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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양명진(楊明鎭) |
출생 | 1896년 3월 29일 |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 취룡리 | |
사망 | 1964년 9월 24일 (향년 68세) |
묘소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
부모 | 아버지 양기영 |
형제자매 | 형 4명 남동생 양익조 |
배우자 | 강영실 최선화 |
자녀 | 장남 양제석[1] 장녀 양제시 차녀 양제니 |
호 | 소벽(少碧) |
서훈 |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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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2. 생애
1896년 3월 29일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 취룡리에서 양기영의 6남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조실부모하여 동생 양익조와 함께 이모 박씨 아래서 자라며 한학을 공부하다가, 강명화(건국훈장 애족장, 1868~1933)의 딸 강영실(아명 : 봉강)과 1915년 결혼하였다. 강명화는 1905년 아들 영문, 영소, 영상, 영각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간 지역 유지이자 개화한 지주였다. 이들 부자들은 훗날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강명화와 차남 강영소(건국훈장 독립장)은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을 역임했다. 강영대, 강영문, 강영상, 강영각도 건국훈장과 건국포장을 받았다. 즉 아버지, 아들들, 사위까지 모두 7명이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 집안이다.1917년 장인 강명화의 주선으로 상해를 거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미 21세의 나이였으나 인디애나주의 초등학교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중학교를 졸업한 뒤 1924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뉴벳포드 방직학과에 입학하여 방직 기술을 공부했다. 1921년에는 손위 처남 강영소가 발기인중 하나인 흥사단에 가입 (단우번호 199)했고, 1927년 같은 시기 유학했던 고향 친구 최희송, 오정수와 함께 귀국했다. 일제의 방해로 고향에 방직공장을 세우려던 꿈을 접고, 1930년대 초반 강영대, 강영소, 강영문의 지원으로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한국독립당에 가담해 활동했고 기관지 《한성(韓聲)》을 발행했으며, '삼민주의란 무엇인가'를 최초로 번역하여 독립후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다. 임시정부에서는 의정원, 생계부, 재무부에서 다양한 보직을 수행했고 광복군 정훈처에서 정령을 지냈다. 광복 후에는 1946년 귀국하여 3.1동지회 회장 등을 지냈다.
독립운동으로 전처와 소원해져 이혼하였으며 1937년 임시정부 피난 길이던 중국 진장에서 이화여자전문학교 출신 최선화를 만나 김구의 주례로 재혼하였다. 1938년 중국에서 딸 양제시를 낳으면서 부인과 함께 육아일기를 겸한 일기장을 1946년 귀국 때까지 작성했는데, 후술하듯 이 내용은 1997년 '제시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외손녀에 의해 출간되었다. 2022년 천안 독립기념관에 양우조 어록비가 설치되었으며, 제시의 일기가 2023년 뮤지컬화 되기도 하였다.[2]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훈받았으며, 1999년 9월 이 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되었다.
3. 가족관계
첫 부인인 강영실과 사이에 낳은 아들 양제석은 해군사관학교 3기로 임관하고 해사 생도대장, 국방대학원 교수, 해군인천경비사령관 등을 역임하고 대령으로 전역했다. 양제석의 아들 양인집은 쌍용화재 사장, 하이트진로 사장을 역임했고 하이트진로 사장 재직 시 소주 위주에서 맥주, 막걸리 등 품목 다각화로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였다. 현재는 IT기업인 어니컴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둘째 부인 최선화는 1946년 귀국 후 김활란 총장의 권유로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67년 비서학과[3] 개설 후 1976년까지 비서학과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4] 퇴임 이후에도 1982년 이화여대 비서학과 출신들을 주축으로 한국전문비서협회가 창설되자 후진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가입했다.#
<제시의 일기>의 주인공인 양제시는 서울성모병원 원장 김인철과 결혼하였고, 서울국제부인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국내 거주 외국인과의 친선에 기여하였다. 양제시의 딸 김현주는 방송작가로 활동 중 제시의 일기를 번역, 출간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프리몬트통합교육구 교육위원을 역임하였다.
4. 제시의 일기
1941년 신년 기념 사진.[5] |
양우조, 최선화 부부는 1938년 딸 제시를 낳은 뒤 1946년 귀국할 때까지 8년간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동시에 제시를 키우면서 일기를 작성했다. 이 일기는 제시의 성장모습과 가족사를 중심으로 한 육아기록이지만, 1938년 7월부터 1946년 4월 29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 공군기의 공습을 받으며 광주, 유주, 기강을 거쳐 중경으로 이동한 과정과 당시의 실상을 낱낱이 알려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제시의 일기>는 외손녀 김현주가 정리하여 1999년 출판되었다. 그리고 2006년 3월 1일 KBS 삼일절 특집 다큐멘터리 <광야에서 들꽃을 만나다>라는 이름으로 제작, 방영되기도 했고, 2016년에는 박건웅 화백이 주 한국 총영사관의 지원을 받아 만화화하였다. 만화판의 제목은 <제시 이야기>. 2023년에는 동명의 뮤지컬이 초연되었다. 정민, 김찬호, 고상호가 양우조를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