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바르톨로뮤 부르게르시 Bartholomew Burghersh | |
생몰년도 | 미상 ~ 1369년 4월 5일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서식스 부르게르시 힐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노퍽셔 | |
아버지 | 대 바르톨로뮤 부르게르시 | |
어머니 | 엘리자베트 드 베르됭 | |
형제 | 헨리, 토머스, 조앤, 마가렛 | |
부인 | 세실리 웨이랜드, 마가렛 | |
자녀 | 엘리자베스 | |
직위 | 부르게르시 남작, 가터 기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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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 시기에 프랑스군을 상대로 맞서 싸웠다.2. 생애
잉글랜드 왕국 서식스 부르게르시 힐 출신으로, 아버지는 2대 부르게르시 남작 대 바르톨로뮤 부르게르시이고, 어머니는 제2대 베르됭 남작 티보 드 베르됭의 딸인 엘리자베트이다. 1339년 에드워드 3세의 플란데런 백국 원정에 참여했으며, 1342 ~ 1343년에 브르타뉴에서 싸웠고, 1346년 크레시 전투에 아버지와 함께 참여했다. 이후 1차 칼레 공방전에도 참여했다. 그는 여러 전투에서 뛰어난 용맹을 보여 왕의 주목을 받았고, 1348년 가터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다.1349년 가스코뉴 전선에서 복무했고, 1355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직위와 재산을 물려받았다. 1356년 흑태자 에드워드의 루아르 원정에 참여했으며, 푸아티에 전투 직전에 전위대를 이끌고 정찰 나갔다가 프랑스의 대규모 파견대를 격파하고 적 기사 32명을 생포했다. 이후 푸아티에 전투에 참여해 용맹을 떨쳐 승리에 일조했다. 1359년 에드워드 3세의 프랑스 원정에 참여했고, 1360년 브레티니 평화 협상에도 참여했다. 이때 그는 협상장에 가던 중에 프랑스군에 붙들렸고, 한동안 억류되었다가 에드워드 3세가 개입한 덕분에 풀려났다.
1362년 아일랜드를 관리하는 문제를 맡은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고, 1364년 런던에 억튜되었다가 막 풀려난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도버 회의에 참여했다. 1366년 에드워드 3세의 지시에 따라 아비뇽으로 가서 교황 우르바노 5세를 찾아가 잉글랜드가 교황청에 빌린 돈 문제를 놓고 협상했다. 1369년 4월 5일에 사망했고, 노퍽에 있는 월싱엄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3. 가족
- 세실리 웨이랜드(? ~ 1354): 기사 리처드 웨이랜드의 딸.
- 엘리자베스 부르게르시(1342 ~ 1409): 초대 디스펜서 남작 에드워드 르 디스펜서의 부인.
- 마가렛 기소르: 출신이 명확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