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명
일본에서 벌어진 걸로 착각하게 만든 공포특급 도시전설. 한마디로 괴담이다.2. 내용
2012년 일본 이바라키현(茨城縣)에서 아즈마 중학교에 재학중인 2학년 네명이 같은 학교 클래스 여학생 '야다 카오리' 을 방과 후 납치 그대로 암매장 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건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범죄에 가담했던 한명 '이치하라 겐토'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암매장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고 누군가가 그 동영상을 신고하게 됨으로써 다음날 오전 10시 정식으로 경찰 수사가 시작됩니다. 경찰 수사 당시 학교에서 이들은 범죄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고 전혀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찰이 암매장 장소에서 '야다 카오리'를 찾았을 때에는 이미 사망하였고 부검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흙의 의한 압박 질식사 였으며 안타깝게도 사망시각은 경찰이 암매장 장소를 찾기 6시간전으로 추정 발표 했습니다. 구속수사가 진행되며 법의 심판을 받아야 했어야 했던 아이들은 '미츠하라 에이스케' 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범죄에 가담했던 한명 중 '사이토 이부키' 의 강요로 어쩔 수 없었다는 말도 안되는 진술로 '사이토 이부키' 혼자서 모든걸 뒤집어 쓰지만 이마저도 '사이토 이부키가 부모님이 없고 할머니와 같이 사는 점 그리고 아직 미성년, 범적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판단 (통칭 소년법)하여 정신과 치료1년과 집행유해 라는 선고를 받습니다.
나머지 범죄에 가담했던 소년들 모두 소년법 + 강요의 의한 범죄 라는 증언 버프를 받고 보호 감찰 처분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처벌을 받고 풀려납니다. 당연히 법을 믿고 심판을 기다리고 있던 '야다 카오리의' 아버지인 '야다 게이치로' 씨는 '어떻게 이런 범죄를 저지는 소년들이 소년이라 볼 수 있겠는가 나는 절대 이해도 용납도 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사건이 지나고 2년 후 2014년 9월 21일 암매장의 피해자 였던 '야다 카오리'의 아버지인 '야다 게이치로'씨는 후생연합 종합병원 신경외과 과장으로 재직 중인 상태에서 심부름 센터를 고용, 범죄에 가담했던 '사이토 이부키', '이치하라 겐토', '미츠하라 에이스케', '야나기 마츠모토' 네명을 전부 '가스마시' 근처 야산으로 동시 납치합니다. 또한 게이치로씨는 납치 전 병원에 있던 다량의 수술도구, 마취약과 모르핀, 수혈팩 등을 챙기고 같은 병원에서 정형외과를 담당하고 있던 동료의사 '타니구치 타케오'씨를 퇴근 후 술을 마시자는 제안을 한 후 술에 수면마취제를 섞어 자신이 직접 납치합니다. 소년들과 동료의사 한명을 납치한 곳은 게이치로씨가 2년 동안 산속에서 조금씩 준비한 판자건물로 산속에 있어 추후 경찰이 찾기 어려운 곳에 있었다고 합니다.(범죄를 가담했던 소년들을 이제 피해자로 부릅니다.)
9월 22일 오전 11시 피해자들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고 학교에도 등교하지 않자 각자 경찰에 신고 했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게이치로씨가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두고 병원과 휴대폰, 자택에 연락해 보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즉각 T/F팀을 구성 게이치로 씨를 찾기 시작합니다.
한편 피해자들은 판자건물에서 눈을 뜨고 차마 견디지 못할 고문들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동료의사인 '타니구치 타케오'씨에게는 만약 '이 아이들이 한명이라도 죽으면 너도 죽을 것이다' 라는 말을 전하며 타케오씨 에게는 아이들에게 치료를 받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고문 장면들은 전부 각자의 캠코더로 촬영 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9월 24일 피해자들 중 한명인 '야나기 마츠모토' 가 고문 도중 사망하였고 게이치로씨는 '야나기 마츠모토'를 분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 하였다고 합니다.
10월 3일 납치 되었던 '타니구치 타케오'씨가 풀려나며 경찰에 신고, 또한 게이치로씨는 근처 우체국에서 고문 장면이 담긴 테이프를 피해자들의 집에 발송하는 과정에서 우체국 직원이 경찰 전단지에 수배 되어있던 게이치로 얼굴을 기억하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타케오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같이 제출한 지도에는 피해자들의 위치가 표기 되었지만. 정확히 맞지 않아 찾는데 시간이 더욱 소요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찾은 판자건물에서 경찰은 피해자들을 발견하였으나… 이미. 팔, 다리, 혀, 눈이 모두 제거된 상태에서 숨만 붙어 있었고 '야다 게이치로'씨는 스스로 목을 매어 숨져있다고 합니다. 세달 뒤 사건 이후 납치되어 풀려났던 '타니구치 타케오'씨는 법적인 책임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도의적인 비난으로 인해 근무하던 병원 옥상에서 스스로 투신하여 사망하였고. 피해자 중에 한명인 '이치하라 겐토' 는 아버지가 직접 목을 졸라 살해당하게 됩니다. 또한 이제 피해자가 된 이들에게 게이치로씨에게 보상금을 청구해야 하지만 죽기 직전에 전재산을 기부한 상태에서 이미 사망하였고 게이치로씨의 부인도 오래전 이미 사별한 상태에서 단 1엔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건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범죄에 가담했던 한명 '이치하라 겐토'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암매장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고 누군가가 그 동영상을 신고하게 됨으로써 다음날 오전 10시 정식으로 경찰 수사가 시작됩니다. 경찰 수사 당시 학교에서 이들은 범죄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고 전혀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찰이 암매장 장소에서 '야다 카오리'를 찾았을 때에는 이미 사망하였고 부검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흙의 의한 압박 질식사 였으며 안타깝게도 사망시각은 경찰이 암매장 장소를 찾기 6시간전으로 추정 발표 했습니다. 구속수사가 진행되며 법의 심판을 받아야 했어야 했던 아이들은 '미츠하라 에이스케' 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범죄에 가담했던 한명 중 '사이토 이부키' 의 강요로 어쩔 수 없었다는 말도 안되는 진술로 '사이토 이부키' 혼자서 모든걸 뒤집어 쓰지만 이마저도 '사이토 이부키가 부모님이 없고 할머니와 같이 사는 점 그리고 아직 미성년, 범적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판단 (통칭 소년법)하여 정신과 치료1년과 집행유해 라는 선고를 받습니다.
나머지 범죄에 가담했던 소년들 모두 소년법 + 강요의 의한 범죄 라는 증언 버프를 받고 보호 감찰 처분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처벌을 받고 풀려납니다. 당연히 법을 믿고 심판을 기다리고 있던 '야다 카오리의' 아버지인 '야다 게이치로' 씨는 '어떻게 이런 범죄를 저지는 소년들이 소년이라 볼 수 있겠는가 나는 절대 이해도 용납도 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사건이 지나고 2년 후 2014년 9월 21일 암매장의 피해자 였던 '야다 카오리'의 아버지인 '야다 게이치로'씨는 후생연합 종합병원 신경외과 과장으로 재직 중인 상태에서 심부름 센터를 고용, 범죄에 가담했던 '사이토 이부키', '이치하라 겐토', '미츠하라 에이스케', '야나기 마츠모토' 네명을 전부 '가스마시' 근처 야산으로 동시 납치합니다. 또한 게이치로씨는 납치 전 병원에 있던 다량의 수술도구, 마취약과 모르핀, 수혈팩 등을 챙기고 같은 병원에서 정형외과를 담당하고 있던 동료의사 '타니구치 타케오'씨를 퇴근 후 술을 마시자는 제안을 한 후 술에 수면마취제를 섞어 자신이 직접 납치합니다. 소년들과 동료의사 한명을 납치한 곳은 게이치로씨가 2년 동안 산속에서 조금씩 준비한 판자건물로 산속에 있어 추후 경찰이 찾기 어려운 곳에 있었다고 합니다.(범죄를 가담했던 소년들을 이제 피해자로 부릅니다.)
9월 22일 오전 11시 피해자들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고 학교에도 등교하지 않자 각자 경찰에 신고 했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게이치로씨가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두고 병원과 휴대폰, 자택에 연락해 보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즉각 T/F팀을 구성 게이치로 씨를 찾기 시작합니다.
한편 피해자들은 판자건물에서 눈을 뜨고 차마 견디지 못할 고문들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동료의사인 '타니구치 타케오'씨에게는 만약 '이 아이들이 한명이라도 죽으면 너도 죽을 것이다' 라는 말을 전하며 타케오씨 에게는 아이들에게 치료를 받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고문 장면들은 전부 각자의 캠코더로 촬영 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9월 24일 피해자들 중 한명인 '야나기 마츠모토' 가 고문 도중 사망하였고 게이치로씨는 '야나기 마츠모토'를 분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 하였다고 합니다.
10월 3일 납치 되었던 '타니구치 타케오'씨가 풀려나며 경찰에 신고, 또한 게이치로씨는 근처 우체국에서 고문 장면이 담긴 테이프를 피해자들의 집에 발송하는 과정에서 우체국 직원이 경찰 전단지에 수배 되어있던 게이치로 얼굴을 기억하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타케오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같이 제출한 지도에는 피해자들의 위치가 표기 되었지만. 정확히 맞지 않아 찾는데 시간이 더욱 소요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찾은 판자건물에서 경찰은 피해자들을 발견하였으나… 이미. 팔, 다리, 혀, 눈이 모두 제거된 상태에서 숨만 붙어 있었고 '야다 게이치로'씨는 스스로 목을 매어 숨져있다고 합니다. 세달 뒤 사건 이후 납치되어 풀려났던 '타니구치 타케오'씨는 법적인 책임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도의적인 비난으로 인해 근무하던 병원 옥상에서 스스로 투신하여 사망하였고. 피해자 중에 한명인 '이치하라 겐토' 는 아버지가 직접 목을 졸라 살해당하게 됩니다. 또한 이제 피해자가 된 이들에게 게이치로씨에게 보상금을 청구해야 하지만 죽기 직전에 전재산을 기부한 상태에서 이미 사망하였고 게이치로씨의 부인도 오래전 이미 사별한 상태에서 단 1엔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3. 결과
- 1. 딸이 같은반 클래스 3명에게 암매장 당함
- 2. 암매장 당했던 딸의 아버지가 처절하게 복수함
- 3. 복수 당했던 부모들 보상금 한푼도 못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