Šiauliai[1] 셰울레이 | |||||
시기 | 시장 | ||||
국가 | 리투아니아 | ||||
주 | 셰울레이 주 | ||||
면적 | 81.13km² | ||||
인구 | 99,462명[2] | ||||
시간대 | UTC+02:00(서머타임 적용) | ||||
셰울레이 행정 사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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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투아니아의 도시로 셰울레이 주의 주도이다. 리투아니아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2. 언어별 표기
리투아니아어 | Šiauliai(셰울레이, [ɕɛʊ̯ˈlʲɛɪ̯ˑ]) |
라트비아어 | Saule(사울레)[A], Šauļi(샤울리) |
폴란드어 | Szawle(샤블레) |
독일어 | Schaulen(샤울렌) |
러시아어 | Шавли(샤블리)[A], Шяуляй(샤울랴이) |
이디시어 | שאַװל(샤벨) |
3. 역사
사모기티아인과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 사이에서 벌인 사울레 전투에서 처음 묘사되었다. 16세기 마그데부르크법을 통해 자유도시의 지위를 얻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도시 내 건물의 85%가 전소되었다. 1929년이 되어서야 도심이 재건되었다.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1941년 6월 26일에 독일 국방군이 침략해왔는데, 당시 인구의 ⅕ 정도가 유대인이었던 관계로 6월 29일 첫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군이 점령한 지 일주일만에 약 700명이 주변 숲에서 총살당했다는 증언도 있다. 7월 29일부터 여름 내내 독일군은 약 8,000명의 유대인을 사살했고 린쿠바에서 끌려온 125명의 유대인도 이 지역에서 사살당했다. 유대인뿐만아니라 리투아니아인과 러시아인도 공산당 또는 청년공산당에 소속되어있으면 학살 대상이었다.
전후, 소련에 의해 도시가 재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