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샤를 다르투아 Charles d'Artois | |
생몰년도 | 1394년경 ~ 1472년 7월 25일 |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아르투아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외 백국 | |
아버지 | 필리프 다르투아 | |
어머니 | 마리 드 베리 | |
형제 | 필리프, 본, 카트린 | |
아내 | 잔 드 사부아즈, 엘린 드 멜룬 | |
직위 | 외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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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군의 일원으로서 잉글랜드군에 맞서 싸웠다.2. 생애
1394년경 프랑스 왕국 아르투아에서 외 백작이자 프랑스 무관장이었던 필리프 다르투아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형 필리프[1], 누이 본[2], 카트린[3]이 있었다. 1396년 십자군에 참여한 아버지 필리프가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오스만 술탄국의 포로가 된 뒤 옥고를 치르다가 1397년 7월 16일에 사망한 후 외 백작위와 영지를 계승했다.샤를은 아르마냑파에 가담해 부르고뉴 파에 맞서 싸웠고, 1412년 퐁트네, 듄르르로이를 공략하고 부르주 공방전에 참여했다. 1414년 콩피에뉴, 누아용, 수아송, 바퐁을 공략했으며,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이 숨은 아라스 공방전에 참여했다. 1415년 10월 25일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 선봉대 사령관을 맡았다가 생포된 뒤 잉글랜드로 끌려간 23년간 억류되었다가 1438년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프랑스로 돌아왔다. 1440년 샤를 7세의 왕권 강화 정책에 반발한 대귀족들이 프라그리 반란을 일으켰을 때 샤를 7세의 편에 섰다. 그해 가을 존 탈보트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에게 포위된 아르플뢰르를 구원하기 위해 출진했지만, 존 탈보트가 아르플뢰르를 공략하는 걸 막지 못했다.
1442년 5~6월 프랑스 무관장 아르튀르 드 리슈몽, 포병대장 장 뷔로 등과 함께 샤를 7세의 타르타 원정에 참여했으며, 퐁투아즈 공방전에서도 두각을 드러냈고 크레유 공략에도 일조했다. 1449년 샤를 7세의 노르망디 원정에 참여했으며, 퐁오드메 공방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일드프랑스, 브리, 상리스의 집행관을 역임했고, 노르망디 공국의 보안관, 파리의 주지사를 역임했다. 1465년 루이 11세에게 반발한 대귀족들이 공익 연맹을 결성하고 반란을 일으켰을 때 루이 11세를 지지했으며, 파리 방어 임무를 맡았다.
샤를은 생전에 필리프 드 사부즈의 딸인 잔과 처음 결혼했고, 1449년 잔이 사망한 뒤 1454년에 멜룬 자작 장 4세 드 멜룬의 딸인 엘린과 재혼했다. 그러나 자녀를 끝내 낳지 못했고, 1472년 7월 25일에 사망했다. 사후 그의 조카이며 느베르 및 레텔 백작인 장 드 부르고뉴가 외 백작위와 영지를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