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7 03:14:56

수필룰리우마 2세

𒌷𒄩𒀜𒌅𒊭
히타이트 군주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 -
팜바 피타나 피유스티 아니타
- -
투드할리야 푸사르마
고왕국
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라바르나 1세 하투실리 1세 무르실리 1세 한틸리 1세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지단타 1세 암무나 후지야 1세 텔레피누
중왕국
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알루왐나 타후르와일리 한틸리 2세 지단타 2세
제5대 제6대
후지야 2세 무와탈리 2세
신왕국
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투드할리야 1세 아르누완다 1세 하투실리 2세 투드할리야 2세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투드할리야 3세 수필룰리우마 1세 아르누완다 2세 무르실리 2세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무와탈리 2세 무르실리 3세 하투실리 3세 투드할리야 4세
제13대 제14대
아르누완다 2세 수필룰리우마 2세
}}}}}}}}} ||


Šuppiluliuma II
재위기간: 기원전 1207년 ~ 기원전 1178

1. 개요2. 생애3. 대중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히타이트 제국의 마지막 왕.

수필룰리우마 2세는 현재까지 알려진 히타이트 제국의 마지막 군주다.

그의 치세를 끝으로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샤는 버려져 기원전 8세기 프리기아 왕국이 인근에 요새를 세울 때까지 방치되었고, 아나톨리아 남부와 시리아 지역에 남아있었던 히타이트인들은 더이상 거대한 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에게 카르케미쉬가 멸망하면서 사라지게 된다.

2. 생애

투드할리야 4세의 아들로 태어난 수필룰리우마 2세는 형 아르누완다 3세가 후사없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그는 2가지 군사 원정을 벌였는데 기원전 1210년경 알라시야(=키프로스 섬) 원정과 타르훈타사(Tarhuntassa) 정벌이었다. 루위아어 비문에 의하면 알라시야 원정에서 수필룰리우마 2세는 알라시야의 해군을 격파하고 점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다른 군사원정은 아나톨리아 남부에 위치한 타르훈타사가 대상이었는데, 이무렵 타르훈타사는 무와탈리 2세의 아들 쿠룬타(Kurunta) 혹은 무르실리[1]의 아들 하르다푸(Hardapu)가 통치하고 있었다.[2]

무와탈리 2세의 아들로 태어난 쿠룬타는 어렸을 때 하투실리 3세한테 보내져서 길러졌는데, 쿠룬타의 형 무르실리 3세와 삼촌 하투실리 3세 간 왕위분쟁에서 하투실리 3세를 도왔고 이 공으로 타르훈타사의 통치자가 되었다. 쿠룬타는 하투실리 3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투드할리야 4세 때도 타르훈타사의 통치권을 인정받았고, 이 조약을 기록한 루위어 청동판이 현재도 남아있다.

문제는 쿠룬타는 타르훈타사의 지배자를 넘어서 히타이트 제국의 대왕 자리를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쿠룬타는 그의 인장과 관련된 바위 비문에서 대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 인장이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샤에서 나온 점을 근거로 하투샤와 타르훈타사 간 심한 정치적 균열이 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타르훈타사 원정에서 수필룰리우마 2세는 타르훈타사를 공격해 약탈했으며, 함께 열거된 서부 아나톨리아의 여러 도시들을 정복했다.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할 무렵(기원전 1180년대), 당시 우가리트 암무라피 왕은 알라시야의 왕에게 구원요청을 보냈는데 당시 우가리트는 히타이트를 돕기 위해 군사를 파견한 상태에서 적의 습격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알라시야도 사정이 어려워서 우가리트의 지원요청을 거부했고, 우가리트는 그대로 멸망하고 말았다.[3] 수필룰리우마 2세의 최후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가 멸망 후 방치된 정황이나 카르케미쉬의 지배자 쿠지 테슈브가 히타이트 왕실의 대가 끊겼으니 자신이 수필룰리우마 1세의 후예인 점을 근거로 대왕을 자칭한 점, 히타이트 멸망 후 약 20년 뒤 앗시리아가 카스쿠인[4], 프리기아인의 침공을 받았으나 격퇴한 점을 보면 좋지 못했던건 확실해보인다.

3. 대중 매체에서

  • 신화 속 양치기 노예가 되었다에서 등장한다. 현대인이 전생한 파리스의 행보로 인하여 트로이아가 점점 부강해지는걸 눈치채고서는 스파르타의 왕이 된 메넬라오스와 협약을 몰래 맺어 그가 아카이아의 패권을 쥐어 트로이를 침략할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한편으론 히타이트 신들과 조상신들한테 빌어 때가 너무 늦기 전에 트로이아를 점령해서 히타이트를 다시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등 파리스의 앞길을 막으려는 흑막으로 임약한다. 하지만 트로이 전쟁에서 아카이아 세력이 패배하는 데에 이어 안탄드로스로 진격한 히타이트 군들이 격퇴당함으로서 점점 히타이트가 궁지에 몰리자 조상신들이 직접 스스로 자신과 나머지 군들한테 빙의하게 함으로서 트로이아 군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한다. 이후에 벌어진 트로이아/아이깁토스/아카이아 연합군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파리스를 죽이려 하다가 동귀어진을 각오한 메넬라오스가 제우스의 번개 조각들 중 하나를 집어서 가한 일격에 결국 사망한다.

[1] 무르실리 3세로 추정된다.[2] 다만 하르다푸는 기원전 13세기 인물이 아닌 기원전 8세기 인물이라는 설이 있다.[3] 뒤늦게 카르케미쉬에서 병사들을 파견했을 때는 우가리트가 이미 멸망당한 상태였다고 한다.[4] 아나톨리아 북부와 북동부 지역에 거주했던 비유럽-인도계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