 돌아오니 공명은 크게 기뻐하며 신야로 돌아왔다.

4. 내용

「자룡이 잠깐 천기를 살펴본즉, 조조의 주성이 밝은 기운을 띄엿는지라 잘알고서 즉 호통을 하면서 조조를 부르며 말하길
"조조야 내 오늘날 이 살로 너를 쏘아 잡으리"
활을 당기어 쏘니 정욱이 급히 방패를 들어 오는 살을 여러번 막으매 방패 들어 말달애를 떼어들고 죽을 힘을 다하여 분분히 드러오는 살을 막으니
자룡이 말하길
"각각 제 인군을 섬기매 충성은 한가지"라 하고 크게 소리를 하여 조조를 불러
"너를 죽일 거시로되 너의 신하 정욱의 충성을 보와 너를 살려 보내니, 너는 다시 군사를 일으켜 천하를 불란케 말라"
정욱이 답하여 말하길
"이번에 신덕으로 잔명을 보전하여 돌아가오니 그 은혜 백골난망이로소이다"
하고 허창으로 돌아가니라」
정욱조운이 쏜 화살을 막아내는 장면.(…)
「위진에서 하후돈이 내다라 한진에 돌입하니 기치창검은 안채에 황홀하고 신장귀졸은 좌우에 버렷으니 공명의 진법이라 하후돈이 비록 진중에 들어 왔으나 능히 전진할 길이 없어 다만 칼을 들고 황황 하더니 진상으로서 왕평이 칼을 들고 내달리니 하후돈을 맞아 싸워 수십합에 이르러는 왕평이 하후돈의 투구를 치니 하후돈이 쥐숨듯이 도망을 하야 달아나는지라 공명이 쟁을 울리어 군사를 거두니 조조도」
하후돈의 굴욕.(…)

참고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