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풍초등학교 Shinpoong Elementary School | ||
개교 | 1896년 | |
폐교 | 2019년 2월 28일 | |
유형 | 일반계 초등학교 | |
성별 | 남녀 공학 | |
운영 형태 | 공립 | |
학생 수 | 23명 2019년 기준 | |
교직원 수 | 5명 2019년 기준 | |
소재지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풍로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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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에 있었던 문화재 보존을 위해 영통구 광교신도시로 이전하고 분교장으로 남은 후 폐교된 초등학교. 진주중안초등학교(현 진주초교)와 서울효제초등학교에 이어 세 번째로 오래된 초등학교이다.2. 학교 연혁
무려 1896년[1]에 개교해 지금까지 명맥을 잇는 유서 깊은 학교이다. 신풍(新豊)은 옆 화성행궁 정문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화성행궁의 정문은 본래 진남루(鎭南樓)였지만 정조 임금의 명령에 의해 신풍루로 바뀐 것이다.원래 수원화성 내에 있었으나, 수원화성 복원 사업으로 인해 광교신도시로 이전하였으며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인해 2018년까지 분교장으로 유지되었다. 2019년 현재 건물은 철거되고 복원된 우화관[2]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 1896년 2월 10일 : 수원군 공립 소학교 개교
- 1941년 4월 1일 : 수원신풍국민학교로 교명 개칭[3]
- 1986년 11월 1일 : 본관 3층에 30개의 교실을 개축
- 1996년 3월 1일 : 신풍초등학교로 교명 개칭
- 1996년 5월 10일 : 신풍 100년사 발간, 사료관 개관
- 2013년 3월 1일 : 신풍초등학교 광교신도시 이전 및 신풍분교장 개교
- 2013년 9월 1일 : 제28대 임종석 교장 취임
- 2016년 2월 29일 : 신풍초등학교 신풍분교장 폐지
3. 교훈 및 상징
신풍초등학교 문서 참조.4. 학교 시설
- 2012년까지만 해도 학생 수가 400명 가까이 있었다. 그러나 예전부터 휩싸이던 폐교설 때문에 인근 초등학교로 전학 가는 학생들이 늘어나 점점 학생 수가 줄었다. 현재 광교신도시로 이전한 신풍초의 운동장보다 2배 가까이 넓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말이 오면 남문 체육사에서 축구화를 수선하고 조기 축구를 했던 추억도 있었다
- 1층에는 특수학급과 보건실, 교장실, 로비, 교감실, 행정실, 신풍초 산하의 병설유치원, 신풍초의 역사가 담긴 사료관이 있었다.
- 2층에는 1학년부터 2학년 교실이 두반씩 있었으며 과학실 및 실험실, 방송실, 도서관이 있었다.
- 3층에는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있었다. 역시 두 반씩 있었지만 한때 5학년이 세 반으로 나뉘어진 적이 있었다. 복도 끝 쪽에는 외국어 학습실이 있었다.
- 외부에는 교사 옆에 강당이 존재하며[4] 교사 뒤편에는 급식을 조리하는 조리실이 있었다. (당시까지 급식차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 우유냉장고가 있어서 등교할 때 우유당번들은 우유를 가지고 올라왔었다. 여담으로 그 당시 학생들은 그 앞에서 배드민턴을 많이 쳤었다
- 운동장에는 기념비와 화성행궁 쪽에는 구름사다리, 시소, 정글짐, 미끄럼틀, 그네가 있었다. 여담으로 신풍초 학생들은 미끄럼틀에서 경도 및 물귀신 등 많은 놀이를 했다.
- 운동장에는 축구 골대 2개가 있었는데 운동장이 워낙 넓다보니 일요일마다 조기축구 아저씨들이 사용했었다.
- 교사 왼쪽 옛 우화관 자리 옆에는 원래 신풍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있었지만 주차장 증축 공사 및 우화관 복원 준비 등의 이유로 신풍초 1층으로 이전한 후 철거하였다.
- 학교 교단 중심으로 왼쪽 아래에는 모래 장난용 모래밭이 있었으며 그 옆에는 허름한 농구골대 2개가 있었다.
- 신풍초등학교의 옛터 우화관은 화성행궁의 부속 건물이였다. 이곳에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가 보관되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禮)를 올렸다.
5. 출신 인물
6. 기타
- 현재 건물은 구 강당을 제외하고 전부 파괴되었으며 이 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은 부서진 건물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 한다. 강당은 원래 위치에 있을 당시의 마지막 졸업생들의 졸업식 장소이다.
- 신풍초교 동문들이 첫손 꼽는 ‘자랑스런 신풍인’은 바로 심재덕 수원시장이다. 수원천 복개 반대와 수원 화성의 세계문화유산 지정, 2002월드컵 수원 유치까지 수원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심재덕 시장이 대표적인 신풍인이다.
[1]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기도 전인, 조선시대에 개교한 것이다![2] 화성유수부의 객사 터다. 1789년 처음 세울 때는 팔달관이었다가 1795년 우화관으로 바꾸었다.[3] 공립수원보통학교 - 수원신풍공립심상소학교 - 수원신풍보통학교 - 수원신풍국민학교 개칭.[4] 폐교된 이후로도 아직까지 존재하는 구 신풍초의 유일한 건물이다.[5] 현재 복원이 완료된 듯 하다.[1942] 최종건 회장은 누이 최양분과 같이 신풍초등학교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