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서재만(徐在萬) |
생몰 | 1904년 9월 23일 ~ 1984년 4월 19일 |
출생지 |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모도리 |
사망지 | 전라남도 완도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서재만은 1904년 9월 23일 전라남도 오나도군 청산면 모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3년 9월 청산면 모도리의 대모도 서부락에서 10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배달청년회(倍達靑年會)를 조직하고 서기(書記)로 활동했다. 청년회의 당초 목적은 마을의 개량서당(改良書堂)을 후원하는 것이었지만, 점차 회의를 열 때마다 애국가와 혁명가를 합창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서당 생도들에게 애국가를 가르치며 "조선독립만세"를 삼창(三唱)하기도 했다.1925년 1월 월례회의에서, 청년회 회원들은 일본인 및 친일인에게 동정하지 말고 그들과 교제하지 말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같은 해 4월의 월례회의에서는 "경찰당국 및 일본인을 파괴할 것"과 "우리는 절대로 대한을 위해 활동할 것"을 결의했다.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다른 동지들과 함께 체포된 서재만은 1926년 6월 29일 광주지방법원 장홍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84년 4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서재만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