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위나라의 토촉호군에 대한 내용은 서질 문서 참고하십시오.
徐質/徐箕
(? ~ 2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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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로 이성태수. 《정사 삼국지》의 <문제기>와 《자치통감》에는 서질(徐質)[1], <당자전>에는 서기(徐箕)로 기록되어 있다.2. 생애
225년 6월 병사 채방 등이 군을 이끌어 반란을 일으키자 살해당했다.이 당시 위나라에서는 2차례 손오 원정(조비의 남정)에 실패하고 225년 위나라에서 3번째 원정을 계획하는데, 포훈이 반대했지만 이를 강행하기로 하고 준비하면서 군사를 이끌고 내려가기 전에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 반란에서 채방이 당자를 추대해 우두머리로 삼았으며, 채방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조정에서 파견한 둔기교위 임복과 보병교위 단소 등에게 청주자사 왕릉과 협력해 그들을 토벌하고 평정하도록 했다.
결국 채방의 반란이 진압되면서 그들 가운데 협박을 받았거나 무리하게 끌려들어간 자와 망명한 자들은 모두 죄를 면해줬다고 하며, 이 반란이 진압되자 우두머리로 추대됐던 당자는 그대로 도망가서 바다를 건너가 오나라의 장수가 되었다고 한다. 10월 위나라에서 계획한 3번째 원정이 실행된 것을 보면 반란 자체는 얼마 가지 못하고 금방 진압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