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07:50:25

안성(독립운동가)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야스다 세이(安田盛)
이명 안형(安鎣)
본관 죽산 안씨(신)
출생 1926년 11월 8일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용평리 신연동 1002번지
(現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용평리 신연마을)[1][2]
사망 1996년 4월 16일
전라북도 진안군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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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5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

독립유공자 안일은 그의 형이다.

2. 생애

1926년 11월 8일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용평리 신연동(現 진안군 상전면 용평리 신연마을)에서 태어났다. 이후 전주부 노송정(현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 171번지로 이주했다.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1943년 11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및 총포화약류 취체령 위반, 폭발물 취체벌칙 위반 등의 혐의로 벌금형 200원 및 노역장에 200일간 유치되는 판결을 선고받았으나, 검사 측의 공소로 그해 12월 20일 징역 4개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전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했으며, 재학 중이던 1944년 동기생 정진호 등과 함께 조선어 말살, 창씨개명, 강제징용 등 일제의 식민지정책으로 인한 민족말살과 강제 수탈이 심화되는 것을 비판하면서 장차 일제의 패망과 조국독립에 대비할 것을 맹세하며 혈서동맹을 조직하여 항일학생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전라남도 여수군에서 화약, 탄약 등 일본군의 군수물자를 실은 열차가 전주부 청수정(現 전주시 완산구 교동) 한벽당(寒碧堂) 옆 한벽터널을 통과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1945년 2월 5일 전주부 노송정에 있던 정진호의 하숙집에서 이를 폭파할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하던 중 동지 한 명의 밀고로 곧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에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약 6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았다. 광복 이틀 뒤인 1945년 8월 17일 전주지방법원에서 검사 측의 공소 취소로 인해 공소가 기각되었고, 곧 불기소처분을 받아 마침내 석방되었다.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으며, 1996년 4월 16일 별세하였다.

[1] 죽산 안씨(신) 집성촌이다.[2] 현재는 용담댐 건설로 수몰되어 지번주소만 검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