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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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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지도와 신성의 위치

1. 개요

新城
고구려의 성(城) 중 하나. 신성은 3군데 이상이 있었다. 첫번째는 고구려 동북 동해안 지역에 있던 성이 있었고, 하나는 내몽골 츠펑시 인근의 신성으로 거란해족, 습족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거란신성이라고도 한다. 광개토대왕장수왕이 원정하면서 거쳐갔으며 고구려 말기까지 당나라와 각축전이 벌어진 곳이다. 또 하나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고국원왕 5년조에 "나라 북쪽에 신성을 쌓았다"고 한 그것은 현재의 랴오닝성 혼하(渾河) 북안의 고이산산성(高爾山山城)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국원왕 대에 서북쪽 신성을 신축하면서 동북 지역의 신성은 이와 구별하여 돈성(敦城)으로 불리었다.[1] 보통 언급되는 신성은 이 요동의 신성이다.

2. 역사

신성의 고구려군은 613년 수양제제2차 고구려-수 전쟁 당시 왕인공이 이끄는 수나라 군대를 막아냈으며 645년 당태종제1차 고구려-당 전쟁 당시에도 요동도행군 부대총관 이도종이 이끄는 당군의 거센 공격을 막아낸다. 신당서에 의하면 645년 1차 여당전쟁 당시 요동도행군 대총관이었던 이세적이 "신성은 고구려 서쪽 경계를 지키는 성 가운데 최고의 요충지이다. 이 성을 먼저 도모하지 않고서는 나머지 성은 함락시킬 수 없다." 는 말을 남길 정도였으니 여수전쟁 및 여당전쟁에서 고구려 요동 방어선의 핵심 중추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667년 봄 발발한 3차 여당전쟁에서도 역시 수십만의 당나라 대군의 공격을 수개월 동안 잘 막아내었으나 667년 9월, 사부구 등이 신성주를 결박하여 이세적에게 항복하여 결국 당군에 함락되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성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인 669년 2월에 당나라에 항복하지 않은 11개 성들 중 하나라고 한다. 667년의 당군은 평양성으로 빠르게 진격하는 것이 목표였고 2년 동안 고구려군이 신성을 탈환했다고 하면 두 기록이 배치되는 것만은 아니다. 아니면 항복하고 난뒤 다시, 혹은 고구려부흥운동 때 성내에서 저항을 해 탈환하여 항복하지 않을 수 있다.[2]

한편 670년에 신라군과 고구려 부흥 운동군 연합군이 압록강을 건너 선제 공격해 나당전쟁이 시작됐는데, 이 때 말갈인 병사들이 개돈양(皆敦壤)에 이르러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여기서 신라-고구려부흥군-말갈 연합군이 당군에 승리를 거뒀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개돈양의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렵지만, '모두(皆) 돈양(敦壤)에 이르러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해석해 위에서 말했던 돈성, 즉 신성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나당 전쟁이 끝난 뒤 평양성에서 쫓겨난 안동도호부가 잠깐 설치되기도 했다. 이후 이 근처는 고대 요동의 중추지 요동성(현 랴오양시)을 이어 현 요동의 중추지 선양시가 된다.[3]

신성의 역대 태수 중에서는 고노자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1] 임기환, 「고구려 초기의 지방 통치 체제」, 『경희 사학』 14, 1987년, 한국 교육 학술 정보원, 60쪽 참조.[2] 비슷한 사례로 이외에도 666년에 연남생 등과 함께 항복한 국내성이나 667년 신성이 함락된 후 당나라에 의해 함락당한 목저성이나 남소성이 당시 항복한 성으로 분류된 점 등 미스테리한 점이 있다. 이 당시의 전세가 반복이 무상했다는 증거.[3] 고이산산성이 신성이라면 위의 지도에서 신성의 위치는 잘못되었다. 선양시는 요동성이 위치한 현 랴오양시의 바로 북쪽에 위치해있기 때문. 참고로 고이산산성은 선양시에서도 동쪽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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