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07 12:27:04

어정역(수려선)

이곳은 폐쇄된 교통 시설입니다.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교통 시설은 폐쇄되어 더 이상 운영하지 않습니다.

어정역
(폐역)
다른 문자 표기
로마자 Eojeong
한자 漁汀
간체자 渔汀
가나 [ruby(漁汀, ruby=オジョン)]
주소
관리역 등급
폐역
(대한민국 철도청)
일반 철도
수려선 개업일 1930년 12월 1일
수려선 폐업일 1972년 4월 1일
열차거리표
수려선
어 정
(폐역)
1. 개요2. 기타3.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pds/201306/15/39/a0048039_51bc70618a181.jpg[1]
수려선 어정역에 서있는 여주행 열차. 1953년 5월 3일에 미국 철덕 Don Ross 가 찍은 자료다. 당시는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전인 전쟁 중이었고 여주, 이천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때문에, 군용화차가 달려있는 것. 그리고 이 열차의 기관차도 미 육군 소속이었다. 다만 기관사와 화부는 한국인. 전쟁 후 수원군(성내장, 성외장), 용인(김량장), 오천(오천장), 이천(이천장), 여주(읍내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운송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수려선의 역. 1972년 폐지되고 나서 경남여객의 완행, 직행버스가 증발되었다. 수려선의 어정역 터는 현재 용인 경전철 어정역에서 큰 도로 건너 많이 보이는 철물점 뒤의 큰 물류창고 자리다. 현재의 어정역과는 직선거리로 약 150m가량 떨어져 있다.[2]

2. 기타

파일:external/www5f.biglobe.ne.jp/travelguide088005.jpg
[3]
수려선에 있었던 두 개의 터널 중 하나인 멱조현 터널[4]의 어정 쪽 입구로 추정되는 사진이다.

메주고개를 넘기 위해 뚫은 터널이다. 메주고개는 용인 삼가동에서 어정동을 잇는 고개로, 이 곳에 수여선 두 개의 터널 중 하나인 멱조현 터널이 있다. 수여선이 메주고개를 넘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정역을 가기 위한 기관사는 용인 메주고개에 오면 승객을 내보내고 200~300미터 밖에서 탄력을 받아서 올라갔다. 멱조현 터널 이름은 인근의 멱조현 마을에서 따왔다. 현재의 주소로 따지면, 처인구 삼가동. 그 이전으로 가면 직동(直洞)이었다고 한다. 김량장동 쪽에서 역북동을 거쳐 서쪽으로 곧장 오르면 나오는 마을이 멱조현 마을이기 때문에 직동이라 붙여졌다고 추정한다고. 또한 시아버지 구한 며느리 전설이 구전되어 내려온 곳이라고도 한다. 멱조현 터널은 동백지구 개발로 인하여 흔적도 없이 매몰되어 사라졌고, 그 위에 도로가 깔렸다.

저 멱조현터널은 1972년 수려선이 폐쇄되고 나서, 한동안 새우젓을 저장하는 창고로 쓰였다고 한다. 젓갈류를 저장하는 데에는 그만한 조건이 없다. 하지만, 경기농산의 정미소가 남쪽을 메우고 그 위에 세워졌고, 북쪽은 지역난방공사가 메우고 세워졌다.[5] 터널을 뚫은 산은 개인 소유이며, 터널은 한국철도공사 소유고, 남쪽터널 입구를 10m 이상 메우고 정미소를 세웠다고 한다. 터널 자체가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6]

용인신문에도 수려선이 희미한 흔적만 남았다는 기사가 올라왔는데, 여기서 멱조현 터널의 위치를 대강 알 수 있었다.

이 메주고개는 꽤나 유서가 깊은데, 한양(서울)에서 동래(부산)을 잇는 최단거리 길이었던 영남대로의 경유지이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때부터 역로(驛路)로 기록되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통신사가 오가던 길이었으며, 일본 사신의 상경로이기도 했다고. 또한,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한양으로 진격할 때 거치던 주요 북상로 가운데 하나였다고.

우마차는 신작로가 나있는 메주고개로 가고, 사람들은 작은메주고개[7]로 갔다고 한다. 작은메주고개는 길이 좁고 험해서 우마차가 다니기 어려웠다고. 멱조현 터널은 가장 길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열차는 이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어정역을 출발하자마자 속력을 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해봐야 힘도 딸리고 속도도 떨어지기 때문. 퍼밀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멱조현마을 주민들이나 궁촌 쪽 학생들은 고개마루턱에 이를 때 그대로 열차에서 뛰어내리기도 했었다고. 반대로 올 때는 고갯마루를 올라설 때 그대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참고로 기사내용에 나오듯, 멱조현마을의 교각은 아직도 남아있다. 또한 작은메주고개는 8차선 도로로 탈바꿈하였고, 메주고개도 동백지구 개발과 함께 통행량이 부쩍 늘었다고. [8]

이 메주고개는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칠장산과 김포시의 문수산을 잇는 한남정맥의 용인구간 중 일부다. 북쪽의 동백지구에서 내리는 빗물은 서해로 흐르고, 남쪽으로 내리는 빗물은 경안천을 거쳐, 팔당호에 합류하는 분수령 역할을 했다. 여길 넘어서 방뇨했다간 한강의 수질을 오염시키는 셈이다(...) 물론 지금이야 정화시설이라도 있지만, 그래도 노상방뇨는 하지 말자(...)

이 굴을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보니까 사고도 있었는데, 1962년 1월 30일에는 열차가 내리막길에서 과속을 하다 탈선하며 전복이 됐는데, 열차 안에 피어둔 난로가 떨어지며 불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열차는 전소되었으며, 승객 3명이 사망하고 42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형 사건이 터졌다.[9] 여주역에서 저녁 6시 30분에 출발한 열차가 기관 고장으로 용인역에서만 46분이 지체 되자, 과속을 했다고 알려졌다. 승객도 정원이었던 50명에서 초과된 55명이었고, 난로가 흔들릴 정도로 심하게 달리자 승객들이 불안에 떨며 천천히 가자고 말했을 정도. 어정역과 용인역 사이에 있던 내리막길 커브길에서 열차가 탈선하여, 열차는 5m 아래로 거꾸로 떨어져 쳐박혔다. 그 놈의 과속이 문제다.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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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donsdepot.donrossgroup.net/dr036.htm[2] http://blog.naver.com/kgh19941061/220142120901, 답사기 사진 7~8 참고[3] http://www5f.biglobe.ne.jp/~travel-100years/travelguide_088.htm[4] 나머지 하나는 수려선 신갈역과 덕곡역 사이에 있었던 덕곡터널(덕굴)이다.[5] 기흥구 중동 10-3으로 추정됨.[6] 대부분의 인터넷에서 경기농산의 정미소가 멱조현터널의 남쪽 입구를 메웠다고 나오는데, 현재 지도에 경기농산을 쳐보면 엉뚱하게도 군포시의 경기농산이 나온다. 그 이유는 이 멱조현터널의 경기농산이 없어졌기 때문. 이곳의 경기농산은 기흥구 삼가동 19-1에 있었는데 문을 닫았고, 현재는 용인미르스타디움의 B주차장 중 일부분이 되었다. 실제 멱조현터널의 남쪽 입구는 그 아래의 땅속에 파묻혀 있다. 아마 앞으로 그 남쪽 입구를 볼 수 없을 듯 하다...[7] 한동안 정신병원고개로 불리다 지금은 효자고개로 이름이 바뀌었다[8] 「영남대로상의 천년 길목 메주고개(覓祖峴)」, 2010-09-09, 용인시민신문[9] 「수려선 동차전복사고 사망자신원 아직 불명」, 1962-01-31,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