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에우피지우 시우바 Elpídio Silva | |
본명 | 에우피지우 페레이라 다시우바 필류 Elpídio Pereira da Silva Filho | |
등록명 | 실바 | |
출생 | 1975년 7월 19일 ([age(1975-07-19)]세) 브라질 파라이바주 캄피나그란지 | |
국적 | 브라질 | |
신체 | 179cm, 85kg | |
직업 | 축구선수(스트라이커)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미상~미상/유스)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96~1997) 가시와 레이솔 (1997~1998) SC 브라가 (1998~2000) 보아비스타 FC (2000~2003) 스포르팅 CP (2003~2006) → 비토리아 SC (2004~2005/임대) 더비 카운티 FC (2006) SC 코린치앙스 알라고아누 (2006)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 알키 라르나카(2007~2008) AEK 라르나카 FC (2009) |
1. 개요
에우피지우 시우바 (Elpídio Silva, 1975년 7월 19일 ~ )는 브라질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6년 K리그에서 활동했던 스트라이커이다.2. K리그 이전
1995년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하였고 해외진출을 모색하여 1997년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하여 약 두 시즌 동안 10골을 득점하였다. 1998-99 시즌 여름 이적 시장에서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의 SC 브라가로 이적해 두 시즌 활약하였고 이후, 보아비스타 FC와 스포르팅 CP와 비토리아 SC를 거치며 2005-06 시즌까지 프리메이라리가에서 63골을 기록하며 리그 수준급 공격수로 불리기도 하였다. 2006-07 시즌에 포르투갈을 떠나 잉글랜드 챔피언십의 더비 카운티로 이적하였지만 부상으로 신음하게 되었고, 더비 카운티와 계약을 해지하고 브라질로 복귀하게 되었다.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2006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올리베라와 함께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였다. 경기에 출전한 실바는 노쇠하고 부상 여파가 가시지 않아 체력이 떨어져 있었고, 경기 흐름에 겉도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며 위협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간혹 차범근 감독이 만족할만한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리그에서 14경기 출전에 선발출전 경기는 단 4번에 그치며 2006시즌이 종료하고 올리베라와 함께 K리그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그가 성남 일화와의 챔결에서 보여준 멋진 만회골은 오래 기억되고 있다.4. K리그 이후
수원에서 퇴단한 후, 실바는 키프로스 1부리그로 이적하여 2009년까지 활약한 후 은퇴하였다.5. 플레이 스타일
힘 있는 플레이를 주로 보여주었다. 차범근 감독은 실바의 결정력을 높이 평가했으나 정작 올리베라하고 호흡이 맞지 않았고 포르투갈 시절부터 계속된 부상으로 컨디션이 많이 떨어져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2006년 리그 후반기에는 단신이지만 포스트 플레이를 잘 소화하고 침투 플레이에서 좋은 면을 보여주어서 올리베라보다 더 중용되는 모습을 보였다.6. 에피소드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삼성 하우젠 K-리그 2006 전기리그에서 부진하였고, 이를 쇄신하기 위하여 기존 외국인 공격수였던 이따마르를 성남 일화로, 산드로 카르도주를 전남 드래곤즈로 임대 보내며 실바와 올리베라를 야심 차게 영입하며 이들을 성적 반등을 위한 핵심자원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리그 후반기는 같은 시기에 수원으로 이적한 백지훈과 이관우가 성적을 이끌었고 실바와 올리베라의 활약은 미미하고 말았다.수원에 입단할 당시, 브라질 명문 코린치안스에서 영입되었다고 발표되기도 했었으나 알라고아누 주에 있는 동명의 다른 팀이다.
K리그에서의 골 기록은 2골로 모두 성남 일화를 상대로 리그와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득점하며 나름 성남에게 강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나머지 2득점은 2006년 FA컵 8강전과 4강전에서 기록하였다.
2006년에만 소속된 팀이 4팀이나 된다. 2006년 한정 저니맨이라도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커리어 상 가장 불안정한 시기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