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년 ~ 209년)
1. 개요
후한의 인물. 자는 중예(仲豫). 순검의 아들. 순욱의 사촌형. 예주 영천군 영음현 사람.2. 생애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가난에 시달렸고 12세에 춘추에 통달했으며, 집에 책이 없어 이웃집의 책을 한 번 보면 그대로 외울 정도로 문재가 있었으나 영제 때 환관들의 횡포를 보고 은거해 독서에만 열중했다. 당시에 사람들은 그의 인물됨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순욱만은 그를 높이 여겨 존경했으며, 마음이 맑고 잡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았고 저술을 남기는 것을 좋아했다.순열이 국가를 다스리는 이치를 논하다.건안 초에 황문시랑, 비서감, 시중을 역임했고 시강을 담당했으며, 반고의 한서가 번잡하면서 읽기 불편하다고 해 조칙을 받아 한서를 토대로 한기를 편집했다. 당대에 이름난 사람이라 순유, 종요, 진군, 사마의, 치려, 화흠, 왕랑, 두습, 신비, 조엄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순욱의 천거를 받았다.
진군이 순열을 순욱, 순유, 순연, 순심과 함께 당대에 상대할 자가 없다고 평가했으며, 훗날 역사가인 호삼성은 국가흥망의 대강에 대해서는 순열이 순욱, 순유보다는 낫지만 천하의 형세를 보고 승리를 거두는 일에는 모자랐다고 했다. 또한 조조는 간웅이었기에 순욱과 순유를 두었으나 순열은 오로지 천자 곁에 있었다라고 평했다.
그의 저서는 한기, 신감, 숭덕, 정론 등이 있지만 현대에는 신감만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