𒌷𒄩𒀜𒌅𒊭 히타이트 군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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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watalli II / Muwatallis Muwatallish
(? ~ 기원전 1272년)
1. 개요
히타이트 신왕국의 제9대 왕. 무와타리 혹은 무와타리시라고도 부른다. 무르실리 2세의 아들이며, 하투실리 3세의 형이다.2. 일대기
아시리아 등 오리엔트 신흥 강국의 외침에 맞서 국방에 신경을 기울인 것으로 유명하다. 기원전 1295년에 즉위해 아나톨리아 서쪽에 있는 소왕국들이 일으킨 반란을 평정했고 아르자와의 동맹국 중 하나인 윌루사를 공격해 종속국으로 삼았으며, 카쉬카족들을 대처하기 위해 하투실리 3세를 그 방면의 태수로 임명했다.수도를 타르훈타사로 옮겼고, 하투실리를 옛 수도였던 하투샤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이집트 람세스 2세의 숙적으로 히타이트와 이집트간에 국운을 건 기원전 1274년에 일어난 카데시 전투를 벌였으며, 이 때 하티, 나흐리나, 아르자와, 피다사, 다르다노이, 마사, 카르키사, 리키아, 윌루사, 아라완나, 카쉬카, 키주와트나, 카디, 카르카므쉬, 할파, 누하쉬샤, 카데쉬, 우가리트, 무사나타, 캅수, 이니사 등이 히타이트 측에 참전했다.
카데시 전투에서 오랜 난전 끝에 이집트군을 격파시켰다. 히타이트군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진격하여 이집트의 중요 거점을 점령했고, 이집트의 동맹국을 히타이트에 종속시켰으며, 이집트의 영향력을 가나안 지역까지 축소시켰다.
무와탈리 2세의 군사 활동 덕분에 히타이트는 강대국이 되었지만 그는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그의 어린 아들 무르실리 3세가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삼촌 하투실리 3세가 조카를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했다. 하투실리 3세는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세계 최초 평화 조약인 카데시 조약을 체결하여 평화를 맺었다. 하투실리 3세까지는 히타이트의 전성기였지만 그가 죽고 난 이후에 히타이트는 서서히 약해지고 내분으로 분열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