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3 10:30:54

스탕달

<colbgcolor=#000><colcolor=#fff> 스탕달
Stendhal
파일:Stendhal.jpg
본명 마리앙리 벨
Marie-Henri Beyle
출생 1783년 1월 23일
프랑스 왕국 그르노블
사망 1842년 3월 23일 (향년 59세)
7월 왕정 파리
직업 소설가
사조 리얼리즘
종교 가톨릭무종교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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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소설가. 본명은 마리-앙리 벨이며, 스탕달은 필명인데, 독일의 예술비평가 J. J. 빙켈만이 태어난 프로이센 왕국의 도시 이름 슈텐달[1](Stendal)에서 따온 것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와 함께 프랑스 근대소설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

2. 생애

프랑스 왕국 도피네 지역의 중심지 그르노블에서 고등법원 변호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아버지는 열렬한 왕당파였고, 가정교사는 예수회 신부였다. 이런 보수적인 가정 분위기에 질린 스탕달은 계몽주의자이자 자유주의적인 지식인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정부가 제도를 바꾸고, 시류를 틈타 외조부는 에콜 상트랄이란 학교를 세웠는데, 스탕달은 이 학교에서 공부한 후 파리의 이공계 학교에 진학한다.

하지만 그는 학교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곧 중퇴했다. 1800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휘하의 군대에 입대해 이탈리아 원정군 장교로 밀라노로 가기도 했다. 군 생활을 마친 후 스탕달은 파리에서 극작가가 되기 위해 수련을 쌓았다. 그러나 다시 육군성에 들어가 참사원 서기관의 직책에 오르고,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참전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부르봉 왕가왕정복고가 되면서 서기관을 사퇴한 후 이탈리아로 떠나면서 예술 등의 비평문을 쓰며 지내다가 1826년 이탈리아 정부에 의해 추방된 후 프랑스로 돌아왔다. 1830년 7월 혁명 이후 신 정부에 의해 이탈리아 주재 영사로 발령받았지만 업무보다는 주로 사교계 출입에 열중하면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1842년 3월 뇌출혈로 인해 5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사후 이탈리아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그의 바람에 따라 묘비에 밀라노인이라는 묘비명이 적혀졌다. 저서로는 <적과 흑>, <파르마의 수도원> 등이 있다.


[1] 이곳이 있는 알트마르크(Altmark) 지역이 바로 프로이센 왕국의 뿌리이다. 프로이센 왕국의 전신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의 기원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