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12 18:55:01

안소니 파라호커리

<colbgcolor=#000><colcolor=#fff> 안소니 파라호커리
Anthony Farrar-Hockley

GBE, KCB, DSO & BAR, MC
본명 앤서니 헤리티지 파라호클리 경
Sir Anthony Heritage Farrar-Hockley
출생 1924년 4월 8일
영국 코번트리
사망 2006년 3월 11일 (향년 81세)
영국 옥스퍼드셔 무리스퍼드
복무 기간 1941 ~ 1982
복무 영국 육군
최종계급 육군 대장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그리스 내전
6.25전쟁
키프로스 비상사태
인도네시아-말라야 전쟁
아덴 비상사태

1. 개요2. 생애 및 군 경력 3. 공훈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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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소니 파라호커리(Anthony Farrar-Hockley, 1924년 4월 8일 ~ 2006년 3월 11일)은 영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

2. 생애 및 군 경력

초기 생애 및 군 입대
안소니 파라-호커리는 1924년 4월 8일, 영국에서 출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육군에 입대하여 군 경력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장교로 임관하여 여러 전투에 참전하였다.

6.25 전쟁 참전
임진강 전투 (1951년 4월 22일 ~ 25일)
1951년 4월, 중공군은 총 70만 명의 대병력을 한반도에 집결시켜 문산에서 화천에 이르는 110km 전선에 걸쳐 대공세를 시작하였다.
중공군 36개 사단과 북한군 1개 군단이 서울을 함락하려는 전략을 실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Gloucestershire Regiment) 800명은 중공군 3개 사단(약 42,000명)의 인해전술에 맞서 싸워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였다.
파라-호커리 대위가 속한 글로스터 대대는 3일 동안 사력을 다해 방어전투를 펼쳤으며, 이 과정에서 중공군의 발을 묶으며 국군과 유엔군이 철수하여 방어선을 구축하는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결국 압도적인 병력 차이로 인해 대대는 전멸 상태가 되었고, 800명 중 41명만이 살아남는 처절한 전투가 펼쳐졌다.
당시 글로스터 대대원들은 “당신들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오늘을 바쳤다.”(For your tomorrow, we gave our today.)라는 말을 남기며 끝까지 저항하였다.
이 전투는 비록 패배했지만, 중공군 63군 소속 3개 사단이 작전에 차질을 빚게 만들었으며, 결국 중공군의 남하작전 실패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미 제8군 사령관 제임스 밴 플리트는 "글로스터 대대는 현대전에서 단위 부대의 용기를 과시한 가장 뛰어난 귀감"이라고 평가하였다.

포로 생활 및 귀환 (1951년 ~ 1953년)
임진강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파라-호커리 대위는 1953년 8월 31일 판문점을 통해 영국군에 복귀하기까지 총 2년 4개월 동안 포로 생활을 하며 7차례 탈출을 시도하였다.
그는 끝까지 군인의 명예를 지키며 포로 생활 중에도 탈출을 시도하고 저항하며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귀환 후, 그는 "무기를 내려놓으라는 항복 명령을 자신의 입으로 외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회고하였다.

전후 군 경력 및 퇴역
6.25 전쟁 이후, 파라-호커리는 영국 육군에서 계속 복무하였으며, 북유럽 연합군 사령관(대장)까지 진급하여 영국 및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군사작전에 기여하였다.
2006년 3월 11일, 그는 향년 82세로 별세하였다.

3. 공훈

영국 육군 훈장 다수 수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사 공로훈장 수훈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14년 4월)

4. 참고 자료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6.25 전쟁영웅 안소니 파라-호커리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