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西路軍政署1919년 서간도에서 조직된 항일 독립운동 단체.
2. 결성과 활동
서로군정서의 결성은 1919년 3.1 운동 이후 조직된 한족회(韓族會)가 전신이 되어 출발하였다. 한족회는 그 전신이 경학사에서 부민단으로, 다시 부민단에서 한족회로 이어지는 계보를 가지고 있으며,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한족회로 모여들었다.1919년 5월, 한족회는 산하에 군정부를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서로군정부였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제의에 따라 서로군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서로군정서로 조직을 개편한다. 서로군정서에 참여한 주요 인물로는 지청천이 있는데 서로군정서에서 사령관을 맡았다.
서로군정서는 군자금을 모집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고, 신흥무관학교와 연계하여 독립군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서로군정서는 국내 진공 작전을 펼쳐서 친일 관료나 밀정을 제거하거나, 주재소나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의 활동을 펼친다.
하지만 1920년 일본군이 간도 참변을 일으키면서 서로군정서는 독립운동에 위기를 맞게 되었다. 서로군정서의 기반 조직인 한족회가 일제에 의해 붕괴되고, 러시아로 갔던 독립군은 자유시 참변으로 인해 와해되면서 서로군정서는 독립운동에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결국 서로군정서는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 통합 논의에 따라 대한통군부로 개편되었고 통군부로 통합 흡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