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16:59:50

엘 하지 디우프

엘 하지 디우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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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의 前 축구선수
파일:4611.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엘 하지 디우프
El Hadji Diouf
본명 엘 하지 우세이누 디우프
El Hadji Ousseynou Diouf
출생 1981년 1월 15일 ([age(1981-01-15)]세) /
세네갈 다카르주 다카르
국적
[[세네갈|]][[틀:국기|]][[틀:국기|]]
신체 조건 181cm, 78kg
포지션 윙어, 스트라이커
소속팀 스타드 렌 FC (1993~1995 / 유스)
FC 소쇼몽벨리아르 (1995~1998 / 유스)
FC 소쇼몽벨리아르 (1998~1999)
스타드 렌 FC (1999~2000)
RC 랑스 (2000~2002)
리버풀 FC (2002~2005)
볼턴 원더러스 FC (2004~2005 / 임대)
볼턴 원더러스 FC (2005~2008)
선덜랜드 AFC (2008~2009)
블랙번 로버스 FC (2009~2011)
레인저스 FC (2011 / 임대)
동커스터 로버스 FC (2011~2012)
리즈 유나이티드 FC (2012~2014)
사바 FA (2014~2015)
국가대표 파일: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70경기 24골 (세네갈 / 2000~2009)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유망주 시절2.1.2. 리버풀 시절2.1.3. 볼튼 원더러스 시절2.1.4. 선더랜드 시절2.1.5. 블랙번 로버스 시절2.1.6. 돈케스터 로버스 시절2.1.7. 리즈 유나이티드 시절2.1.8. 사바 FA 시절
2.2. 국가대표팀 경력
3. 사건·사고
3.1. 상대팀 팬을 향해 침을 뱉다3.2. 나이트에서 폭행 시비에 휘말리다3.3. 음주 운전 사건3.4. 아내를 폭행하다3.5. 에버튼 볼보이와 언쟁하다3.6.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 비난3.7. 클럽에서 난투극을 벌이다3.8. 제라드를 비난하다
4. 기타5. 수상
5.1. 우승5.2.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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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네갈의 축구 선수.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1-0으로 격파하는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세네갈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러나 스타의 반열로 올라설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최악의 멘탈을 선보이며 자기 인생을 스스로 망치고 말았다. 리버풀 역사상 최악의 이적 선수를 뽑을 때면 이 선수가 항상 거론될 정도. 하단의 수많은 사건사고를 보라.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유망주 시절

엘 하지 디우프는 1981년 1월 15일 세네갈의 수도 다케르에서 축구 선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가 8살일 때 세상을 떠났고, 그는 할아버지에게 양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디우프는 훗날 비록 아버지와 함께 있던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이는 바로 아버지였다고 회상했다.

디우프는 아버지처럼 축구 선수가 되기로 결심하고 1998년에 프랑스 축구 리그의 소쇼 몽벨리아르에 입단했다. 그는 1998년 12월 12일 바스티아와의 경기에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그는 16경기에 출전했지만 골을 기록하지 못했고 1999년에 스타드 렌 FC로 이적했다. 디우프는 스타드 렌에서 29경기(리그 28경기, 컵대회 1경기)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이렇듯 데뷔 이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던 그의 기량이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 RC 랑스로 이적한 뒤였다. 2000-01 시즌, 디우프는 28경기 8골을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2001-02 시즌엔 26경기 10골을 기록했다. 이후 디우프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세네갈의 돌풍을 이끌어내며 세상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 당시에 불리던 별명이 '연쇄 살인마'였다. 이러한 그의 활약을 지켜본 제라르 울리에 리버풀 감독은 1,000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디우프를 영입했다. 그러나 이 결정이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은 곧 드러나고 만다.

2.1.2. 리버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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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우프를 영입한 제라르 울리에 리버풀 감독은 디우프가 월드컵에서 보여준 것처럼 리버풀에서도 멋진 활약을 보여줘서 리버풀의 리그 우승을 이끌어 주길 기대했다. 디우프는 2002년 8월 24일 사우스햄튼과의 홈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날 디우프는 2골을 몰아넣으며 홈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때만 해도 콥들은 디우프가 최고의 공격수가 되리라 기대했으나 그의 세번째 골은 이듬해 3월에 터졌다.

데뷔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디우프였지만, 이후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구제불능의 공격수였다. 결정적인 찬스를 번번이 날리기 일쑤였고 움직임이 좋은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팀 플레이를 성실하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훈련도 게을리하고 나이트를 수시로 들락거려 스태프들의 속을 타들어가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는 사고도 종종 터트렸다. 특히 그는 2002년 셀틱과의 UEFA 컵 경기에서 셀틱 팬에게 침을 뱉어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자세한 건 하단의 사건사고에서 설명하겠다.) 이렇듯 문제가 많은 그였건만, 울리에는 그래도 1,000만 파운드를 주고 데려온 공격수라는 이유로 그를 계속 선발로 기용했다. 그 결과, 디우프는 리그 29경기 3골, FA컵 3경기 0골, 리그 컵 5경기 3골, 유로파 컵 9경기 0골을 기록, 총합 46경기 6골이라는 성적을 냈다.

첫 시즌을 이렇듯 말아먹은 디우프는 다음 시즌에도 부진했다. 그는 2003-04 시즌에서 이것이 정녕 1,000만 파운드를 주고 영입한 주전 공격수인가 싶을 정도로 최악의 폼을 선보였다. 그는 13개의 옐로카드와 1개의 레드카드를 받으며 카드 캡처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렇다면 골은?

0골

그렇다! 그는 리그 26경기. FA컵 1경기, 리그 컵 2경기, 유로파 컵 4경기 등 총합 33경기에 선발 출전하는 등 많은 기회를 받았으나 이 중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팬들은 그를 그만 기용하라고 아우성이었지만 울리에는 자신이 데려온 선수랍시고 그를 계속 주전으로 기용하는 고집을 보이며 콥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당시 리버풀의 센터백이었던 제이미 캐러거는 훗날 디우프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그는 리버풀 역사상 최악의 공격수다. 그는 등번호 9번을 달고 뛰면서 단 한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사실 그는 아마도 모든 구단을 통틀어 유일하게 골을 기록하지 못한 9번 선수일 것이다. 그는 언제나 훈련에 지각했다.
이에 대한 디우프의 대답은 흠좀무하기 짝이 없다.
캐러거가 11명인 팀은 어느 팀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1] 그는 평범한 인간이며 나와 같이 뛰었을 땐 내게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이렇듯 아무런 활약도 못하고 팀 분위기 마저 해치는 선수를 눈엣가시로 여긴 리버풀은 2004-05 시즌이 시작되기 전 볼튼으로 임대보냈다. 그는 볼튼에서 32경기 9골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고 이듬해 볼튼 원더러스로 완전 이적했다.

2.1.3. 볼튼 원더러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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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15일, 디우프는 유에파컵에서 불가리아의 로코모티프 플로브디프를 상대로 데뷔골을 넣으며 볼튼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후 디우프는 2005-06 시즌에 27경기 4골을 넣으며 리버풀 때보단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볼튼 팬들은 그의 성실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제일 좋다며 가장 사랑하는 공격수로 뽑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볼튼에서도 온갖 말썽을 터트렸고 결국 2007-08 시즌에 볼튼을 떠날 것을 공식 선언했다.

2.1.4. 선더랜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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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8일, 디우프는 263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한 채 선더랜드로 이적했다. 당시 선더랜드의 감독이었던 로이 킨은 그를 다음과 같이 환영했다.
엘 하지는 언제나 공격을 받아왔고 서포터들의 미움을 받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그가 우리 스쿼드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선더랜드는 얼마 후 그를 영입한 것을 후회했다. 그는 리그 14경기, FA컵 1경기, 리그 컵 1경기에 출전해서 총 16경기에 출장하였으나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2.1.5. 블랙번 로버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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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30일, 디우프는 블랙번 로버스로 전격 이적했다. 그는 2009년 3월 11일 풀럼과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디우프는 2009-10 시즌에 27경기 출전하여 3골을 넣었다. 그러나 2010-11 시즌엔 21경기 출전하여 단 한 골도 넣지 못했고 결국 신임 감독 스티브 킨에 의해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 FC로 임대보내졌다. 그는 레인저스에서 스코틀랜드 리그 컵 우승을 달성했지만 정작 그가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또한 스코틀랜드 리그에서 15경기에 출전하여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하고 블랙번으로 쓸쓸히 귀환했다. 결국 그는 2010-11 시즌이 끝난 뒤 블랙번에서 방출되었다.

2.1.6. 돈케스터 로버스 시절

2011년 10월, 디우프는 웨스트햄에 찾아가 샘 알라다이스 감독에게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샘 알라다이스는 디우프와 볼튼과 블랙번에서 함께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디우프의 웨스트햄 입단은 거부되었다. 알라다이스는 훗날 팬들의 반대가 워낙 극심해서 계약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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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31일, 디우프는 돈캐스터 로버스와 3개월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2011년 11월 5일에 입스위치 타운과의 경기에서 2골을 넣어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이런 그의 활약에 감동이라도 했는지, 돈캐스터는 2012년 2월 2일 그와 6개월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그는 26경기 6골을 넣으며 나름대로 활약을 보여줬다. 하지만 돈케스터는 3부리그로 추락했고, 디우프는 리즈로 이적했다.

2.1.7. 리즈 유나이티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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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9일, 디우프는 리즈와의 입단 테스트에서 합격하여 리즈의 스쿼드에 합류했다. 사실 그가 맺은 계약은 non-contract, 즉 프로 계약이 아닌 아마추어 계약이었다. 하지만 그는 웬일인지 이때만큼은 나름 성실한 태도로 훈련에 임했고 경기에 투입된 뒤에도 쏠쏠한 활약을 보여줬다. 특히 에버튼과의 9월 25일 리그 컵 경기에서, 디우프는 탁월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팬들은 그가 리즈를 프리미어리그에 복귀시킬 레전드가 되리라고 확신했고 닐 워녹 리즈 감독은 그를 '투우사'라고 묘사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디우프는 정식으로 프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디우프는 브리스톨과의 9월 29일 경기에서 3:2 승리를 거두는 데 일조했고 10월 2일 볼튼 원더러스와의 경기에선 주장이 되어 2:2 무승부를 이끌었다. 이후에도 디우프는 사우스햄튼과의 리그컵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하며 3:0 완승을 견인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팀은 그의 활약에 만족하고 게약기간을 18개월로 연장했다.

이렇게 디우프는 201-13 시즌에서 44경기 6골을 기록하며 어느 정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뒤 2013-14 시즌에도 리즈에서 뛰게 되었다. 사실 기니의 AS Kaloum이란 팀에서 그를 영입하려고 했고 리즈도 이를 동의했으나 갑자기 리즈 측이 "완전히 쓰레기 같은 제안을 받았다"며 이를 거부했고 디우프는 그대로 리즈에서 뛰게 되었다. 그러나 디우프는 성병에 걸려 이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2013년 12월, 디우프는 리즈의 피트니스 훈련을 개인적인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고 뜬금없이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을 비난했다가 5년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맞는 등 구설수에 올랐다. 그러다가 2014년 1월 28일, 디우프는 마침내 입스위치와의 경기에 2013-14 시즌 첫 출장을 했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마지막 출장이었고 2014년 5월 16일에 리즈에서 방출되었다.

2.1.8. 사바 FA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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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디우프는 말레이시아의 사바 FA에 입단하여 말레이시아 프리미어 리그에서 1년간 팀의 주장으로서 뛰었다. 그러나 프로답지 못한 태도를 비판받았다. 사바 FA의 최대 라이벌인 조호루 다룰 탁짐(Johor Darul Takzim II F.C.)을 과도하게 칭찬했기 때문이다. 그는 Johor TV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소유한 세네갈 내 토지에 조호르 아카데미를 지을 용의가 있으며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선수들이 유럽 국가들에 진출할 때 수수료를 받을 것이다. 또한 나는 조호르의 비전과 목표에 감동받았기 때문에 급료를 받지 않고 조호르 축구 클럽에 뛸 마음이 있다."라고 밝혔다. 당연히 사바 FA 팬들은 라이벌 팀을 극찬하고 그 팀에 뛰고 싶다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비난을 퍼부었던 것이다. 결국 디우프는 2015년 7월에 주장 자격을 박탈당했고 은퇴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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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우프는 2000년 4월 국가대표팀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A매치를 70경기 뛰어서 24골을 넣었다. 특히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세네갈을 8강까지 올려놓는 이변을 보였다. 그는 이러한 활약 덕분에 월드컵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디우프는 2002년 초에 벌어졌던 200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도 선발 명단에 들어가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2004년 알리 부살림 심판에게 과도한 욕설을 퍼붓는 바람에 국가대표 4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다. 2004년, 디우프는 펠레로부터 FIFA 100에 선정되었다.. 그는 이걸 가지고 지금도 자신이 역대 최고의 공격수라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2007년 10월, 그는 돌연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는데 그 까닭은 세네갈 축구 조직위원회의 무능에 질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세네갈 감독이 한달 뒤 디우프를 설득한 끝에 그를 선발 명단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디우프는 2009년까지 세네갈 국가 대표팀에서 뛰었지만 이후로는 차출되지 못했다. 그러던 2011년, 디우프는 세네갈 국가 대표팀을 비롯하여 아프리카 축구 전체를 비난했다가 5년 정지를 당하고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2012년 징계가 완화되어 차출이 가능해지긴 했다. (자세한 것은 하단의 사건·사고에 있다.)

3. 사건·사고

사실 그의 커리어는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것과 리버풀에서 먹튀 짓을 한 것 외에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그런 그가 사람들에게 아직도 회자되는 것은 그의 멘탈 때문이다. 그만큼 온갖 말썽을 부리는 축구 선수는 아마 열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다음은 그가 축구 인생을 보내는 동안 저지른 주요 사건사고들이다. 하지만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외에도 청소년 시절 절도 행위를 하다 붙잡힌 적도 있는 등 온갖 사고를 많이 저질렀다.

3.1. 상대팀 팬을 향해 침을 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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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디우프는 UEFA 컵 8강전 셀틱과의 원정 경기에 출전했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경기가 87분으로 접어들 무렵, 그는 자신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셀틱 관중을 향해 침을 뱉었다. 이 일로 그는 경찰 조사를 받았고 울리에 리버풀 감독은 그를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
너의 이번 행동은 네 경력 내내 따라다닐 거야. 제발 정신 좀 차려라.
그는 2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고 리버풀로부터 2주 주급 정지를 당했다. 또한 리버풀은 셀틱의 자선단체에게 6만 파운드를 기부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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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4년 11월 15일, 볼튼으로 임대된 그는 제 버릇 고치지 못했는지 경기 도중 미들즈브러 팬에게 침을 뱉었다. 미들즈브러의 11살 꼬마팬이 그의 침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파장은 더욱 컸다. 볼튼 측은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더 이상 디우프의 행동을 묵과할 수 없고 구단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그와 같은 행위를 불쾌하게 여긴다”며 “디우프에 대해 중징계를 내리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결국 그는 3경기 출장 정지를 당하고 2주 주급 정지에 처해졌다.

3.2. 나이트에서 폭행 시비에 휘말리다

2005년 7월 7일, 디우프는 이번엔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의 나이트클럽에서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BBC는 아이샤 바라는 여인은 디우프의 폭행으로 25일 가량 안정을 취하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다카르 경찰이 현재 사건 진상을 조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추가 소식에 따르면, 그가 폭행한 사람은 팀 동료 칼릴루 파디가의 전부인 아이차투 바였음이 밝혀졌다. 그는 이일로 재판을 받아 6개월 구형을 받았지만 상호 합의하에 벌금형으로 마무리되었다.

3.3. 음주 운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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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우프가 소유한 차.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2005년 11월, 디우프는 볼튼에서 술을 마신 후 음주운전하다가 경찰에 적발되었다. 디우프는 소속팀의 연고지인 볼튼 블랙번 로드에서 술을 마신채 운전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우프는 경찰에 의해 음주운전 측정을 받은 뒤 인근에 위치한 애스틀리 브리지 경찰서로 연행됐으며 이후 보석금을 지불하고 풀려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디우프는 공판에 참석하여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었고 면허 또한 정지되었다.

3.4. 아내를 폭행하다

2006년 11월 5일, 디우프는 자택에서 아내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AFP 통신은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간) 디우프가 집에서 아내에게 입술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히는 등 폭행, 맨체스터 경찰국이 체포했다고 7일 전했다. 이후 추가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상호 합의를 보고 재판까지 가진 않은듯 하다.

3.5. 에버튼 볼보이와 언쟁하다

2009년 9월 21일, 디우프는 경기 도중 볼보이가 공을 빨리 던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은 바람에 경찰 조사를 받았다. 볼보이와 언쟁을 벌인 디우프는 경기 내내 에버튼 팬들의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디우프와 그의 소속팀 블랙번 로버스는 인종차별의 희생자였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디우프는 23일 영국의 '데일리 메일'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에버튼의 팬들이 나에게 바나나를 던졌다. 이 경기의 부심 또한 이 사실을 경찰에 보고한다고 말했다. 과거 내가 경기장에서 침을 뱉거나 싸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날은 아니었다"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문제는 디우프의 주장과 달리 부심이었던 리 메이슨 심판이 경찰과 접촉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또한 디우프의 주장을 입증할 그 마땅한 자료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디우프는 벌금형과 2주 주급 정지 형에 처해졌다.

3.6.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 비난

2011년 7월 29일, 디우프는 프랑스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세네갈 축구협회를 비난하면서 "아프리카 축구는 타락했다."라는 말을 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세네갈 축구협회(FSF)는 지난주 청문회를 열어 디우프에게 소명의 기회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디우프는 자신을 징계하려는 축구협회의 움직임에 격하게 반응하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에 세네갈 축구협회는 디우프에게 5년간 축구 관련 활동을 완전히 금지한다는 중징계를 내렸다. 2012년에 징계를 완화하여 국가대표로 뛰는것이 가능했지만 디우프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3.7. 클럽에서 난투극을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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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5일, 맨체스터의 클럽에서 일어난 싸움과 관련해 경찰에 체포돼 심문을 받았다. 싸움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던 디우프와 5명의 남자들은 폭행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고, 디우프와 같이 있었던 안톤 퍼디난드도 이들과 경찰차에 동승해 조사를 받았다. 피해자는 머리와 목의 가장자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 일로 디우프와 5명은 재판에 넘겨졌고 현재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퍼디난드는 조사 결과 싸움에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훈방 조치되었다.)

3.8. 제라드를 비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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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6일, 디우프는 뜬금없이 스티븐 제라드를 맹비난했다. 스티븐 제라드가 집필한 자서전에는 디우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제라드는 디우프를 "리버풀 팀 동료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는 인물"로 묘사했다. 이에 대해 디우프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리버풀은 잉글랜드 국적이 아닌 흑인선수들을 환대하지 않았다. 그 중심에 제라드가 있었다. 제라드는 흑인 선수들을 멀리했다. 그와 마주치는 매 순간 인사를 나눈 적도 없었다. 심지어 그는 내 눈을 바라본 적도 없다. 내가 경기장에서 뭔가 시도하려고 할 때 제라드는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다"라며 제라드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몰아갔다. 제라드 측은 이에 대해 디우프를 고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리버풀에서 뛴 경력이 있는 라이언 바벨디우프의 주장을 반박했다. 바벨은 자신의 SNS에 '디우프가 뭘 느꼈는지 모르겠다'며 '나 역시 디우프가 말하는 비 잉글랜드 국적 흑인선수다. 하지만 제라드에게 그 어떤 차별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제라드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디우프가 뭔가 오해했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제라드는 첫번째 자서전을 출판했을 때에도 디우프를 비판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디우프는 "난 펠레로부터 FIFA 100에 선정되었지만 제라드는 뭘 이뤘지?"라며 제라드를 조롱했다. 그때 제라드 측은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라드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몰아갔기 때문에 제라드 측이 강경대응을 선택한 것이다. 현재 두 사람 간의 법정 공방은 진행 중이다.

연이어 제라드와 캐러거를 비난했다. 제라드를 리버풀을 죽인 장본인, 제이미 캐러거는 패배자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캐러거는 디우프의 인터뷰가 공개된 후 '트위터'를 통해 "수비수인 나의 현역 시절 자책골을 제외해도 내가 디우프보다 많은 골을 넣었다"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디우프는 자신은 월드 클래스였고 그는 X였다는 사실이라며 "그는 자서전에도 수차례 내 이름을 언급한 X 같은 녀석이다. 내가 책을 쓴다면 그는 단 한 문장에도 포함될 가치도 없는 패배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4. 기타


레인저스 시절, 디우프가 공을 몰고 가다가 상대 선수와 부딪쳐서 넘어지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넘어지는 모양새가 워낙 움짤으로 쓰기에 적합했던지라 온갖 움짤들이 제작되었고 한국에도 이 움짤이 전해져서 온갖 패러디가 양산되어 한때는 해외축구 갤러리 필수소스로 대접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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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리즈에서 뛰고 있던 때에는 디우프를 롤모델로 삼는 한 꼬마 팬이 디우프 머리 모양을 한 채 리즈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엘런드 로드를 찾았다. 주차장에서 팬을 만난 디우프는 환하게 웃으며 함께 인증샷을 남겼고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졌다. 축구 팬들은 하필이면 천하의 악동 디우프를 롤모델로 삼았냐며 아이의 앞날이 걱정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 최악의 커리어팀 리버풀 FC의 전 에이스 사디오 마네의 롤모델이라고 한다.[2][3]

5. 수상

5.1. 우승

5.2. 개인 수상

  •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2001, 2002
  • BBC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2002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2002
  • FIFA 100


[1] We All Dream of a Team of Carraghers (우리는 캐러거가 11명인 팀을 꿈꾼다)라는 리버풀 응원가에 대한 조롱했다.[2] 물론 마네가 디우프를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충분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조국인 세네갈을 이끌고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전 당시 디펜딩 챔피언이자 유로 2000마저 우승한 최강의 팀이었던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세네갈 쇼크에서 골을 넣는 것과 동시에 16강에 진출시켰다. 이 활약만 봐도 마네가 디우프를 롤모델로 삼기는 충분하다. 하지만 리버풀에서의 커리어를 한정해서 보면 디우프는 심각한 부진 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팀원들과 불화가 심했다. 반면에 마네는 팀원들과의 큰 불화는 없었고, 오히려 리버풀에서 통산 269경기 120골 38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의 최고 에이스 중 하나로 거듭난다.[3] 거기에 마네는 리버풀에게 통산 여섯 번째 챔스 우승, EPL 개편 이후 최초의 리그 우승을 안겨주는 것과 동시에 FA컵 1회 우승, EFL컵 1회 우승도 안겨주었다. 거기에 리버풀 시절 세네갈 국대 커리어도 2018 러시아 월드컵오랜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고, 2019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이집트 준우승, 2021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카메룬 우승을 조국에 안겨주었다. 또한 개인상도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2회와 2002 한일 월드컵 대회 베스트팀 선정에 그친 디우프에 비해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2회 수상, 2018-19 시즌 옹즈도르, EPL 득점왕, 리버풀 올해의 선수를 석권하였다. 베스트팀 수상도 마네는 PFA 올해의 팀 4회 선정, 아프리카 축구 연맹 올해의 팀 4회 선정, 2019년과 2021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대회 베스트팀 선정,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시즌의 스쿼드, ESM 올해의 팀 선정, 2019년 UEFA 올해의 팀까지 선정되었다. 그 이외에도 2019년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3위, 2021-22 시즌 옹즈도르 2위, 2022년 발롱도르 2위를(다만 이건 2022-23 시즌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이후에 기록한 것이다. 그래도 2021-22 시즌 리버풀에서의 활약이 바탕이 되기는 하였다.) 기록하기까지 하였다. 즉 디우프와 비교하면 마네의 커리어는 전체적으로 엄청나게 앞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