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2:14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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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작품상
제15회
(1994년)
제16회
(1995년)
제17회
(1996년)
태백산맥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축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
A Single Spark
파일:external/imgmovie.naver.com/A7577-00.jpg
장르 드라마, 역사
감독 박광수
각본 이창동, 김정환, 이효인, 허진호, 박광수
원작 전태일 평전: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조영래)
제작 유인택[1]
주연 문성근, 홍경인, 김선재 외
촬영 유영길
조명 김동호
편집 김양일
음악 송홍섭
미술 주병도
소품 진경현
의상 장기옥
분장 장소진
동시녹음 이영길
음향 lan Mcloughlin, 김향일
특수효과 김철석, 김태용
조감독 김석태, 허진호, 이종혁, 박흥식, 김기엽
스틸 윤진호
현상 Movielab(Sydney, Australia), Eugene Roche(현상 코디네이터), Martin Hoyle(현상 코디네이터)
색보정 Kelvin Crumplin, Tina Carrington
마케팅 이유진, 임지영
스크립터 박흥식
분신장면 스턴트 오세영, 한철훈, 이희은, 안근철, 서정수, 안갑용, 이웅준, 서명석
기록사진 제공 사단법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사진가협의회
제작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씨네이천, 전태일 열사 기념사업회(공동제작, 기획)
배급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우시네마
개봉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5년 11월 18일
화면비 1.85:1
상영 시간 96분
대한민국 총 관객 수 235,935명(서울)
독점 스트리밍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15세이상_2021.svg 15세 이상 관람가

1. 개요2. 스트리밍3. 줄거리4. 평가5. 흥행6. 수상 & 후보7.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에서 1995년에 개봉한 드라마ㆍ역사 영화로, 노동운동가 전태일을 다룬 작품이다. 박광수가 연출하였고, 홍경인, 문성근 등이 출연하였다.

2. 스트리밍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페이지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3. 줄거리

김영수는 법대를 졸업했지만 지금은 경찰의 수배를 피해 숨어있는 처지. 때는 긴급조치 등 공포정치의 절정기였던 1975년, 김영수는 조그만 골방에 쳐 박혀서 자신의 뇌뢰와 가슴 속으로 순간순간 뛰어드는 젊은 남자의 실체를 잡기위해 애를 쓴다. 그 남자의 이름은 전태일. 4년 전 "내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를 외치며 스스로를 태워버린 평화시장의 한 노동자. 사망 당시의 나이 겨우 22살. 그의 죽음은 김영수를 비롯한 학생운동을 하던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사회각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아직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상태이다. 처음에 김영수에게 전태일은 다만 희미한 윤곽에 존재할 뿐이다. 첫 번째 이미지는 통금 사이렌에 쫓겨 필사적으로 달려 가는 모습이다. 점심을 굻는 어린 여공들에게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곤 야간 작업이 끝난 늦은 시간에 늘 통행금지를 쫓기며 집까지 뛰어야했던 전태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지만 늘 공부를 목말라했고 아버지로부터 근로기준법이란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난 뒤부터 법을 아는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던 순박한 노동자. 그의 삶을 파고들 수록 김영수는 전태일에게 집착하게 되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전태일에게 오버랩시키게 되며, 그 작업은 암울한 시대상황에서 김영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의 비상구가 된다. 그러나 전태일의 삶이 역사와 가까워질수록 결단을 요구받았던 것처럼 김영수의 개인적인 삶도 자기희생의 통과제의를 거쳐야만 한다. 김영수에겐 '사랑의 실천'과 '실천의 사랑'을 저울질하는 정순이라는 애인이 있고, 그녀는 공장에 다니면서 현재 영수를 먹여 살리는 입장이기도 하다. 야학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난 정순은 영수를 통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으며 임신한 몸으로도 현실의 난관을 헤쳐나간다. 그러나 김영수에게 다가오던 공권력은 그가 도피해버림으로써 정순에게로 향하게 되고 자신의 고통을 대신 치르는 그녀 때문에 영수는 갈등이 깊어진다. 극장 보일러실에 숨어 있게 된 영수는 각성의 과정을 거쳐 결단의 순간으로 가고 있는 전태일의 정신적 고뇌와 치열하게 맞서며 자기 자신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한다. 시대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월남이 패망한 것과 동시에 긴급조치 9호가 발표된다. 김영수의 행동반경도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보일러실로 정순이 찾아오고 경찰의 미행을 눈치 챈 그는 원고보따리를 챙겨들고 쫓고 쫓기는 긴박한 추격전 끝에 마침내 경찰을 따돌린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시외버스를 타고 아직도 기약없이 어디론가 도피를 하고 있는 김영수와 정순이 있다. 그러나 이번엔 두 사람만이 아니다. 만삭인 정순의 배 위에 완성된 전태일의 전기가 놓여 있다. 영수는 잠든 아내의 배에 귀를 대본다. 탄생을 예고하는 새로운 생명의 힘찬 숨소리가 들린다. 영수의 귀에는 그것이 분신하던 날에 전태일의 가슴을 울리던 심장의 박동소리로 바뀐다. 불꽃에 휩싸이는 육신의 죽음위로 겹쳐지는 생명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출처: 네이버 영화

4. 평가

당시 심의 판정에서 고교생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고 막상 개봉 후에는 숭고와 환희가 하나로 느껴지는 걸작 취급을 받게 됨과 동시에 사실적 허구가 아니라 허구적 진실을 탐지해낸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한 마디로 한국 역사 영화 장르에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면서 어마어마하면서도 엄청난 완성도로 현재까지도 한국 역사 영화 장르물을 대표하는 대걸작으로 대우받고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물인 전태일의 생애와 성장과정을 모티브로 하면서 영웅적 투쟁이나 정치적 선동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당시 열악하던 노동현장과 노동계 현실을 성실하고 똑똑한 청년이 겪었던 절망으로 이를 고발하였고,먼지가 자욱했던 다락방 공장은 소녀 노동자들이 6개월만에 폐결핵에 걸릴만큼 탁하고 협소한 환경과 더불어서 이 영화의 감독은 그곳을 사실적인 세트와 폐쇄적인 영상구도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은 영화이다.

한국 영화 최초로 디지털 사운드를 도입하면서 전태일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지식인 김영수가 전태일의 일기와 그가 남긴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은 이러한 의식의 흐름과 플래시백으로 재구성된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리게 되면서 전태일의 이야기는 흑백으로 진행되었고, 김영수의 이야기는 컬러 화면을 구분하고 카메라워크와 컷을 절제하는 등 당시 국내기술로서는 한계가 있어서 특수효과와 나머지 기술들은 호주에서 작업 한 것으로 알려졌다.

5. 흥행

한국 관객 235,935명의 성적을 거두었다.

6. 수상 & 후보

7. 기타

  • 이 작품의 관찰자 역을 하는 김영수(문성근[3])는 이 작품에서의 전태일의 일화에 대해서 소개한 '전태일 평전: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저술한 조영래 변호사를 모델로 했다.
  • 은근히 노출신이 많이 나온다. 물론 2020년대 기준으로는 아주 심하게 야한 장면은 아니고 전태일을 포함한 바보회 회원들이 한창 활동을 시작하면서 희망에 젖어있을 때 단합회 형식으로 바다에 놀라갔다가 옷을 훌러덩 벗고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이다.
  • 분신 장면을 촬영할 때 당시 한국에는 그래픽 기술이 안 좋아서 몸에 직접 불을 붙여서 촬영했다고 한다.[4] 워터젤이라는 걸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으로 훗날 한국 화재 재난 영화에 적잖이 사용하게 된다.
  • 실제 화재 사고에서는 사람의 몸에 땀이 생각보다 많이 나지 않지만, 화재 영화에서 주인공이 땀을 많이 흘리는 것처럼 보이는 건 온몸에 바른 워터젤 때문이다. 그러나 완벽하게 안전한게 아닌 기법이라서, 워터젤을 온 몸에 바르자마자 바로 찍지 않고 몇 분만 지체되어 촬영하면 워터젤이 금세 말라 큰 화상을 입을 위험이 있다. 그나마도 소방관 등 화재현장 속에서의 사람을 찍는 건 사람과 불의 거리가 있지만, 전태일 영화처럼 5번 연속으로 자기 몸에 불을 붙이는 경우는 매우 위험하다.[5]
  • 마지막 신으로 온몸이 불타면서 거리를 질주하는 전태일의 장면이 슬로우모션으로 나온다. 목숨을 건 촬영이었으며, 담당배우인 홍경인이 전태일 열사의 강인한 정신력과 놀라운 의지를 최대한 보여준 명장면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파일:external/imgmovie.naver.com/A7577-04.jpg
  • 가장 많은 이름이 엔딩 크레딧에 실린 영화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일반인 7,648명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 제작비를 마련했고, 이들의 이름을 영화 엔딩 크레딧에 모두 소개한 것이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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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인태국회사무총장의 동생이다.[2] 남우주연상은 주인공인 홍경인이 후보에 올랐는데, 테러리스트최민수와 1차 투표때는 동점으로 나왔고, 2차 투표 끝에 4:3으로 딱 1표 차이로 수상이 불발되었다. 만약 수상했으면 청룡영화상 최연소 남우주연상(당시 만 19세) 수상자로 기록을 남길 뻔했다. 참고로 청룡영화상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1999년 제20회 시상식에서 태양은 없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정재(당시 만 27세) 이다.[3] 훗날 문성근은 KBS 인물현대사의 진행자로 나왔는데, 이때 전태일 편을 다루기도 했다.[4] 다만 그래픽 기술이 발전한 현재에도 불을 하나 붙인다. 자연스러운 CG를 만들 기준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5] 호주에 있는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찍을정도로 공들였는데, 전문가가 홍경인에게 온몸에 불을 붙인 배우를 본적이 없다며 칭찬까지 할 정도 였다. 워터젤을 바르고 버틸수 있는 시간은 5~6초에 불과했고 소화기로 끄는 굉장히 열악한 환경이었다.[6] 엔딩곡이 끝나고 후원자 명단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무려 5분 동안 올라간다.[7] 각종 진보언론사가 후원하고 협찬했는데, 이 가운데 ‘새누리신문’이 눈길을 끈다. 이제는 새누리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를 생각해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