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2:26:48

샌드위치맨(오와라이)

샌드위치맨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닛케이 로고.svg
닛케이 엔터테인먼트 파워랭킹 1위
마츠코 디럭스
2018년
샌드위치맨
2019년 ~ 2020년
아야세 하루카
2021년
아야세 하루카
2022년
샌드위치맨
2023년
오타니 쇼헤이
2024년

}}} ||
샌드위치맨
サンドウィッチマン | Sandwichman
파일:mv-sandwichman-1280x848.jpg
멤버 다테 미키오(伊達みきお) / 토미자와 타케시(富澤たけし)
결성년도 1998년, 도쿄
약칭 산도 (サンド)
소속사 그레이프 컴퍼니 홈페이지
활동 텔레비전, 라디오, 라이브 투어[1]
방송데뷔 2005년 5월 28일, 엔타노카미사마에서 "피자 배달부"로 방송 데뷔.
출신 미야기현 센다이시
수상경력 2007 : M-1그랑프리 최종우승
2009 : 킹 오브 콩트 준우승

1. 개요2. 멤버
2.1. 다테 미키오2.2. 토미자와 타케시
3. 개그 스타일 및 작성 방식4. 활동
4.1. 굴곡이 많았던 초기4.2. 꽃길에 오른 중기4.3. 구사일생, 그리고 부흥을 위한 노력과 실천4.4.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현재
5. 여담6. 관련 사이트

[clearfix]

1. 개요

샌드위치맨(サンドウィッチマン)은 1998년 미야기현 이즈미시(現 센다이시)에서 결성한 일본의 오와라이 콤비이다. 소속사는 그레이프 컴퍼니.

M-1 그랑프리의 상징이자, 패자부활전에서 우승까지 달성한 신화의 주인공, 개그 볼모지인 토호쿠(동북) 지방의 로컬게닌에서 헤이세이 시대를 대표하는 게닌으로 성장한 2011년부터 수많은 개그맨을 제치고 8년 연속 호감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 대표 콤비이다.

개그 대본 작성은 보케인 토미자와 타케시가 하고 있으며, 다테 미키오는 츳코미를 담당한다.

미야기 홍보대사는 물론, 토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응원 대사, 럭비 친선 대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다. 오와라이에서 힘을 못 쓰는 토호쿠 지방[2]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는 것도 모자라 일본을 대표하는 게닌 중 하나로 올라왔다. 토미자와 타케시는 M-1 2018에서 심사위원으로 등장했는데, 마츠모토 히토시의 옆자리에 앉는 영광을 이뤘다. 게다가 오와라이계에서 사이가 좋은 콤비인 탓에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3]

2018년 호감도가 높은 게닌 1위를 기록하며, 오와라이 괴수인 아카시야 산마를 제치는 위엄을 달성했다. 출처

2. 멤버

2.1. 다테 미키오

본명은 다테 미키오(伊達 幹生). 1974년 9월 5일생, 키는 170cm.

구루메 활동 초기에 0kcal 이론이라는 것을 만들어, 맛있게 먹으면 0kcal이라는 주장을 폈다. 근데 이게 오래 써먹은데다가 주변 사람들이 걱정에 찬 눈으로 "정말 0kcal라고 생각하는거야?" "다테씨, 이건 몇 kcal예요?"라고 묻는게 너무 귀찮아져서 최근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듯. 0kcal 이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한 영양사로부터 장문의 메일까지도 받았다고.

2022년까지만 해도 왕성하게 이 사람의 모노마네를 밀고 있었으나... 일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어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이러한 모노마네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보통은 츳코미를 담당하며, 성격이 나쁠 거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상당히 거친 말투를 구사한다.

성격이 외향적이며, 아웃도어파다. 취미는 인형 모으기로 저택에 호빵맨, 베이비맨 인형이 보이기도 했다.

성씨인 다테는 다테 마사무네의 그 다테다. 다테 마사무네의 방계 후손이다.

도호쿠 지방의 어촌에 그와 진짜로 똑같이 생긴 어부가 있어 본인이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

러브 라이브! 슈퍼스타!!의 성우 다테 사유리의 큰아버지이다.[4] 2024년 3월 23일, 다테 미키오가 진행하는 라디오 <샌드위치맨 더 라디오 쇼 새터데이>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다테 사유리와 함께 직접 밝혔다.[5] 팬들의 추측으로는 '둘 중 한 명이 사유리 데뷔 초기에 이 사실을 밝혔다면 사유리 입장에서 삼촌의 후광에 기댄다는 등의 논란이 일 것이 우려되어[6] 일부러 감췄으며, 조카의 데뷔 이후 시간이 충분히 지나고 다테 미키오의 생각에 사유리가 연예인으로서 충분히 성장한 지금은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어서 자신의 라디오에 조카를 게스트로 초대하여 밝힌 것'으로 추정. 또한 다테 미키오는 예전에 러브라이버로 유명한 아이돌 미야타 토시야에게 이 사실을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상당히 놀랐었다고.

2.2. 토미자와 타케시

본명은 토미자와 타케시(富澤 岳史). 1974년 4월 30일생, 키는 170cm.

보케를 담당하고 있으며, 개그 대본 작성을 담당하고 있다. 주로 쓰는 멘트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7].

음식과 관련된 리포트 프로그램에서 식사할 때 "우마벨러스(ウマーベラス, 우마이 + 마벨러스)"라는 말을 하는데, 후술할 MONKEY MAJIK과 콜라보의 타이틀로 등장하게 되었다.

성격은 파트너와 다르게 내향적이며, 인도어 파다. 결혼 후에는 모든 가족들이 방콕족(...)이다. 실제로 샌드위치맨 두 사람의 밀착 카메라에서, 방송 2시간 전 시간이 남자 다테는 밖으로 나갔고, 토미자와는 계속 방에서 엎드려 휴대폰을 보거나 책을 보거나 낮잠을 자는 등 밖으로 일절 나가지 않았다.

3. 개그 스타일 및 작성 방식

만자이 진행 패턴 -
다테 : 세상에는 흥분되는 것이 꽤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흥분되는것은 역시 OO네요.[8]
토미자와 : 틀림없어.
다테 : (관객들을 보며)이제 됐어!

콩트 진행 패턴 -
OO하는 가게네? 흥분되기 시작했다! (다테 미키오)
무슨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토미자와 타케시)

만자이와 콩트를 함께하며, 주고 받는 대화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주로 츳코미는 다테, 보케는 토미자와가 담당하고 있다.

V시네마 배우로 활동하는 아이카와 쇼를 따라하는 '아이카와 쵸', 다테가 보케인 'OO하는 남자 시리즈', 그리고 메인이라 할 수 있는 'OO가게' 등이 있다. 그리고 콩트에 등장하는 상표들은 전부 발음이나 비슷한 한자를 이용한 패러디가 주를 이루고 있다.[9] 츳코미를 담당한 다테가 보케인 시리즈들은 뭔가 이상한 복장이나 헤어스타일로 등장한다. 이는 모노마네에 강한 다테의 특징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이것도 상당히 재밌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대본 없는 개그로 진행되기 때문에 방송에서는 절대 하지 않고, DVD 및 라이브에서만 특별히 공연한다. 대본이 없기 때문에 재밌을지 재미가 없을지는 복불복이며, 플레이타임 또한 고정되어있지 않아 20분을 넘게 진행할 때도 있다. 방송에서 선보인 개그를 제외한 DVD에 수록된 개그들은 'Grape company'라는 공식 계정으로 올라와 있어 쉽게 감상할 수 있다.[10]

개그 대본을 작성하는 사람은 토미자와 타케시. 다테가 생각한 츳코미 멘트를 바탕으로 최종원고를 작성한다고 한다. 원래는 PC로 작성하고, 토미자와 본인 또한 PC로 작성하고 싶어하지만[11] PC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다테가 PC로 작성하지 말고 필기로 작성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 필기로만 작성했다. 세월이 흘러 현재는 토미자와가 완성한 최종원본을 다테의 메일로 보낸 다음에 컴맹[12]인 다테가 매니저에게 인쇄를 부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래도 종종 다테는 이런 컴퓨터로 작성한 글보다 필기로 작성한 것이 집중이 잘 된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편.

그리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는 모노마네(흉내개그)로 참가하는 경우가 있다. 마츠코 디럭스, IKKO, 타케우치 리키 등을 흉내냈으며, 자신들을 흉내낸 게닌들과 함께 방송한 적이 있다. 토미자와가 흉내냈던 IKKO 캐릭터는 토호쿠타마시TV에서 '토믹스 온 더 비치[13]'라는 이름의 코너에서 써먹었다. 가끔 마츠코 디럭스와 함께 CF를 찍고는 한다.

또한 칸사이벤 등을 쓰는 여타 코미디언들과는 다르게 콩트, 만자이에서 보통 표준어[14]만 구사하기 때문에 일본어 학습자에게 무자막 청취를 권해주기 좋다. 비슷한 표준어 개그를 구사하는 바이킹의 경우, 발음이 좋지 않아 무자막 청취가 난해할 수 있으나 샌드위치맨의 경우 상당히 좋은 발음으로 개그를 진행하기 때문에 일본어 학습자가 쉽게 청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다테의 말투는 굉장히 공격적이며 입이 거칠다. 이 말투를 그대로 답습하면 타인에게 쉽게 무례를 범할 수 있으니 절대 이 말투를 따라하지 말자.[15] 토미자와 또한 점원 보케의 경우 다테에게 욕을 먹기 위해 일부러 굉장히 건방진 태도로 나오기 때문에, 이 말투를 그대로 따라했다간 정말 큰일날 수 있다. 이 두사람은 평상시에 그런 말투를 쓰지 않고 방송용으로만 굉장히 거친 말을 쓰기 때문에 개그는 개그로만 보자. 콩트 및 만자이는 소속사 공식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4. 활동

4.1. 굴곡이 많았던 초기

센다이상업고등학교의 동기생인데, 럭비부[16]에서 만났다고 한다. 토미자와는 동기인 다테와 함께 럭비부에서 선배를 웃게 해주는 것에 맛들려, 게닌의 길에 접어들기로 결심한다. 토미자와는 다테에게 함께 콤비를 결성하자고 했지만 꽤 빵빵한 집안의 엄한 부모님 때문에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17] 개그맨을 꿈꿔왔던 토미자와는 요시모토 센다이의 아마추어 오디션에 합격하여 센다이에서 아마추어 콤비로 활동하지만, 요시모토가 센다이에서 철수하는 악재를 겪었다.

이대로는 꿈을 포기할 수 없던 토미자와는 다테를 찾아가서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 상경하자고 설득한다. 다테가 복지 관련 회사에서 입사 5년차에 접어들던 무렵, 다테의 할아버지가 사망하며, 이로 인해 충격을 받은 다테는 '이왕 한번 사는 인생이라면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고 죽겠다'라고 결심하고 바로 회사에 사표를 낸다. 토미자와가 다테를 설득한 지 어언 3년, 고향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버스에 올라 상경을 하여 도쿄 이타바시구의 어느 낡은 아파트에서 도쿄생활[18]의 막을 열게 되지만...

당시 센다이에는 없는 바퀴벌레를 처음 보고 충격을 먹은 나머지 센다이로 돌아갔다고 한다. 당시 살충제를 1캔 전부 사용해도 바퀴벌레가 죽지 않아 "이러다간 우리가 먼저 죽겠다"고 생각해 센다이로 귀향했다고 한다. 헌데 친구들의 배웅을 받고 상경한 주제에 바로 돌아온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1개월간 센다이에서 숨어[19]지냈다고...

1998년에 호리프로에 입사한 이들은 하마다 츠토무를 포함시켜 샌드위치맨 트리오로 결성하여 이케부쿠로의 근처인 카나메초에서 테우리(공연하는 사람이 직접 사람들에게 티켓을 파는것)로 라이브를 시작하지만 언더그라운드의 척박한 삶에 지쳐 1년 만에 하마다 츠토무가 탈퇴를 해 버린다. 이후 두 사람은 이름은 '샌드위치맨' 그대로 유지하면서 듀오로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둘은 게닌 활동을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해 호리프로에서 나와 플랫 파이브로 소속사를 옮겼다.

이들은 TV출연을 목표로 10년간 언더그라운드를 전전해야 했다. 자신의 공연 티켓을 공연하는 입장인 자신들이 직접 팔아야 했는데 이 티켓 또한 최소 판매량이 정해져 있었기에 팔지 않으면 공연하지 못했다. 그래서 거리 한복판에서 자신들의 공연을 보러 와달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다녔다. [20] 개그 자체로는 돈을 한 푼도 못 받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21] 와 병행했으며 집에 들어오면 자기 바빴다.

이런 상황인지라 토미자와는 자신만을 믿고 회사를 그만둬 도쿄에 상경한 다테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미야기현 센다이라는 굉장한 시골에서 꿈을 갖고 도쿄로 상경했지만 30살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TV에 출연하지 못하고 무명 최하급 개그맨을 전전하며 자기 공연의 티켓을 자기가 팔아야 했다. 다테는 굉장히 빵빵한 집안 출신일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상당한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게다가 상경 당시 5년차로 다니던 안정적인 직장까지 있었다. 그런 다테가 토미자와의 3년간의 끈질긴 설득으로 무작정 도쿄에 와 30살까지 밑바닥을 전전한 것이다. 토미자와는 훗날 '30살이 된 시점, 1년간 TV출연을 하지 못한다면 다테에게도, 다테의 부모님에게도 너무 미안해 자살할 예정이었다.' 라며 회고했다. 둘은 무명으로 30살까지 버티다 결국은 각오를 하게 된다. '이제 30살이 되니, 앞으로 1년간 TV출연을 하지 못한다면 개그맨을 접자.'라고 다짐하고 라이브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였다. 이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허름한 공연장에서 라이브를 하는 도중, 우연히 라이브를 관람하던 엔타노카미사마관계자의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것이 곧 엔타노카미사마에 출연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5년 5월에 꿈에 그리던 TV 출연을 하게 된다. 그리고...

4.2. 꽃길에 오른 중기

엔타노카미사마에서 인지도를 확보한 이들은 2007년 9월에 단독 라이브를 개최, 만석을 이루는 대성황을 이뤘으며 센다이의 자랑거리로 떠올라 많은 이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게 되었다. 그리고 결전의 2007년 12월, M-1 그랑프리의 그 날이 다가오고...

쟁쟁한 경쟁자들에게 밀려 패자부활전으로 밀려났으나, 당당하게 실력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의 영상

지금의 M-1그랑프리만자이의 최강자들의 꿈의 공연으로 구성되었지만, 당시는 일본 오와라이계의 최고 이상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우승자는 당분간 먹고 살 걱정은 없을 정도로 많은 방송에 섭외되는 영광을 누릴 정도였다. 이런 프로그램의 밑바닥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니 전설의 레전드는 물론이요, 신화 이상의 위엄을 자랑하게 되었다. 물론 MC 경력이 없었던 탓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았지만, 안정적인 개그들을 선보여 믿고 보는 개그맨이라는 위상을 유지하면서 대인기인으로 활동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부족했는지 2관왕을 목표로 킹 오브 콩트에 출연하였고, 평가가 좋은 개그들이 쏟아졌지만 상대가 실력이 좋은 리얼계 콩트의 달인인 도쿄03인지라 역전 준우승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래도 기본실력은 여전해서 당해 개최 된 첫 전국 투어에서 만석[22]을 기록하며 아직도 매년 라이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예 활동의 근간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다테와 토미자와가 결혼에 골인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2009년이 지나고, 2010년 7월에 자신들과 함께 했던 매니저와 함께 '그레이프 컴퍼니' 설립, 플랫 파이브[23]에 소속했던 개그맨들과 함께 매니지먼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도 메인 엔터테이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다양한 게닌들을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4.3. 구사일생, 그리고 부흥을 위한 노력과 실천


이들이 미야기현 케센누마시에서 로컬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땅이 흔들거리더니 쓰나미가 몰려왔다고 했다.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던 이들은 스태프들과 급하게 고지대로 대피하는 화면이 위의 영상에 찍혔다. 일본의 뉴스 프로그램들은 현장에 있던 샌드위치맨을 상대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였고, 매년에도 대지진과 관련된 주제로 자주 섭외되고 있다. 당시 바나나맨도 샌드위치맨을 응원하고 있어 매우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미야기현 출신이기도 하고 동일본대지진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탓에 여타 게닌들에 비해 상심이 가장 컸다. 그래서 다른 게닌들이 가끔 써먹던 죽음과 관련된 소재를 사용하기 꺼린 것은 물론, 예풍에도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들의 출신지가 토호쿠였던 관계로 부흥을 위해 동일본대지진 의연금 계좌(東北魂,동북혼)의 개설과 모금 활동을 개시하였고, 매년 의연금을 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모범적인 게닌이라는 평가가 따르고 있다.

현재에도 '東北魂TV(토호쿠타마시TV)'라는 방송을 하고 있으며, 매주 토요일마다 방송하고 있다. 카노 에이코를 비롯한 토리이 미유키, 마기 신지, 도미토코로 등 토호쿠출신의 게닌들로 구성되었다. 방송된 코너들을 수록한 DVD의 수익은 전부 의연금으로 기부된다고 한다. 가끔 토호쿠 부흥 마라톤에 참가하고 있는 과정을 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다.

4.4.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현재

위에 언급한 토호쿠타마시TV에서는 메인 캐스트로 참여하고 있으며, M-1그랑프리와 엔게이 그랜드슬램을 비롯한 다양한 코미디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기복이 없는 안정적인 실력으로 평균 이상의 개그를 보여주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믿고 보고 있다고 한다. 매년 라이브는 만석을 자랑하고 있으며 콩트와 만자이를 오가고 있어 두 분야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최고라며 인정하고 있다. 관동의 나이츠(오와라이)와 간사이의 나카가와케(中川家)와 교류하며 만자이 3대장을 담당하고 있다.

2018년 노기자카46의 자매그룹인 케야키자카46와 관련된 방송인 KEYABINGO!4을 진행했으며, 2023년 현재는 다양한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46그룹 관련 아이돌 팬덤에서는 MC 진행이 아쉽다고는 평을 하지만, 개그로 말하는 오와라이 업계에서는 늘 최고를 달리고 있다. 토미자와 타케시의 경우는 M-1 그랑프리 2018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했으며, 현재 영화 감독에 도전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을 하고 있다. 파트너인 다테도 MC 자리에 올라서며 각자의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개별활동에도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콤비다.

AVEX 소속의 락밴드인 MONKEY MAJIK과 콜라보인 우마벨러스(ウマーベラス)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토미자와 타케시가 맛집 프로그램에서 주로 쓰는 말투인데, 이것을 노래로 작곡하게 된 것이다. 공식행사나 토호쿠타마시TV에서 샌드위치맨의 메인 테마곡으로 쓰이고 있다.

'0킬로칼로리 이론'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도너츠는 모양이 '0'이고 카스테라는 압착시키면 납작해지므로 제로칼로리라는 이론.

2023년에도 도호쿠 로컬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출연하는 등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은 지금도 왕성한 도호쿠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도호쿠 방송에서 하는 샌드의 본야리~누 TV.

5. 여담

  • 오와라이에서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콤비지만 한국에서는 안잣슈, 바나나맨. 도쿄03 등에 비해서 인지도가 많이 부족한 상태다. 나무위키 문서도 가장 나중에 작성되었다.
  • 사이가 매우 좋다. 결혼 후에도 가족들끼리 교류를 할 정도로 매우 친하다고. 사이가 너무 좋은 나머지 베어계 게이 커플로 오해를 받은 전적이 있다.
  • 스케줄 사이에 시간이 생기면, 다테는 주변으로 무조건 나가는 걸 선호하지만 토미자와는 대기실에서 책을 읽거나 빈둥빈둥하며 잠을 청하는 등의 행동을 한다.
  • 토호쿠타마시TV에 출연하는 '토미도코로'라는 핀 게닌은 이들과 같은 소속사에서 활동하고 있다.
  • 다테 미키오는 다테 마사무네의 후손이라고 한다. 비록 분가(모계가 종가의 후손)라고 하지만 덕분에 미야기현의 자랑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24]
  • 2020 도쿄올림픽에서 쟁쟁한 유명인들을 제치고 이시하라 사토미와 함께 당당히 성화봉송 주자로 발탁되었다. 샌드위치맨의 일본에서의 입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
  • 다테의 험한 말투, 토미자와의 무서운 얼굴과는 달리 둘의 실제 성격은 굉장히 착하다. 또한 스캔들이나 범죄 등 유명세를 등에 업고 자만하는 태도를 한 번도 보인적이 없어서 2011년 이후로 현재까지 쭉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수많은 게닌들이 유명해진 뒤 일으키는 사고들에 비교하면 정말 샌드위치맨은 인성이 탄탄한 편.
  • 둘다 엄청난 다한증이다. DVD에서도 땀을 닦기 위해 만자이를 계속 다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테보다 토미자와쪽이 더 다한증이 심하며, 대부분의 네타에서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 다테는 혈압이 200을 넘어 지금 이 순간 바로 쓰려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 토미자와는 무릎에 물이 차고 있어 서 있는게 기적이라고 할 정도. 주기적으로 무릎의 물을 빼고 있다고 한다.
  • 토미자와가 유난히 심령 관련 체험을 자주 하는 편이고, 다테도 토미자와와 함께 있을 때 괴이한 현상을 겪는 일이 많다고 한다.

6. 관련 사이트



[1] 2022년에 결성한지 25주년을 맞아 원로 게닌이 된 샌드위치맨은 이제 TV에서는 주로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을 하고 있으며 개그는 라이브 투어에서 선보이고 있다.[2] 토호쿠는 음악적으로는 오다 카즈마사, 요시 이쿠조 등을 배출하고 자체 록, 포크, 재즈씬이 발달하는 등의 성과가 있지만 코미디를 비롯한 예능 면에선 약하다.[3] 오와라이 계에서 사이가 좋은 콤비는 매우 드물다. 보통은 어느 한 쪽이 인기를 쓸어가기 때문에 한 쪽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안잣슈의 경우도 마찬가지. 와타베 사건 이전까지만해도 안잣슈의 인기는 와타베가 독차지했으나, 와타베가 실추한 이후로는 코지마가 왕성하게 활동중이다. 오와라이 계에서 이렇게나 사이가 좋고 골고루 인기있는 콤비가 상당히 드물다.[4] 다테 미키오의 남동생의 딸이 사유리.[5] #[6] 사유리는 일반인 대상의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으며, 최소 몇 만 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선발되었다.[7] 일본어에서 'ちょっと何言っているか分かんない'는 약간 뉘앙스적으로는 '뭐라는 거야...'의 느낌이다. 실제로 친구 사이에서 이런 화법을 쓰면 상대가 기분나빠 할 수도 있다.[8] 世の中興奮することいっぱいありますけども、その中でも一番興奮することはやっぱOOですね。OO안에는 보통 뜬금없는 단어가 들어간다.[9] 전국적으로 유명한 カラオケ館(카라오케칸)의 패러디인 カラオケ舘(카라오케 타치)라던가, ABC마트의 패러디인 DEF마트 등등[10]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계속 개그를 비공개 전환했다가 다시 공개로 돌리는 등, 항상 볼 수 없는 개그들이 대부분이다. 어제 본 개그가 내일은 사라져있을지도 모르는 것. 이는 DVD구매를 독려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다테가 TV인터뷰에서 "DVD 구매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근데 렌탈하는 사람들에겐 안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가 토미자와에게 저지당하는 장면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공짜로 네타를 보는걸 별로 탐탁지 않아 하는듯.[11] 알다시피 일본은 한자가 많아 필기로 대본을 작성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모된다. 첫 글자만 치면 대부분 원하는 한자로 변환이 가능한 PC로 대본을 작성하는것이 훨씬 편하다.[12] 다테는 정말 현재인 2019년 기준으로 믿을 수 없을만큼 심각한 컴맹이다. 이를 소재로 활용한 꽁트 또한 있다.[13] 섹스 온 더 비치의 패러디라는 이야기가 있다.[14] 표준어보다는 에도벤에 가깝다.[15] 다테가 꽁트에서 주로 하는 말인 '시끄러워(うるせぇーよ)' 같은 말은 일본에서 꽤 공격적인 어투이며, 다테같은 태도로 편의점이나 서비스 직원을 대하면 바로 경찰이 출동할 수 있다. 일본은 서비스업 노동자에 대한 권리 또한 굉장히 엄격하다. 예를 들면 편의점에서 고액 계산을 모두 동전으로만 해도 편의점 점원이 경찰을 부른다. 그러니 다테와 같은 저런 공격적인 말투를 쓰면 절대 안된다.원룸에서 소음 공해 일으키면 옆집에서 저런 말 하기도 한다. 참고로 うるさい 자체는 표준어기 때문에 소음 공해로 신고당했을 때 경찰이 주의를 줄 때도 저 단어를 사용한다. 그냥 반말+さい를 せぇ로 바꾸는 표현이 문제. 물론 친구끼리는 쓴다고 문제 생길 표현은 아니다.[16] 가끔 럭비와 관련된 네타를 하는데, 이러한 경험에서 나왔던 것이다.[17] 다테의 부모님은 모두 금융계에서 일하고 있었다. 다테의 회고를 들어보면, 다테는 어릴적부터 부모님이 예능, 버라이어티, 개그 등을 보지 못하게 했었다. 유일하게 아버지가 목욕 중에만 몰래 버라이어티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상술한 바와 같이 다테의 집안은 명문가 집안이다. 역사와 전통있는 명문가 집안에서 오와라이 게닌이라니..반대에 부딪히는게 어찌보면 당연하다.[18] 당시에는 딱 3년만 힘내면 어떻게든 될거야! 라고 생각해 어차피 친구사이니 도쿄에서 동거생활을 했다고 한다. 고교 럭비부에서도 합숙해 본 적이 있으니 쉬울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19] 둘이 심야에만 만나며, 밤낚시를 즐겼다고 한다.[20] 샌드위치맨의 라이브를 보면 항상 코지마씨가 등장한다. 코지마씨는 이때부터 샌드위치맨을 응원해주던 사람이었으며, 자기 혼자서 티켓을 여러개 구입하여 샌드위치맨의 할당량을 채워주기도 하는 등 무명 시절부터 든든한 응원자였다. 그 시절 그 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하는 샌드위치맨 듀오가 라이브마다 코지마씨를 일으켜세워 소개해주는 이유가 바로 그것.[21] 그중에 다테가 기억하는 것 중 가장 충격적인 알바는 킨시쵸에서 한국인밖에 없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담을 하는 알바였는데, 한참 일본어로 만담을 하고 있으니 점원이 와서 "저기..여기 그 누구도 일본어를 몰라서요...한국어로 해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는 것. 그 당시만 해도 일본의 대표 게닌으로 성장할 줄은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22] 2019년 기준, 2019년 라이브 또한 판매 시작 이틀만에 전국의 전석이 매진되었다. 샌드위치맨은 이제 굉장히 노련한 게닌으로 추앙받기 때문에 TV등에서 만자이를 진행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TV에서 샌드위치맨의 만자이를 볼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샌드위치맨의 만자이를 보려면 라이브를 가는 수 밖에 없다. 라이브 티켓을 구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23] 전 소속사인 플랫 파이브가 만자이를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24] 게닌 활동 당시에는 가명을 쓰라는 말도 들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