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2 00:38:26

앙투안 드 보데몽

파일:앙투안 드 보데몽.jpg
이름 앙투안 드 보데몽
Antoine de Vaudémont
출생 1400년
로렌 공국
사망 1458년 3월 22일
프랑스 왕국 보데몽 백국
아버지 페리 1세 드 보데몽
어머니 마르그리트 드 제네빌
누이 마르그리트, 엘리자베트
아내 마르 다르쿠르
자녀 페리 2세, 장 8세, 앙리, 마르그리트, 마리, 장(사생아), 피에르뜨(사생아)
직위 보데몽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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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데몽 백작. 로렌 공국을 쟁취하기 위해 부르고뉴국의 지원을 받으며 앙주의 르네, 로렌의 이자벨과 대적했다.

2. 생애

1400년경 보데몽 백작 페리 1세 드 보데몽과 보데몽 여백작 마르그리트 드 제네빌의 아들로 출생했다. 누이로 마르그리트[1], 엘리자베트[2]이 있었다. 1415년 아버지가 아쟁쿠르 전투에서 전사한 뒤, 보데몽 백작위와 영지를 물려받았다. 이후 삼촌인 로렌 공작 샤를 2세 드 로렌이 두 딸 이자벨과 카트린만 낳자, 그는 로렌 공작위 승계를 노렸다. 그러나 샤를 2세가 장녀 이자벨을 앙주의 르네와 결혼시키고 로렌 여공작에 세우겠다는 듯을 밝히자, 이에 반발해 1425년부터 내전을 일으켰고, 샤를은 조카와의 전쟁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431년 1월 25일 샤를 2세가 낭시에서 사망한 뒤, 이자벨이 로렌 여공작, 남편 르네가 로렌 공작이 되었다. 앙투안은 이에 이의를 제기했고, 저지대 국가와 부르고뉴 본토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로렌을 공략하길 희망했던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의 지원을 받으며 공세를 개시했다. 1431년 7월, 앙주의 르레는 앙투안 드 보데몽을 상대로 볼뉴빌 전투를 치렀으나 참패하고 생포된 뒤 프랑슈콩테의 돌(Dole) 성채에 감금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이자벨은 남편을 구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켜 선량공 필리프와 앙투안을 상대로 분전해 로렌을 지켜냈다. 1432년 2월 16일, 선량공 필리프는 르네가 갇힌 성채를 찾아와서 5월 1일에 석방시켜주겠지만 그 대신 르네의 아들 과 루이를 인질로 넘기고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르네는 이를 받아들이고 가석방되었다.

1434년 4월 24일, 이자벨과 르네 부부는 바젤 대성당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명목상 로렌 공국의 주권자인 지기스문트로부터 로렌 공작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1437년 앙주의 르네와 화해하고 전쟁을 중단했으며, 1441년 3월 27일 보데몽 백국이 로렌 공국으로부터 독립하는 대가로 로렌 공국의 계승권을 포기하고, 아들 페리 2세를 르네와 이자벨의 딸 욜랑드와 결혼시키기로 했다. 1458년 3월 22일에 사망했다.

3. 가족

  • 마리 다르쿠르(1398 ~ 1476): 아르쿠르 백작 장 8세 다르쿠르의 딸. 아르쿠르 여백작, 오말레 여백작.
    • 페리 2세(1428 ~ 1470): 보데몽 백작, 제네빌 영주. 아내 욜랑드와의 사이에서 낳은 르네 2세가 1473년 로렌 공작이 되었다.
    • 장 8세(? ~ 1473): 오말레 백작, 엘보프 남작.
    • 앙리(? ~ 1505): 테루안 주교(1447 ~ 1484), 메츠 주교(1484 ~ 1505)
    • 마르그리트(1420 ~ 1474): 아르스홋과 비에르베케의 여성 영주. 보몽 백작, 기옌 백작 앙투안 1세 드 크로이의 부인.
    • 마리(? ~ 1455): 로앙 자작 알랭 9세의 부인.
  • 사생아
    • 장(? ~ 1509): 1488년 5월 20일 프랑스 국왕 샤를 8세에 의해 합법적인 아들이 되었고, 1483년 베네치아 군대 중장에 선임되었으며, 담빌레르, 플로렌스, 페스케의 영주가 되었다.
    • 피에르뜨 드 생 벨랭: 모랑빌의 여성 영주, 기사 프랑수아 콘탕의 부인.


[1] 블라몽의 영주 티보 2세의 부인.[2] 1397 ~ 1456, 나소자르부뤼켄바일부르크 백작 필립 1세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