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22:54:13

세배

1. 개요2. 내용3. 세배법

1. 개요

세배()는 새해를 맞아 손아랫사람이 손윗분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풍습을 말한다.

2. 내용

아침 일찍이 남녀노소가 모두 새옷(설빔)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낸 뒤에 자리를 정리하여 앉는다. 그리고는 조부모·부모에게 먼저 절하고, 형·누나 등 차례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을 하여 새해 첫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는 일가친척과 이웃어른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요즈음은 또 직장 관계로 해서 회사 사원들은 회사 윗사람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리기도 한다. 세배를 드려야 할 어른이 먼 곳에 살고 있을 경우, 정월 15일까지 찾아가서 세배하면 예절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옛날에는 30∼40리까지도 걸어가서 세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배하러 온 이에게 대하여 어른에게는 술과 음식을 내어 놓는 것이 관례이나, 아이들에게는 술은 주지 않고 약간의 돈 또는 떡과 과일을 준다. 또 상중에 있는 사람은 정월보름날까지 출입하지 않는다. 세배 때 궤연(几筵 : 죽은 이의 혼령을 모셔둔 곳)을 모신 집에서는 먼저 궤연에 조문하고, 상주에게 인사를 한 다음, 웃어른에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차례로 세배한다. 웃어른에게 세배를 할 때는 절을 하고 나서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고 오래오래 사십시오.” 등의 새해 인사말을 한다. 세배를 받는 이도 “새해에는 승진하기 바라네.”, “새해에는 소원성취하기 바라네.” 등의 한마디씩 덕담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배 [歲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시아권, 특히 한국, 중국, 일본에서 크게 다루어지고 이루어지는 풍습으로, 유교권 국가일수록 이러한 풍습이 강하게 남아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일[1], 일본에서는 양력 1월 1일에 이루어진다.

효(孝)를 과시하여 예의를 갖추고 무병장수와 가내평안을 기원하는 풍습 중 하나이다. 새해의 시작을 알림으로써 서로 덕담이 오고 가는 훈훈한 풍습이다.

원래 세배 풍속은 새해소원이나 출세에 관한 꿈 등을 이루길 바란다는 덕담을 하고 약간의 돈을 주기도 하면서, 떡이나 과일 같은 간식을 조금 쥐여주는 문화였다. 지금처럼 돈 달라고 마음에도 없는 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머리만 굽히면 돈이 나오는 줄 안다고 하는 어르신들도 계실 정도다.

세배하고 돈을 받는 게 미안하다 느껴진다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는 말도 있다. 이런 경우는 세배보다는 용돈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

보통 세배는 설날 당일 가족이 모여서 한다. 세배 순서는 당연히 항렬 순을 따지며 높은 사람이 먼저 받는 것이 예의이다. 일반적으로 조부모 항렬 → 부모 항렬 순으로 내려가며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면 같은 항렬 간에는 세배를 하지 않는다. 세배 자체가 '문안 인사'이니 두세 살 차이난다고 하는 것은 좀 이치에 맞지 않기도 하다. 물론 항렬과 나이가 역전된 경우에도 하지 않는다. 사실 유교에서의 항렬 같은 질서는 군대의 계급같은 개념이 아니기에 항렬이 높다고 무조건 윗사람은 아니다. 삼강오륜에서 장유유서가 있듯, 나이가 어리면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존대하는 게 기본이다. 그렇다고 또 무조건 나이순은 아니고 나이가 어리면 나이 많은 사람을 존대하고, 항렬이 낮으면 항렬이 높은 사람을 존대한다. 결국 상호존대가 되는 것이다.

7~80년대에만 해도 이웃집에 찾아가서 세배를 드리기도 하였지만[2] 현대에는 핵가족화도 진행되었을 뿐더러, 옆집과의 교류 자체가 적어져서 가족 간에나 하는 풍습이 되었다. 세뱃돈이라는 것도 있고 해서 요새에는 어지간이 아는 사이가 아니면 세배를 하지 않는다. 원래는 연말연시 친목모임처럼 알고 지내는 사람을 찾아 돌아다니며 간단한 문안 인사를 하는 개념이었다. 절의 경우 요즘은 거의 하지 않지만 한국 문화권에서 기본적인 인사였다. 꽤 최근까지도 평소라도 친척집에 들른다면 안방에 들러 절을 하였고, 공부를 위해 상경한 대학생의 고향집에 방학 때 친구들이 놀러가더라도 일단 부모님을 만나뵈면 다같이 절을 하며 인사하는게 보통이었다.

요즘은 전화나 스마트폰등 연락수단이 다양해지고 명절의 의미단순화, 핵가족화로 인해 단순히 직계 가족끼리만 모이지만, 예전에는 자기가 알고 지내는 인물 있는 선에서 방문 가능한 어른들에게는 최대한 찾아가 절을 하는게 기본이었다. 일정도 단순히 설날 당일이 아닌 대보름까지 15일 정도까지는 방문 가능했다. 현재는 체감이 되지 않지만, 과거에는 천호동성내동은 기본이고 멀리는 무려 성수동, 구의동, 명일동, 암사동에서 풍납동까지 와서 세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어디냐고)[3] 1960년대 이전에 유년기를 보냈던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는 읍장이나 면장, 이장[4], 혹은 동장, 통장[5], 반장, 학교 교사나 대학교 교수, 졸업 후엔 은사에게도 세배를 드렸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직장상사나 존경하는 선배까지도 찾아갔었다. 운동 선수라면 감독이나 코칭 스태프에게도 세배를 드렸다. 예전 주부들이나 어머님들의 명절증후군 얘기중에 명절이면 손님들이 올 때 마다 음식상 차리는게 일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처럼 가까운 가족만 모이는게 아니라 최대한 여러군데 돌아다니며 절을하기 때문에 명절 내내 여러 사람이 찾아왔었기 때문. 더불어 지금은 설날 당일만 하지만 예전에는 새해 문안 겸 세배의 경우 대보름 전까지는 찾아가는게 무례한게 아니었다. 현대에는 와상생활을 하는 노인이 늘면서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성인용 기저귀를 착용하거나 와상생활을 한다면 세배를 하지 않거나[6], 휠체어에 앉히고 세배를 드린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의 한 마을에서는 설날 때마다 주민들이 모두 모여 동네 노인들에게 함께 합동 세배를 드리는 '위촌리 도배례'라는 전통이 있다. 1571년 마을의 대동계가 결성된 이후 시작되어 45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데 2020년부터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됐다가 3년 만인 2023년 1월 23일에 재개됐다. 주최 측은 어른을 공경하는 정신이 담긴 도배례의 전통이 다음 세대에도 잘 이어질 수 있도록 무형문화재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다. #

과거에는 상중의 집에는 세배를 안 갔으며, 현재는 세배를 해서도 받아서도 안 되는 종교인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있는 집에는 세배를 가지 않으며 세배를 받지도 않는다. 개신교 신자들은 목사장로에게, 가톨릭 신자들은 신부에게, 불교 신자들은 스님에게 세배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무슬림들은 세배가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교리와 충돌한다는 종교적인 이유로 세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부 집안에서는 임산부[7] 세배를 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종교적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임산부가 절을 하면 자세가 나오지 않고 몸에 무리가 간다는 이유에서 못 하게 하는 것이다. 그 외에 복중 태아가 가장 어른이라는 믿음 때문에 임산부가 세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하반신장애인 등 일부 지체장애인들은 다리를 못 움직이므로 세배를 못 한다고 한다.

2021년에는 설날에도 5인 이상 집합금지가 걸리면서 면장이 마을 노인을 찾아 세배를 하기도 했다.

3. 세배법

남자는 왼손이 위,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오며, 절은 한 번만 한다. 남녀별 상의를 여미는 경우와 같으니, 어느 손이 위로 오는지 헷갈릴 때는 이를 참고하면 된다. 제사 때나 상중에는 이와 반대이며 두 번 한다. 남자의 경우 한복을 입고 세배할 때 두루마기를 입어야 한다.


[1] 윤달은 제외.[2] 현재는 체감이 되지 않지만, 과거에는 왕십리화양리, 구의동, 천호동, 성내동, 암사동, 길동, 거여동, 잠실동, 명일동 같은 동네에서 풍납동으로 세배를 가는 경우도 있었다.[3] 게다가 그 시절이면 무려 마천동이나 거여동에서 천호동으로 걸어서 통학하던 시절이다.[4] 이 셋은 고향이 시골인 경우.[5] 이 둘은 고향이 도시인 경우.[6] 이유는 누운 사람이나 아픈 사람에게 절을 하는 것은 저승길에 잘 가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성인용 기저귀를 착용할 정도면 이미 거동이 불편해질 정도로 아픈 경우가 많아서 성인용 기저귀를 착용한 사람에게는 세배를 잘 하지 않는 것이다.[7] 특히 그 임산부가 만삭일 때는 무조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