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1:56:59

삼익주택


1. 개요2. 역사3. '삼익'과 '삼익주택'4. 부활?5. 대표 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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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주식회사 삼익주택 상호.png

(주)삼익주택

1. 개요

1968년에 설립된 서울특별시를 소재로 하던 건설업체. 동부이촌동의 한강으로 시작하는 고급 맨션들을 지은 건설업체로 유명하다. 아파트 브랜드로 삼익세라믹을 사용했다. 2000년에 완전 파산했다. 삼익악기와는 상관이 없다.[1]

2. 역사

1968년 세워진 대륭공영(주)로 시작해, 1973년 현재의 상호로 변경했고, 1976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1977년에는 종합건설업 면허를 취득하였다.

첫 아파트는 1969년 서울특별시 북아현동시민아파트를 지었는데, 이 게 바로 한국 최초의 시민아파트인 금화시민아파트이다. 이 금화시민아파트의 일부 동을 지은 것이 시초.[2] 사실 1970년에 중소기업 건설사들이 날림공사질을 하며 지어버린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때문에 이 건설사까지도 위기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이 건설사는 골재를 보강하는 등으로 잘만 피해가며, 사직동동부이촌동부촌이라 불리는 고급아파트 사업까지 따내며[3] 한강으로 시작하는 고급 맨션들을 모조리 짓기 시작하며, 대형건설사로 발전했다. 1970년대 중반에는 고급 아파트 브랜드들이 전무하던 부산에도 재빨리 진출하여 1976년 부산 최초로 민간건설사가 지은 고급아파트인 동대신 삼익아파트를 필두로 부산지역에 기존의 시민아파트, 주공아파트나 시영아파트와는 차별화된 고급 아파트를 선보이기 시작했으며, 남천 삼익맨션부터 남천 삼익비치아파트, 뉴비치로 이어지는 대규모 삼익 브랜드 타운을 남천동 일대에 만들고, 부산 전역 여기저기에 삼익아파트 단지들을 꾸준히 만드는등 1980년대 초반 까지 부산지역의 고급아파트들을 독식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77년에 지어진 남천 삼익타워 부터는 부산지역에서 민간건설사가 건설한 아파트로써는 최초로 10층을 돌파함과 동시에 엘리베이터를 처음으로 도입하는등 당시 부산에서는 삼익아파트 하면 첨단의 끝을 달리는 세련된 이미지의 고급아파트의 대명사로 유명했었으며, 삼익아파트를 필두로 부산에서도 아파트도 부자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삼익세라믹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해, 브랜드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브랜드 아파트인 셈인데, 1980년에 준공된 남천동 남천 삼익비치아파트라는 호화아파트 단지도 이 회사가 지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1975년부터 호화아파트 사업에서 손을 뗀다는 잘못된 정보가 적혀있다.

1997년 외환 위기에 언급된 파산위기 기업 100개 중 하나로 알려졌고, 1998년에 부도가 발생해, 재산보전처분이 결정되었다. 결국, 2000년 6월에 파산하고 만다.

계열사로는 삼익가구[4]가 있으며 이 회사가 파산한 이후에도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

3. '삼익'과 '삼익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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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인 이종록 회장. 이 사진이 아래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이 회장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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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고등학교 90주년 기념식. 가운데가 이종록 회장이고 왼쪽은 김수환 추기경이다.

창업주인 이종록(1931년 출생)은 삼익주택 사업이 잘 되자 삼익상선, 삼익가구 등의 더 큰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모기업인 삼익주택이 중동건설 후유증으로 경영난에 빠지게 되고 1985년 산업합리화 업체로 지정되면서 삼익가구와 삼익상선[5]을 독립, 혹은 매각했다. 삼익주택도 1986년 제일은행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버렸다.[6]

하지만 이종록은 여기서 꼼수를 하나 생각해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기업들 중 유일하게 제일은행으로 경영권이 넘어가지 않았던 '삼익팔크'[7]라는 팔크패널 제조업체가 있었는데, 이 기업은 삼익주택과 아무런 거래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제일은행이 찾아내지 못했다.# 이 기업으로 재기를 시도한 이종록은 1988년에 다른 업체로부터 건설업 면허를 양도받아 또다시 주택사업에 뛰어들었고 1992년에는 회사 이름을 아예 '삼익'으로 바꾸고 또다시 크게 판을 벌렸다가 1995년에 완전 부도를 내고 만다. 이 때 이종록의 손을 떠난 삼익주택도 하필 비슷한 이름 때문에 덩달아 피해를 입었다.

여담이지만 삼익건설이라는 업체도 있었는데 여기도 삼익악기처럼 아예 삼익주택과 관련이 없는 회사다.#

4. 부활?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 '삼익더랩소디' 라는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데, 로고가 옛 삼익주택과 그냥 똑같다. 삼익더랩소디를 짓는 시행사의 이름은 (주)삼익건설개발이다. (주)삼익건설개발이 옛 삼익주택에서 부분부분 살아남아 부활한 기업인지, 로고만 사온건지, 창업자가 다시세운 회사인지는 알려진 정보가 별로 없어 불분명하다. 또한 삼익더랩소디는 분양가또한 높아서[8] 고급아파트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도 옛 삼익주택과 비슷한 점이라 흥미롭다.#

5. 대표 실적


[1] 공교롭게도 삼익악기 역시 '에스아이가구'라는 사명으로 가구제조업에도 진출했다.[2] 북아현동 아파트 현재 북아현뉴타운 지역이다.[3] 동부이촌동에서만 타워맨션, 반도맨션, 왕궁맨션, 렉스맨션(래미안 첼리투스로 재건축), 점보아파트, 삼익맨션, 빌라맨션, 한강동부맨션, 로얄맨션(e편한세상으로 리모델링) 건축.[4] 1994년까지 민속씨름단을 운영하기도 했다. 황대웅이 삼익가구 씨름단 소속의 가장 유명한 선수였다.[5] 1986년에 팬오션으로 합병[6] 여전히 최대 주주는 이종록이었지만 그 보유 지분을 전부 담보로 잡혔다. 즉 경영권을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상태였다.[7] 대한팔크라고 적은 당시 언론기사도 간혹 보인다.[8] 강남구도 아닌데 18평이 11억 분양가에 나왔다.[A] 준공표지판에 이종록 회장 소유인 삼익에서 지었다고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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