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00:05:28

석고대죄

1. 개요2. 출전3. 유래4. 목적5. 실제 사례6. 현대7. 기타

1. 개요

고사성어
자리 볏짚 기다릴 허물
일본어 : むしろにうつぶしてたいざいする
중국어 : xí găo dài zuì

거적을 깔고 앉아 벌을 받기를 기다린다.

스스로 지은 죄에 책임을 지고 대문이나 궁문 아래에 짚으로 만든 깔개에 무릎 꿇고 앉아, 왕이나 상관의 처분을 기다리는 행위에서 비롯된 말이다. 비슷한 말로 부형청죄(負荊請罪)가 있다.

2. 출전

《사기(史記)》〈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

3. 유래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조(趙)나라와 대치 상황에 있던 중, 진나라의 승상 범수(范睢)는 과거 죽을 처지에 놓였던 자신을 구해준 적이 있는 정안평(鄭安平)을 추천하여 조나라를 공격하러 보냈다. 그런데 정안평은 조나라 군대에 포위당해 전세가 위급해지자 병사 2만 명을 데리고 조나라에 투항해버렸다. 이 일로 범수는 멍석을 깔고 앉아 벌받기를 기다렸다[席稿請罪].

진나라의 법에 따르면, 사람을 추천했는데 그가 죄를 범하면 추천한 사람도 같은 벌을 받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에 따라 범수는 삼족을 벌해야 마땅했으나, 왕은 범수를 매우 신임하여 오히려 이 일을 함부로 발설하는 자를 정안평과 같은 죄로 다스리겠다고 하며 범수를 다독였다.[1]

4. 목적

석고대죄를 할 때는 관과 의복을 벗은 소복 차림으로 거적때기를 깐 바닥에 꿇어앉는다. 당시 의관은 양반에게는 기본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차림은 현대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싸구려 돗자리를 깔고 팬티와 런닝셔츠만 걸치고 꿇어앉아 있는 꼴'이 되는 정도로 수치스러운 모습이다.

즉, 이 자체가 큰 처벌. 또한 벌을 청하며 '기다리는' 것이므로 벌을 내릴 사람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눈이 오든 비가 오든 계속 죄를 청하며 며칠 동안 바닥에 앉아있어야 한다.

사실 '이러이러한 벌을 내려주십시오'라고 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제가 이렇게 볼품없는 차림으로 죄를 청하고 있으니 그만 뜻을 거두어 주십시오'의 의미에 가까웠다. 자신을 상대에게 한없이 낮추어 상대로 하여금 주장을 꺾게 하거나 반대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게 하려는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5. 실제 사례

관용적인 표현으로 상소문 등에서 신하가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 "석고대죄할 뿐입니다." "석고대죄하면서 기다립니다." 등으로 쓴다.

사극에서는 자주 나오지만, 석고대죄를 했다는 기록은 그리 많지는 않다. 석고대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위 관료 혹은 왕족들 정도나 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석고대죄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동원할 만큼 어떤 정치 문제가 크게 확대되는 일이 적었다.
  • 영조 시대
    • 이광좌영의정으로 임명되었을 때, 지금의 창덕궁 돈화문(敦化門) 밖에서 관(冠)을 벗고 석고대죄(席藁待罪)했다는 기록이 있다.
    • 사도세자가 석고대죄를 했다는 기록을 여럿 찾을 수 있다. 아마 조선 시대에 가장 석고대죄를 많이 한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 카노사의 굴욕

6. 현대

사극의 영향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정치권, 언론 등에서 잘못한 사람에게 석고대죄하라고 비판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용서를 빈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한다. 가끔 실제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과시성 쇼로 여겨져서 별로 좋은 말은 못 듣는다.

7. 기타

일본 창작물에서의 도게자를 번역할 때 비슷하게 엎드려 사죄하는 석고대죄로 종종 의역한다.

무한도전 2010년 달력 만들기 특집의 12월 분 달력의 주제가 불구덩이 속에서 석고대죄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원형 불구덩이 안에 노홍철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들어가고 노홍철은 염라대왕 역을 맡아 촬영했다.

[1]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석고대죄(席藁待罪)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