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12:48:09

스콥스 재판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버틀러 법에 대항하는 재판3. 스콥스 재판의 과정
3.1. 피고측과 원고측 변호인3.2. 재판의 내용
4. 결과
4.1. 1심4.2. 2심4.3. 이후
5. 의의

1. 개요

The State of Tennessee v. John Thomas Scopes, Scopes "Monkey Trial"

스콥스 재판은 과학을 역행하는 버틀러 법에 대한 항의이자 창조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본격적인 반격으로 꼽힌다. 즉, 이전까지는 과학에 대해서 성서에서 이렇게 말하니까가 법으로 만들어질 정도였다는 뜻이다. 정식 명칭은 '스콥스 대 (테네시)주'지만 다들 원숭이 재판으로 비꼬아 부른다.

과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큰 이슈를 낳았으며 이 재판에 대한 내용을 토대로 영화도 제작했고 이 재판이 벌어진 장소는 지금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2. 버틀러 법에 대항하는 재판

보수적인 개신교가 주를 이룬 미국 남부 테네시 주의회에서 '버틀러 법'이라는 법안을 제정했는데 그 골자는 "대학, 또는 공공 학교 또는 대중을 상대로 하여 성서에서 언급하는 신의 창조를 부인하는 행위, 그리고 사람이 보다 낮은 동물에서 기원하였다는 내용[1]을 대신 가르치는 행위를 금함"이었으며 벌금은 100달러에서 500달러를 각 건에 대해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였다. 따라서 법 상으로는 미생물부터 원숭이까지의 진화는 가르쳐도 되고 자연 선택 이론도 문제없으며 지구 나이가 수십억이라고 말해도 법적으론 문제가 없었다. 사람은 달라!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다만 법안 제창자인 버틀러는 "진화론 배우고 온 애들이 부모에게 \'성서는 구라야!'라고 말하는 건 못 봐 주겠다"라면서 전면적인 진화론 부정을 원했다고 한다.

3. 스콥스 재판의 과정

1925년 7월 21일 24세였던 생물교사이자 미식축구 코치[2]인 존 스콥스가 버틀러 법 위반 혐의로 자신을 고소했다. 이건 '시민의 자유(civil liberty)'라는 미국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상황에 대해 미국 시민 자유 연맹이 시범 사례로 엮어 내세운 본보기 소송이었으며 연방대법원까지 끌고 올라가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게 되면 연방 헌법을 가지고 주 법률에 대한 심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헌법재판을 걸려면 연방 법원까지 가야 하는데 주 법 자체를 끌고 법원에 갈 수는 없고 소송을 통해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고소하는 방법을 쓴 것이다.

생물교사가 버틀러 법을 위반하였다고 자진 시인하자 창조설 옹호자들의 열광적인 집회가 열리면서 '주의 영광'을 외쳤다.[3] 이 재판은 주의 법률에 의거한 재판이므로 연방법과 상관없이 주 법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졌다.

이 재판에 대해 조지 버나드 쇼는 '한 개의 주가 대륙 전체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한 개인이 미국이 과연 제대로 된 문명의 혜택을 받은 국가인지 의심이 가게 만드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테네시 주와 브라이언은 그 어려운 일을 동시에 해냈다.'고 신랄한 독설을 가했다.

3.1. 피고측과 원고측 변호인

피고측 변호인은 떠오르는 신예 변호사 클래런스 대로였으며 원고측 대표 변호인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었다. 그러니까 원고인이 피고인이고 원고인과 피고인이 각자의 변호사를 선임해 두 명의 변호사가 한 명을 위해 변호하는 해괴망측한 재판이 열린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클래런스 대로와 윌리엄 제인스 브라이언은 이 재판이 첫 만남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로는 한때 브라이언의 민주당 대통령 경선 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었지만 브라이언의 정치 성향, 특히 개신교 근본주의 성향에 실망해서 캠프를 나왔다.

검사가 아닌 정치인이 변호인으로서 원고측 대표로 나온 것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정치적 입지를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브라이언은 당시 매우 유명한 반 진화론자 정치인으로서 "금주법"과 "여성 투표권 부여"에 관여하고 있었고 당시에는 미국 대선에도 3회 출마(1896, 1900, 1908년)했던 거물 정치인사였지만 금본위제에 반대하고 가난한 농부들의 권익을 위해 싸운 진보주의 정치인으로 인망이 높던 사람이라 이 재판에 참여한 것이 그의 삶에 흑역사로 남고 말았다.

3.2. 재판의 내용

재판이 시작되자 피고측(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친 스콥스)이 원고측(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친 생물 선생(=자신)이 있다고 고소를 넣은 스콥스)을 일방적으로 유린하였다.

재판의 과정에서 클래런스의 유도심문에 넘어간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성경의 구절을 100% 그대로 믿는다'는 말을 한 뒤 5분이 지나지 않아 '성경의 구절을 100% 그대로 믿는 건 바보다.' 라고 말하는 오류를 범했는데 싸움을 각오하고 각종 지식들을 준비한 변호사를 상대로 성경을 기반으로 하여 대항하다가 자승자박에 빠진 것이다. '중국 역사는 5000년이 넘는다.', '카인이 새로 아내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 여자는 대체 어디서 온 사람인가?', '성경에서 뱀은 선악과 사건 때문에 배로 기어다닌다고 나오는데, 그럼 그 전에는 뱀이 뭘로 기어다녔다고 생각하는가?'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 어린아이들에게 억지로 인정을 강요하는 어떤 것도 진화론의 가르침으로 그들의 영혼을 망가뜨리게 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하던 사람답게 일관적인 주장을 펼치긴 했지만 전국으로 라디오로 중계되는 재판 속에서 결국 패배하였고 뱀 이야기가 나온 직후 화를 참지 못해 '지금 피고(대로)는 성경을 비방하기 위해서만 질문하고 있지 제대로 된 변론을 할 생각이 없다!'고 호통을 치기까지 했다.

참조

4. 결과

4.1. 1심

말싸움에선 피고측이 일방적으로 발라 버렸지만 재판의 결과는 원고 승소. 배심원들이 9분만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게, 처음부터 배심원들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구성되었고 재판 중에도 계속 개신교 집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방청객들이 일방적으로 브라이언을 옹호하고 판사도 피고 측의 변론을 방해하는 등 대단히 편파적으로 재판이 이루어졌다. 재판장은 법률이 정한 최저액인 100달러 벌금(2010년대 화폐가치로 대충 1200달러 정도 된다)을 부과하였다. 당연히 피고측과 피고 변호사는 상소해 테네시 주 상급법원으로 올라가 2심이 시작되었다.

이후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승소한 지 5일이 지나서 지병인 당뇨병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재판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이를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를 두고 무신론자 언론인인 H.L. 멩켄(H.L. Mencken)은 '하느님이 대로에게 천벌을 내리시려 했는데 실수로 빗나가서 브라이언이 죽었나 보다'라고 비꼬았다.

4.2. 2심

원고 승소에 불복한 피고측이 주 상급법원에 재심을 요청했다.
1. '진화'를 교육하는 것을 금지한다라고 했는데 이 '진화'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를 쓴 것이 문제이다.
2. 교사의 개인적인 언론의 자유가 있는데 이를 침해할 수 없다.
3. '주 의회는 인문학과 과학을 우대할 의무가 있다.'는 법이 있는데 이것에 어긋난다.
4. 이는 개신교를 위해 만든 법인데 국교를 정하는 것은 위헌이다.
피고측의 주장은 이와 같았는데 결과적으로 모두 기각당했다.
1. 이미 '진화'라는 단어를 정의해서 사용하고 있으므로 애매모호하다고 볼 수 없다.
2. 공립학교 교사는 공무원이기에 정부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3. 이는 사법부가 아니라 입법부에서 맡아야 할 문제이다
4. 이는 특정 종교나 종파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므로 국교를 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2심 재판부는 피고측의 주장에 대해 이와 같이 판단하였지만 결과적으론 '테네시 주에서 벌금 50달러 이상일 때는 그 액수를 재판장이 아닌 배심원이 결정한다.'는 법리적 문제에 기반해서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그에 덧붙여 2심 재판부는 국론 분열을 이유로 검찰에게 항소 포기를 요구하였고 검찰이 이를 따르면서 연방대법원까지 끌고 가려던 시도는 실패해 버틀러 법은 1967년까지 테네시 주에서 적용되었다.

4.3. 이후

1968년 미 연방대법원에서 비슷한 형태의 소송[4]에 대해 미국 헌법 수정 1조에 근거하여 '종교적 신념이나 주장을 이유로 지식을 교육하는 것을 방해할 수 없다'라고 판결을 내림으로서 완결되었다. 진행도 스콥스 재판과 거의 동일했으며 이후 비슷한 주장이 여러 번 올라왔지만 모두 기각되었고 1986년 에드워드-아귈라드 재판의 결과로 공립학교에서 창조설을 가르치는 것이 완전히 금지되었다. 이후 창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화도 하나의 이론이고 창조도 하나의 이론이므로 허용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주장을 바꾼 후 요즘도 싸움과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원고 측 변호사 윌리엄 J. 브라이언은 공교롭게도 재판 종결 5일 후인 1925년 7월 26일에 사망했는데 그래서인지 죽음에 대한 음모론이 나오기도 했다. 사건의 당사자인 존 스콥스는 1970년 10월 21일 루이지애나에서 암으로 사망했다(향년 70세).

5. 의의

스콥스 재판이 걸고 넘어진 버틀러 법은 오로지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법으로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수많은 비판을 받았고 결과적으로는 재판에서 패배하였으나 내용에서 전국적인 우스개를 만들어버림으로서 피고 측 입장에서는 일정 수준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그리고 이 재판 이후 반 진화론자들은 각 주에서 비슷한 법을 제정할 필요를 느끼게 되고 1927년까지 약 13개주에서 추가적으로 비슷한 법들이 고려되었지만 제정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어중간하게 진화론을 배우곤 우생학을 주장하는 소셜다위니즘에 빠진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버틀러 법은 소셜다위니즘을 신봉하는 무리의 행동을 막고자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모두 창조과학 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이 법에 대한 찬반은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일관되게 성서를 기반으로 하는 창조론 대 과학자[5] 시점이다. 단,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본인은 그런 이유로 참가하였다는게 정설이다. 실제로도 현대의 창조설자 중 일부는 이런 식으로 생물학의 진화론과 사회 진화론을 혼동해서 창조설에 빠진 경우가 있다.브라이언 본인은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분명한데, 20세기 초에는 오히려 정치적 진보 성향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꽤 있었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세속 정치에 대한 관점까지 보수적으로 변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부터이다.

"스콥스가 근무하던 학교는 백인들만 다닐 수 있는 학교였으며, 그가 가르치던 교과서도 백인을 가장 우수한 인종으로 서술하고 다른 인종들은 사회의 기생충인 양 묘사하는 책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처음부터 진화 대 창조(성경책에 근거한)의 싸움이었다. 첨언하자면 오히려 당시 창조론자들 중에도 "흑인들은 의 후손들이고 영원히 저주받을 존재들이기 때문에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는 것은 성경적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6] 흔히 창조과학을 옹호하기 위해 성경에서 흑인과 결혼한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이 저주받아 잠깐 피부병[7]에 걸렸다는 일화 등을 거론하는 경우가 있지만 1960년대까지는 교회도 백인 전용과 흑인 전용을 따로 나누었으며 KKK도 기독교 단체이다.

한편 클래런스 대로가 미싱링크의 증거를 제시하면서 꺼낸 게 하필이면 필트다운인......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를 경험한 후 일련의 교육/과학 정비 계획에 들어가면서 대략 국가 방위 교육법(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라는 법을 1958년에 제정했는데 이때 전국적으로 교과서에서 생물학 이론으로 진화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면 안 된다는 반지성주의적 주장이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며 저 법이 제정되던 당시에도 텍사스에서 어마어마한 저항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냉전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소련이 위성 기술을 이용해 핵을 머리 위에 떨굴 위험이 있었기에 "이 새X들 빨갱이 아니야?" 라며 전국에서 맹비난을 얻어맞은 결과 법이 정착되었다.

이후에도 개신교 측에서는 꾸준히 창조설을 학교 정규교육 과정에 포함시키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지만 1987년 에드워드-아귈라드 재판으로 미국의 모든 공립학교에서 창조설을 가르치는 것이 전면 금지되었다. 단, 지자체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는 사립학교에서는 아직도 창조설을 교육하는 것이 가능하다.[8] 특히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남부 바이블벨트 지역의 사립학교라면 십중팔구 창조설이 진화론과 동등하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지만 정상적인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결국 진화론과 과학을 다시 배워야 한다. 아니면 이런 데나 가든지


[1]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비난할 때마다 써먹는 원숭이 조상설을 뜻하는 것이다. 참고로 이 논리는 이미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 당대에 본인이 직접 논파한 궤변이다. 무엇보다 진화론에서 우수하고 열등함의 개념은 없다. 그저 현재 번성한 종을 이전 세대보다 잘 적응했다고만 볼 뿐이다. 예를 들어 원숭이도 사람도 파리도 각자의 환경과 역사에 맞게 적응해 온 훌륭한 종이라고 할 수 있다.[2] 창조설 쪽에서는 존 스콥스가 생물학 교사가 아니라 체육 교사였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지만 그는 체육 교사도 아닌 코치였으며 엄연히 생물 교사였다.[3] 재판이 1시간 정도 연기되었는데 창조설 옹호자들이 법원을 둘러싸서 판사가 들어오기 힘들었다고 한다.[4] 이때는 에퍼슨 대 아칸소주였다.[5] 소셜 다위니즘은 생물학이 아니고 과학으로 취급하는 이들도 거의 없으며 재미있는 점은 소셜 다위니즘의 주장의 메커니즘은 창조론 특히 그 중에서 창조과학회란 집단의 주장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인데 다른 과학에서 입증된 사실을 자신의 입맛대로 왜곡시켜서 원래 해당 과학적 지식 또는 분야가 증명한 범위를 넘어선 자신의 주장에 접목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즉 진화론vs창조설 논쟁에서 소셜 다위니즘에 대한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들은 정상적인 진화론자들도 인정하지 않는 집단을 진화론자로 매도하면서 공격하는 것이다.[6] 이 논리가 바로 남북 전쟁 이전 남부의 백인 엘리트층이 노예제를 주장하던 근거 중의 하나였다.[7] '문둥병'이라고 나오지만 한센병과 비슷한 개념이라고는 볼 수 없다.[8] 정확히는 창조설뿐만 아니라 여타 교육 커리큘럼의 범위를 공립학교보다 넓게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