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oché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론과 회의주의자들이 사용했던 용어. 멈춘다는 의미인데, 그들이 보통 멈춘다고 했을 때는 논리의 전개를 멈추라는 의미였다.
이런 식이다.
"이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이야기 하다 보면 저렇게 되고, 그러니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고 눈이 하얀색인데 눈은 물이 얼어서 된 거고 물은 시꺼먼데 그럼 눈도 까만 거 아니냐고"
"고마 해라. 에포케epoché다."
이런 것들이 진절머리가 났던 회의주의자들은 이렇게 그만 하라는 의미로 그렇게 써왔던 것이다.
20세기에 와서 에드문트 후설이 현상학에서 이걸 차용해와서 현상학적 에포케를 주창했다.[1]
후설이 말한 에포케(판단 중지)는 사물에 대해 기존의 관점, 선입견, 습관적 이해를 배제하고 직관해보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장실 변기가 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변기라는 사물에 대해 그것은 변을 보는데 쓰이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정녕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본질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에 대해서는 불충분하다. 만약 우리가 화장실 변기를 보고 그것이 변을 보는데 쓰이는 것이라는 기본의 습관적 인습을 에포케 하고 그것을 처음 보는 순수한(?) 사람의 시각을 전제한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변기를 보고 그것을 세수하는데 쓰든지, 물을 길는 샘물로 파악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후설의 현상학적 관점에서는 본질이라는 것이 결국 노에시스의 지향성의 산물이 된다. 위의 변기 예에서 변기의 본질, 즉 노에마(나에 의해 파악된 본질)는 노에시스(나의 주관)가 그것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후설의 에포케 논리가 정말 우리 인식이 그러한 과거의 경험,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는가 하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통적인 본질에 대한 시각을 크게 바꿔놓은 것은 사실이다.
요약하자면 이런저런 생각은 멈추고,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
[1] 전기 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