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30 18:11:04

아르투르 니키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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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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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1945)
루드비히 폰 브레너 한스 폰 뷜로 아르투르 니키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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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ur Nikisch (1855.10.12 ~ 1922.01.22 )

1. 개요2. 생애

1. 개요

헝가리 레베니 센트-미클로스에서 독일계 슬라브인 회계사인 아버지와 헝가리 사람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를 역임했다.

2. 생애

학교 정규 수업을 오래 받지 않았고 개인 교육을 받았다. 음악적 능력을 어린 시절부터 들려주었는데 여덟 살에 지기스문트 탈베르크의 오페라를 피아노로 편곡해서 공개 연주를 했다. 작곡에도 재능이 있어 소나타, 현악 사중주, 칸타타,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이후 열한살 때인 1866년 빈 음악원에 입학하여 지휘, 작곡, 피아노, 바이올린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았다.

빈 궁정 오페라와 빈 필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면서 요제프 헬메스베르거, 오토 데소프의 지휘를 보면서 익혔고 이후 17살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지휘하는 영웅 교향곡, 리하르트 바그너의 지휘로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였다.

이후 23세때인 1878년 라이프치히 오페라 극장의 제2지휘자가 되면서 라이프치히에 정착했으며, 1년 후 수석지휘자로 승진했다.

1884년에는 라이프치히에서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을 세계초연하는 영예를 안았다.

라이프치히 외부에서도 객원지휘자로서 활발히 활동했는데,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객원지휘자 중 한명이기도 했다. 1893년에는 부다페스트 왕립 오페라 극장의 수석지휘자가 되었다.

1895년에는 유서깊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면서 독일 정상급 지휘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며, 또 같은 해에 한스 폰 뷜로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이 두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수장직을 유지했으며, 그의 사후 그가 아끼던 후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두 오케스트라에서 모두 후임지휘자가 되었다.

최초로 교향곡 전곡 녹음을 남긴 지휘자로도 유명하다. 1913년에 최초의 교향곡 전곡 녹음이 된 음반을 녹음했는데,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베를린 필과 녹음하였다. 그러나 기술이 좋지 않아 악단 편성을 바꾸었다. 당시 나팔관 녹음기술로는 금관악기의 강한 음향을 담을 수 없었기 때문. [1]

유튜브의 영상.


[1] 이 녹음을 들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니키쉬를 완전히 잘못 전하는 녹음이라면서 분개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