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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비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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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스노비즘의 유래
2.1. 구별짓기와 과시소비2.2. 역사철학적 개념으로서의 스노비즘2.3. 번역 문제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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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노비즘(snobbism)'이란 어떤 대상의 알맹이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남에게 과시하거나 돋보이게 하기 위해 껍데기만 빌려오는 성향'허영'을 나타내는 문화사회학 용어이다. 예컨대 상품, 서비스업 등의 서열화, 아파트 브랜드들의 펫네임이나 상품명(혹은 제품 설명) 등에 남발되는 외국어(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보그체 등), 학교의 명문화 등으로 부동산을 제고하려는 시도 등이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문화 허영'으로 순화하려고 했다.

세간에서 '얕은 지식으로 허세를 부리는 눈꼴사나운 태도'를 가리키는 의미로 축소해서 쓰는 신조어 및 유행어는 사실상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다만, 비슷한 의미를 가진 유행어는 스노비즘의 주된 특징인 문화 전반이 아닌 지적인 측면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이 때의 유행어는 '지적 허영', '지적 스노비즘으로 축약해 표현할 필요가 있다.

2. 스노비즘의 유래

19세기 영국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을 때 영단어 'snob'에는 하류층 사람들이라는 의미밖에 내포되어 있지 않았으나 19세기부터 '지성인인 척하며 잘난 체하는 허영심 많은 사람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는 『속물열전 The Book of Snobs』에서 이런 스노브는 단지 하층계급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모든 계급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누군가 하층계급 출신이며 인정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스노브라고 판단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판단자 또한 또 하나의 스노브에 불과하다는 사실만을 알려주게 될 뿐이다.

스노비즘은 명확하지 않은 개념일 뿐더러 일정하게 합의된 의미가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려운 개념이므로 스노비즘의 의미를 성급하게 규정하려는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특히 누구나 어느 정도씩은 스노비즘일 수밖에 없는 현실상 성급하게 규정되는 스노비즘은 단지 자신의 반대편을 악한 것으로 놓고 자기 자신을 선한 것으로 놓으려는 원한에서 비롯되는 수사적 공격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지적 허영'을 의미하는 시쳇말로 '스노비즘'이 사용될 때, 그러한 스노비즘 개념을 손쉽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되려 스노비즘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는 것 역시 이때문이다.

스노비즘이 그 자체로 규정되기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에 오늘날 이러한 성격에 대해 말하려는 문화사회학자들과 윤리학자들은 그 반대 개념에 해당하는 진정성(authenticity)을 제시함으로써 스노비즘을 설명하려고 한다. 진정성이라는 개념 역시 그 반의어인 스노비즘과 마찬가지로 규정되기 어려운 것이기는 하지만 라이오넬 트릴링(Lionel Trilling)의 『성실과 진정 Sincerity and Authenticity』이나 그에 영향을 받은 찰스 테일러의 『진정성의 윤리 The Ethics of Authenticity』 등에서는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태도로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진정성이란 (유아론적인 의미 혹은 세속적인 성공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하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태도이며, 반대로 스노비즘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면서 타인에 대해 우위에 서려고 하는 태도로 규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가의 와인을 구입해 마시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와인의 맛이나 향 같은 요소보다 고가의 와인이 상징하는 사회적 계급 수준 등에서 그가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단순한 스노비즘에 불과하다. 대표적으로 거품경제 시절 일본보졸레 누보를 비롯한 프랑스 와인의 열풍, 오늘날 중국에서 한 병에 수백 유로에 달하는 코냑을 싹쓸이하는 사례를 들 수 있는데 정작 80년대 거품경제 시절 일본인들이 먹었던 음식은 프랑스산 와인과는 전혀 궁합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본다면 이 두 가지 측면은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스노비즘의 문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교묘하게 작동할 수 있다. 우리는 제대로 향유할 줄도 모르는 사치를 즐기는 '천박한 인간들'을 한심한 부류의 사람으로, 다시 말해 속물적인 인간으로 쉽게 정죄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에 반해 예술을 예술 그 자체로 향유할 수 있는 능력, 예술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사용된 암호들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 혈통과 학력에 의해서만 암묵지의 형태로 전수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에 대해서는 보다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려고 한다. 이것은 곧 귀족적인 취향이 되고 '범속한 사람들'보다 우월한 취향의 표식이 된다. 한국 학술장에 나와 있는 스노비즘에 관한 서적들 중에는 이러한 '문화귀족'들이 여타의 '천박한 인간들'의 취향을 비웃는 부류의 서적도 더러 있는데, 이런 식으로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아이러니하게도 또 하나의 스노비즘일 수밖에 없다.

요컨대 스노비즘은 어떤 대상의 알맹이에 대해서는 별 관심도 없으면서, 남에게 과시하거나 돋보이게 하기 위해 껍데기만 빌려오는 일체의 성향으로 이해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 두 가지 측면은 쉽게 구별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씩은 스노비즘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인식은 달리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것'이라는 수사까지도 스노비즘의 일부가 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사람들은 천박한 속물로 보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진정성을 연기하기 위해 애쓰며, 그러한 연기는 심지어 자기 자신도 속이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스노비즘의 일반적 의미가 된 지적 허영 역시 그것이 진정으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추구를 통해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스노비즘에 해당된다. 그러나 지적 허영에 빠져 있는 사람들 또한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지식을 추구하는 면모를 최소한으로는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스노비즘의 사람들 사이의 경계는 극히 희미해진다. 결국 스노비즘에 관한 담론은 언제나 하나의 질문, 즉 "사람은 애초부터 스노비즘을 지니며, 진정성이란 단순한 허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는 질문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가 보다 '진정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양계급의 취향마저도, 실제로는 자기과시를 위한 계급의 표식일 수 있다.

2.1. 구별짓기와 과시소비

스노비즘을 설명하기 위해 피에르 부르디외가 제시하는 <구별짓기(Distinction)>의 개념과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이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먼저 구별짓기의 개념부터 살펴보자.

드라마로맨스 소설 따위에서 우리는 식사예절로 인해 계급격차를 느끼게 되는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층계급 출신의 여주인공이 지배계급 사람들에게 식사예절을 지적받고 소외당하는 로맨스 소설의 클리셰는 사실 식사 문화가 계급을 구별짓는 주요한 대립 요소라는 현실을 반영한다. 즉, 지배계급 사람들의 식사 취향이 고도로 복잡화된 예절이나 섬세하고 세련된 음식과 같은 형식주의로 나타난다면 하층계급 사람들의 식사 취향은 싸고 영양가 있는 음식과 거리낌 없는 식사와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차이는 문화적 취향과 외모의 문제에도 비슷하게 반영된다. 지배계급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형식적으로 세련된 '고급 예술'을 향유한다면 반대로 하층계급 사람들은 즉물적으로 향유될 수 있는 여가를 더 선호한다. 비슷하게 외모의 문제에서 역시 지배계급이 세련됨을 추구하며 도덕적-미적인 우월감을 갖게 된다면, 반대로 하층계급은 실용적으로 쓸모 있는 것을 주로 추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배계급은 실제로 다양한 자본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실용적인 문제에 대해 무관심해질 수 있으며, 반대로 하층계급은 그러한 자본으로부터 박탈되어 있기 때문에 당장의 쓸모가 더 큰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계급적 격차는 사실 사람들 사이의 본질적인 위계를, 그러니까 더 우월하거나 더 열등한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취향의 차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더 우월하거나 더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가족(상속자본)과 학교(학력자본) 등을 통해 어떠한 아비투스를 체화하였는가를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인을 무시하고 우월감을 느끼려는 구별짓기의 태도는 스노비즘이 될 수밖에 없다. 복잡한 식사예절을 습득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로 여주인공을 깔보는 지배계급 사람들은 식사라는 내용이 아니라 식사를 향유하는 형식을 바탕으로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스노비즘이며, 타인에게 상징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들인 셈이다.

다음으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따르자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에 종사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한가로움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바로 예술이다. 모든 예술이 유한계급의 과시소비에 불과하다는 베블런의 견해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조야한 경제환원주의로 여겨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의 지적이 유의미한 까닭은 순전히 자유로움을 과시하기 위한 예술 향유는 분명한 스노비즘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베블런의 견해를 무분별하게 적용하려는 것은 온당하다고 하기 어렵다. 단지 어떤 사람이 '고급 예술'로 범주화되는 예술을 즐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노비즘이라 비난하는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형식만을 문제삼는다는 점에서 또 다른 스노비즘일 수밖에 없다.

2.2. 역사철학적 개념으로서의 스노비즘

한편 이러한 문화사회학적 스노비즘 담론과 큰 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지만, 약간 다른 방향에서 역사철학적으로 논의된 스노비즘의 문제도 있다. 사실 이런 식의 근대성/탈근대성 이야기들이 더이상 확고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1] 간단하게 참고 정도만 하는 것이 보다 이로울 듯하다.

1930년대 파리에서 헤겔 철학을 강의했던 알렉상드르 코제브는 이후 미국일본을 방문한 뒤 미국 문화의 특징을 '동물'로, 일본 문화의 특징을 '속물'로 규정했다. 마르크스의 견해를 따르자면 인간의 역사는 '필요'의 영역에서 '자유'의 영역으로 나아가는데, 전자가 자연 세계와의 투쟁과 인간들 사이의 인정 투쟁이 이루어지는 인간적인 의미의 역사라면, 후자는 자연이 완전하게 정복된 이후의 더는 투쟁하지도 않으며 거의 노동하지도 않는 자연적인 상태의 영속을 의미한다. 코제브는 이처럼 고유한 의미에서의 역사는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종결되었으며, 세계에는 아직 가난한 미국과 부유한 미국이라는 두 가지 상태만이 남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 문화의 특징은 계급적 투쟁이 소멸된 뒤 누구나 동물적인 것을 즉물적으로 향유하게 된 상태로, 전 지구적인 미국화는 인간 고유성의 상실로 인한 인간의 동물화였다. 이러한 역사 이후의 세계에서 코제브가 목격한 단 하나의 예외가 일본이었는데, 일본에서 계급투쟁과 자연과의 투쟁이 이루어지는 역사는 이미 종결되었지만, 그 역사 시대에 대한 향수만큼은 순수한 형식으로 남아 있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자살과 같은 사건들은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세계와의 투쟁이 아니라) 단순히 과거의 형식만을 좇는 알맹이 없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는데, 코제브는 일본과 서구 문명의 교류 확대는 일본의 동물화가 아닌 서구의 속물화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동물'이 형식을 상실하고 내용만이 남게 된 자연적인 상태라면, '속물'은 내용을 상실하고 형식만이 남게 된 새로운 인간의 실존 양식이었다. 이것이 가장 간단하게 요약한 역사철학적 속물론이라고 할 수 있다.

2.3. 번역 문제

영어 단어 'snob'을 '속물'로, 'snobbism[2]'을 '속물근성'으로 번역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가 하는 논쟁이 가끔 벌어진다.

먼저 스노비즘을 속물로 번역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에서는 오래 전부터 스노비즘의 번역어로 속물을 채택해왔을 뿐더러 이들 사이의 의미 차이가 크다고 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김수영 시인은 1967년에 <이 거룩한 속물들>이라는 에세이를 남겼는데 여기서 속물이라는 용어는 문화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스노비즘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가 쓴 <The Book of Snobs>의 번역명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역시 <속물열전>이기도 하다. 이렇듯 스노비즘이라는 개념을 속물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은 그 역사가 나름대로 오래되었으며, 현재 한국 학술장에서 스노비즘에 관해 논문을 쓰는 사람들[3]도 스노브의 번역어로 속물을 택하고 있으므로, 스노비즘을 속물근성으로, 스노비즘을 속물로 번역하는 것은 오역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snob'과 '속물'이라는 단어의 의미 차이가 번역어의 사용을 포기해야 할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본다.

반면 다른 입장에서는 두 단어 사이의 의미 차이로 인해 적절한 번역이 아니라고 본다. 한국어에서 속물(俗物)은 교양이 없거나[4] 식견이 좁고 세속적인 일, 금전, 명예 등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 반면, 영어의 snob은 상류층인 척하는 사람, 고상한 척하는 사람, (특정 분야에) 통달한 체하는 사람, 젠체하는[잘난 체하는] 사람, 콧대 높은 사람, 우월감에 젖어 있는 사람 (people who are too proud of their social status, intelligence, or taste)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사람이 이른바 속물일 경우 snob이 될 가능성 역시 높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항상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속물의 핵심 요소는 물적•세속적 욕망 추구인 반면, snob의 핵심 조건은 허영심, 겉치레, 젠체, 과시, 구별짓기이기 때문. 비록 현실세계의 상당수의 snob이 속물인 경향을 보이긴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속물이 그 사람이 추구하는 욕망의 내용에 관한 용어라고 한다면, snob은 그 욕망이 무엇이든 그것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내는지에 관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snob을 속물로 번역할 경우 문제가 생기는 단적인 예로 2021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의 수상 소감을 들 수 있다. 윤여정은 "every award is meaningful, but this one, especially being recognized by British people, known as very snobbish people"이라고 약간의 위트를 섞어 말했는데 일부 기사에서는 '속물적인 영국 사람들에게 상을 받아 기쁘다'고 번역해서 뭇매를 맞았다. # 실제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이 대목을 '고상한 체하는 영국인들' 또는 '콧대 높은 영국인들'로 윤여정의 의도와 취지에 맞게 적절하게 번역했다. 수상 후 인터뷰에서 이 대목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자 윤여정은 과거 본인이 여러차례 영국을 방문했을 때, 그리고 10여년 전 펠로우십으로 영국에 체류할 당시 "영국은 모든 것이 고상한 체한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쁜 쪽으로는 아니었다... 영국은 매우 긴 역사를 갖고 있고, 그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아시아 여성으로서 나는 사람들이 무척 고상한 체를 한다고 느꼈고, 그것이 나의 정직한 느낌"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 영국인들의 역사적 내지 문화적 우월감과 자부심과 관련된 논평이었으므로 여기서 snobbish라는 단어 선택은 정확했으며, 이를 '속물'로 번역할 경우 단번에 뭔가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문화, 역사, 지식, 취향 같은 것들을 중요시하고 추구하는 사람을 가리켜 우리말로 속물이라고 하지는 않기 때문. 오히려 이런 요소들은 이른바 '교양'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예술에 대해 문외한이며 교양이 없는 사람'이라는 우리말 속물의 정의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우리말의 속물에 해당하는 정확한 영어 단어는 philistine이며, 속물주의나 속물 근성은 philistinism이다.

스노비즘을 현학이라는 말로 번역하려는 경우도 간혹 있으나 이 둘 역시 조금 차이가 있다. 스노비즘이 잘 모르지만 아는 척을 한다는 것이라면, 현학적인 것은 일단 기본적으로 그 분야에 아는 것이 많기는 한 상태이다. 의도는 동일하지만 그 사람의 지식의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 오페라 관람을 예시로 들자면, 실제로 오페라에 대해 빠삭한 사람이 '교양있는 내가 한낱 대중문화에 익숙한 너희들은 이해할 수 없을 높은 수준을 보여주마'라는 마인드로 전문용어를 쏟아내는 것은 현학이고, 오페라를 잘 모르지만 그런 문화를 향유하는 귀족인 척 하려고 아는 척 하는 것은 스노비즘이다. 즉 허세와 자랑의 차이 정도이다.

3. 관련 문서



[1] 역사학자들은 이런 식의 역사철학적 담론들이 세부적인 디테일에서 제대로 들어맞는 경우가 아예 없다고 지적한다.[2] 한국에서는 주로 스노비즘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지만 '지적 허영'을 제외한 의미로 쓰일 때는 'snobbery'를 쓰는 경우가 더 많다.[3] 대표적으로 김홍중 교수나 심보선 시인[4] 여기서 교양은 미술, 음악, 문학 등 예술에 대한 관심과 식견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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