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37:35

안병극

성명 안병극(安柄極)
본관 순흥 안씨
생몰 1893년 12월 28일 ~ 1965년 3월 1일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 중가구리[1]
사망지 경상북도 안동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안병극은 1893년 12월 28일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 중가구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당시 안동군 예안읍 서부동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3.1 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발발하자 면장 신상면을 비롯한 면서기들과 동지들을 규합해 독립만세시위를 준비했다. 이윽고 3월 17일, 예안 장터에 비밀 연락을 받고 나온 수천 명의 군중을 이끌고 면사무소 뒷편에 있는 선성산에 올라가서 독립만세를 고창했고, 이후에는 거리를 행진했다. 군중은 뒤이어 경찰주재소로 몰려가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투석으로 유리차과 문을 파괴했다. 3월 18일에도 600여 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안병극은 1919년 5월 2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자 항소했고, 6월 24일 대구복심범원에서 징역 1년 6개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안동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65년 3월 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안병극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09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1] 인근의 가구리와 함께 순흥 안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안상윤·안상태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