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오인중 | |||||
사나다 노부시게 | 모리 카츠나가 | 고토 모토츠구 | 아카시 타케노리 | 쵸소카베 모리치카 |
1. 개요
明石全登? ~ 겐나 4년(1618년) 또는 불명[1]
일본 센고쿠 시대 무장. 사나다 노부시게, 고토 모토츠구, 모리 카츠나가, 쵸소카베 모리치카와 함께 오사카 5인중의 일원. 이름 읽는 법이 많아서 타케노리(현재 위키피디아 일본어 판에는 이 독음으로 되어 있다), 테루즈미, 젠도우라고도 읽는다. 한자가 좀 일본식 이름에는 잘 안 쓰이는 한자이긴 하다.
2. 생애
본래 우키타 가문의 가신이다. 우키타 가문으로부터 받은 지행 4만석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받은 지행 등을 합쳐 10만석을 소유한 다이묘이기도 했다.우키타 히데이에가 서군의 선봉을 맡자, 가문의 사무라이 대장으로서 후쿠시마 마사노리, 이이 나오마사의 부대를 맞아 선전했다. 그러나, 시마즈 군의 원호가 이루어지지 않아 중과부적으로 퇴각하게 되었다. 참고로 미야모토 무사시가 당시 아카시 휘하에서 싸웠다고 한다.[2] 그러나 이 이야기는 무사시의 부친으로 알려진 신멘 무니가 쿠로다 칸베에의 가신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실제였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이야기이다.
패전 후 우키타 가문이 망하자, 낭인이 되었다가 오사카 성 낭인모집소식을 듣고 오사카성으로 들어갔다.
이후 오사카에 모인 크리스천 무사들의 수장으로써 철포대를 이끌고 싸웠다.(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 여러 문헌의 묘사를 보면 철포술에 일가견이 있었던 듯.
오사카 겨울의 진에서 도도 다카토라 등을 물리치는 활약을 했으나, 여름의 진 이후 생사불명. 전사했다고도 하고 도망쳤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인물을 죽였으면 포상이 있었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죽인 자에게 포상한 기록이 있지만, 이 인물은 죽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은데 포상 받은 사람은 없다.
오사카 5인중 중 유일하게 생사불명. 다른 사람들은 일단 죽은 게 전제고 '죽은 건 카케무샤고 아카시 타케노리가 너구리 따위에게 죽을 리가 없다는!'이라는 떡밥이 존재하는 거지만 테루즈미는 유일하게 진짜 생사불명. 천주교 신자였으므로 자살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생존설이 우세한 것이다. 다만 남만(필리핀)에 그가 도망쳤다는 기록이 없어서 거기로는 안 갔을 거라고 한다.[3]
러일전쟁 당시 페테르스부르크(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내란을 유도하는 공작을 펼친 것으로 유명한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 육군 대장(당시 계급은 대령)이 테루즈미 계열의 아카시 가라고 한다.
3. 대중매체에서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
신장의 야망에선 B급 무장으로 등장.
전국무쌍 사나다마루에서 클론 무장으로 등장, 여기서는 생존설을 따라 후일담에서 등장하며 오사카로 온 노부유키와 만나지만 오사카의 진에 나서지 않았던 노부유키는 그를 몰랐기에 그와 가볍게 담소를 나누고 헤어진다.
[1] 1618년에 순절한 것으로 확인되나 유해가 발견되지 않아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다.[2] 전국무쌍의 미야모토 무사시 시나리오에서 이 떡밥이 이용되었다.[3] 일본은 1635년까지 막부에서 필리핀이나 현재의 인도네시아와 교역을 계속하여 그쪽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