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13:49:59

소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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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소개3. 소케이센4. 고려대 - 연세대와의 관계5. 기타6. 관련 문서

1. 개요

구글 어스로 본 소케이의 캠퍼스
파일:소케이.jpg
소케이 ([ruby(早慶, ruby=そうけい)])
일본사립대학와세다대학게이오기주쿠대학을 통칭하는 대학군 용어이다. 게이오기주쿠대학 측에서는 어순을 바꿔 게이소(慶早)로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그 쓰임은 극히 적다.[1] 게이오기주쿠대학 내의 소케이센 포스터나 게이오기주쿠-와세다 간 행사 포스터도 소케이(早慶)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 소개

파일:550065B2-91A1-444B-A50B-5A2640FBED52.jpg

각 대학 동문의 모교 기부율
  • 와세다: 19.3% + 22.8% = 42.1%
  • 게이오: 20.5% + 34.1% = 54.6%

3. 소케이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소케이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이 두 대학은 매년 소케이센을 개최한다.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과 게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学)이 벌이는 대항전으로, 게이오대학에선 나 먼저 원리에 따라 게이소센(慶早戦)이라고도 한다.
연고전과 특별히 더 비슷한 점이 있다면, 바로 경기 후 이어지는 퍼레이드다. 소케이센 야구 경기에서 승리한 쪽은 경기장에서부터 학교까지 초롱불을 들고 행진한다. 흡사 연고전의 기차놀이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퍼레이드에는 지역주민과 동문들도 활발히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소케이센이야말로 ‘지역과 함께하는 축제’가 아닐까. 연고전은 우리대학교의 연중행사 중 가장 큰 규모의 행사다. 매번 많은 이들의 관심과 기대가 쏠린다. 그런 만큼 연고전에 대해 꾸준히 제기되는 문제들을 개선해 모두가 즐기는 축제로 나아가야 한다. - 연세대학교 춘추 기사
형식과 내용이 조금씩 달라도 본교의 선수단이 승리하고, 행여 승리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응원하는 순간 하나됨을 느끼며, 공동체의 진정한 일원이 되어가는 과정을 본다면, 한일 양국 사립 대학의 응원 문화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크게 다르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응원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 곁에 있는 선후배, 동료는 물론 나 스스로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 또한 한일 양국의 공통점일 것이다. - 고려대학교 기사

4. 고려대 - 연세대와의 관계

와세다와 게이오, 고려대와 연세대는 한일 4대학 연맹이라는 일본, 한국, 미국 동문 위주 공동 동창 행사도 202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실시해오고 있다. 20세기 논의 및 실시되기 시작하여 21세기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 경성 학생생활 르포르타주는 경성(서울)의 4개 대학, 즉 경성제국대학과 연세대의 전신 연희전문, 고려대의 전신 보성전문, 그리고 이화여자전문 학생들의 특징을 비교했다. 연희전문은 '청춘 구가형', 보성전문은 '호걸형'이라고 묘사했다.
이 중에서도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과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의 학교(학생) 기질을 비교한 대목은 재미있다. "학교건물이 신촌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 언덕 위에 있어 이화전문이 언덕을 넘어 저편에 로맨틱하게 위치하는 점 등, 지나치게 혜택받은 그들에게 질투가 날 정도다. 연희전문 학생과 이화전문 학생이 사이가 좋은 것은 자연의 이치다.(중략) 그들은 미국학생처럼 행복하다. 청춘을 마음껏 즐긴다" "연희가 게이오라면 보성은 와세다(대학) 풍이다. 학생은 어떠한 경우에도 선배와 상급생에게 절대복종한다. (중략) 예를 들어 보성전문의 학생이 우연치 않은 일로 학교 밖에서 억울하게 당하거나 해를 보았을 때 학생들은 당장 집단을 이루어 반드시 복수를 한다고 한다. 무서운 학교다" 고려대학교 미국교우회

고려대학교와 와세다대학교, 그리고 연세대학교와 게이오대학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전통적으로 교류도 많다. 고려대 교우회 한일4대학연맹 한일 4대학연맹 AFUAA(와세다·연세·고려·게이오) 4대학은 와세다 연세 고려 게이오대학으로 와세다대 남가주 동문회(회장 준페이 토모나가)가 주관
파일:3CC5D2B8-46FA-4F06-9088-96A495D2B6A4.jpg
  • 고려대학교와세다대학은 적색 계열의 상징색을 공유하며, 중후한 학풍 및 캠퍼스를 지니고 있다. 과거에는 지방 출신 학생의 비율이 높다는 이미지가 있었으나 21세기 들어서는 여러 요소로 인하여 과거 이야기가 되었으며 등록금도 그런 이미지와 상반되게 비싼 편이다. 두 대학 모두 술 문화가 활발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현재 두 대학은 학-석-박 복수학위를 제공하고 있다.#
  • 연세대학교게이오기주쿠대학은 청색 계열의 상징색을 사용하며, 자유롭고 세련된 학풍을 가지고 있다. 이들 대학은 부유한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모두 19세기때부터 이어지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2] 두 대학 모두 특정 학생 그룹을 다른 캠퍼스로 보내는 속칭 '유배' 시스템을 운영하며 본캠퍼스가 모두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있다는 공통점도 공유하고 있다. 석-박 복수학위를 2005년부터 제공하고 있다. #
우리대학교와 고려대(아래 연고대)는 ‘한국 사학의 쌍벽’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강한 대학들이다. 전통적인 라이벌 관계는 친선경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발한 교류로 이어진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우리나라의 연고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제로 게이오대는 우리대학교와, 와세다대는 고려대와 교류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게이오대와 와세다대의 로고 는 눈에 띄는 차이가 없다. 게이오대의 로고는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여 있는 방패모양에 노란색 X자가 그려져 있고, 와세다대의 로고는 자주색의 마름모 안에 내학(內學)이 쓰여 있다. - 연세대학교 우리는 적이 아닌 라이벌 기사

5. 기타

  • 재학생들 사이의 학력 편차가 매우 크다. 일반전형 이외 소케이는 에스컬레이터 전형 등 금수저를 위한 별도의 무시험 입시가 존재한다.
  • 2019년을 기준으로 보면, 공인회계사의 경우 게이오대가 183명으로 1위, 와세다대가 105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신사법시험의 경우 게이오대 152명으로 1위, 와세다대가 106명으로 5위를 차지했다. 일본판 행시인 국가공무원 종합직의 경우 와세다대가 97명으로 3위, 게이오대가 75명으로 5위를 차지했다. 문과 정원이 상당히 많다는사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와세다대의 모집정원은 문과만 무려 7,210명.[3] 게이오기주쿠대학5,050명(문학부 800명, 법학부 1,200명, 종합정책학부 425명, 경제학부 1,200명, 상학부 1,000명, 환경정보학부 425명)에 달한다. 결국 소케이의 문과 정원은 상당한 규모라는 것이다.
  • 소케이 대학의 여학생 비율은 평균 34~35%대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 소케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위주 선민의식이 있는 게이오보다는 와세다가 한국인 및 중국인 유학생에 비교적 관대했다. 자세한 내용은 제국대학 문서의 조선인 관련 항목 참조.
1910년대 초에 해외 유학이란 일반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비록 합병된 나라라고 하지만 상전이 된 일본이고 학비와 물가가 비싸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윤홍섭은 한성외국어학교에서 신익희의 인품과 재능을 알아보고 함께 가길 원한 것이다. 신익희는 고심 끝에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1912년 여름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 교재로 시험준비를 서둘렀다. 일본어를 익히고 공부한 끝에 가을에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 정치경제학부에 거뜬히 합격하였다. 이 대학은 1882년 시게노부가 동경전문학교를 창설한 것을 모태로 1902년 와세다대학으로 개칭하고, 설립자가 메이지유신 뒤에 입각하여 총리대신을 지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이 일본에 있는 제국대학에 입학하려면 구제고등학교의 졸업장이 필요했는데 당시 한국에는 구제고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와세다대학과 같은 사립대학에 갈 수밖에 없었다. 신익희가 와세다대학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

6. 관련 문서


[1] 아사히신문 온라인 기사 검색 데이터베이스(聞蔵 Ⅱ 비주얼)의 1879년~1989년의 '아사히 신문 축쇄판'에서 검색을 한 결과, '소케이(早慶)'는 2,410 건, '게이소(慶早)'는 12건이 검색된다.[2] 연세대학교와 게이오대학교는 각각 1885년과 1858년에 설립되었다.[3] 링크 참고. 문학부 660명, 교육학부 960명, 국제교양학부 600명, 문화구상학부 860명, 사회과학부 630명, 법학부 740명, 정치경제학부 900명, 상학부 900명, 인간과학부 560명, 스포츠과학부 4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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