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연병룡(延秉龍) |
본관 | 곡산 연씨[1] |
생몰 | 1892년 6월 16일 ~ 1919년 3월 31일 |
출생지 | 충청도 청안현 근서면 사곡리 (현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사곡리)[2] |
사망지 | 충청북도 괴산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연병룡은 1892년 6월 16일 충청도 청안현 근서면 사곡리(현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사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30일 김수백·이태갑(李泰甲)·신강면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청안장터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해 모인 3,000여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주재소와 우편소 주변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6명의 동지들과 함께 현장에서 피살되었다.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연병룡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9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