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07:26:38

손삭

孫鑠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창작물에서

1. 개요

서진의 인물으로 는 거업(巨鄴). 사례 하내군 회현(懷縣) 출신.

2. 생애

손삭은 일찍이 태수 오분(呉奮)밑에서 일하던 현리였지만, 혈통이 미천해서 귀족 출신인 동료들은 그와 함께 앉지 않았고, 이에 오분이 분노하여 손삭을 사례교위부에서 유눌(劉訥)의 도관종사로 일하게 하였다. 사예교위 유눌이 손삭을 높이 평가했고,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오분은 석포에게 손삭을 수시로 추천하여 마침내 천거가 되었다.

28년에 오나라에서는 동요를 퍼뜨려 석포가 오나라와의 내통 혐의를 받게 만들었다. 이 일로 왕침이 석포를 모함하면서 사마염이 의심해 그를 파면하고 사마망, 사마주 등을 시켜 석포가 있는 곳으로 가게 했는데, 마침 손삭은 석포가 있는 부임지인 수춘으로 가는 중이었다. 손삭이 허창에 닿았을 때는 이미 소수의 군사를 모아 은밀히 석포를 습격하러 보낸 뒤였다.

사마준의 허락으로 손삭이 사마준을 알현했는데, 둘은 동향(同鄕)[1]인 데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였다. 상황을 모르고 있던 손삭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수춘에 있는 석포의 임지로 부임했기에 그곳을 향해 가는 중이라 말했다. 사마준은 이미 조정으로부터 석포를 토벌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상황이었는데, 손삭을 이대로 보내버렸다가는 그가 수춘에 도착하자마자 모반에 휘말려 억울하게 죽을 것이 뻔하였다.[2] 사마준은 그러한 위기에 처한 자신의 동향 친구를 눈감고 모르는 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손삭에게 귀띔하길, 조정에서는 비밀리에 군사를 파견해 석포를 토벌하려 하나, "다툼을 일으킬 생각은 없다."라고 하였다. 즉, 군사를 집결시키고 있지만 단순한 제스처일 뿐이지, 석포를 정말로 무찌를 생각은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 말을 듣고 의미하는 바를 깨닫게 된 손삭은 곧장 석포한테 갔고, 석포에게 조정에서 토벌군이 온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수춘을 나와도 죽지는 않을 것이니 병사를 풀고 도정에 걸어가 죄상을 알리도록 권하자 석포는 이를 따랐다. 사실 석포에게 다른 마음이 없더라도 죄를 인정하면 죽음이라는 상황에 몰렸었다면 만에 하나 살아남기 위해 석포가 거병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마준과 손삭의 기지로 석포가 군권을 내려놓고 수춘을 나오니, 사마염이 이 소식을 듣고 의심을 풀어 석포의 병권만을 빼앗고 낙릉공의 신분으로 집에 돌아가게 했다.

손삭은 후에 상서로 옮겼다가 상서로 있을 때 나라의 잘못된 점에 대한 글을 십여 일 동안 제출했고 동 시대 사람들이 칭송했다.

3. 창작물에서

삼국전투기에서는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사도 사케조로 등장. 야마토 시리즈의 등장인물로 패러디됐던 다른 인물[3]들과는 달리 2199판이 아닌 원작에 가까운 디자인으로 등장한다.

전투외편 8편에서 처음 등장. 석포가 오나라가 퍼트린 동요와 왕침의 모함으로 인해 사마염에게 의심받던 상황이었기에 손삭이 사마준을 찾아가 석포가 위험하다면서 도와달라고 했으며, 손삭은 사마준으로부터 싸울 필요가 없는 싸움은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무조건 싸움은 피하라는 소리라고 알아들으면서 석포가 있는 수춘으로 달려갔다.

석포에게 사마준이 전해준 것을 듣고 군권을 포기하고 사마염에게 죄를 청할 것을 이야기하며, 석포가 간신배의 이간질로 죽을 것을 염려하자 이대로 있어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자신의 방법이 그나마 타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다행히 일이 잘 풀려서 이후 사마염은 의심을 접었다.

독발수기능의 난 편에서는 사마준님은 어렸을 때부터 반짝반짝 빛났었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1컷 등장했다.


[1] 사마준은 온현 출신이고 손삭은 회현 출신인데 두 곳이 하내군에 속하는지라 고향이 같았다.[2] 참고로 사마준이 석포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마준 휘하에 참군(參軍)을 맡고 있던 손초(孫楚)는 일찍이 석포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또한 손초는 곽혁(郭奕)과도 분쟁을 일으켜 사마염이 손초를 질책해 그는 한동안 관직을 떠났었으나 사마준은 예전부터 손초와 사이가 좋아 그를 다시 참군으로 삼았다. 이런 기록을 보아 사마준과 석포와의 사이가 완만했을지는 알 수 없다.[3] 왕창, 왕기, 석포, 진건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