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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연파(燕頗) |
생몰년도 | 미상 |
관등 | 황룡부위장(거란) |
국가 | 거란 → 올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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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발해의 부흥운동가.2. 생애
본래 황룡부위장으로 거란의 벼슬을 지내다가 975년 7월 도감(都監) 장거(張琚)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황룡부는 발해시기에 옛 부여부였으나, 발해를 멸망시킨 후 이 지역을 차지한 거란은 황룡부로 이름을 바꾸었다.거란은 야율길리필을 보내 연파를 공격했다. 975년 9월 치하의 전투[1]에서 패배한 연파는 올야성으로 도피해 올야성을 지켰고 연파를 추격하던 안박은 회군하게 된다.
이후 981년 정안국의 왕 오현명이 송에 보낸 국서에서 부여부가 거란에 배반해 본국(정안국)으로 귀속되었다고 언급하는데 정황상 연파가 정안국에 의탁했거나 정안국의 세력이 연파의 세력까지 포괄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995년 올야의 오소도와 함께 철려(철리말갈)을 공격했고 요나라는 해왕 화삭노를 보내 이를 막게했다는 기록 이후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요나라 - 올야 전쟁 이후 올야의 지도자가 교체되고 요나라, 철리말갈과의 다툼에 밀리는데 연파 세력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995년 이후 ~ 11세기 초반 사이에 사망했거나 세력이 해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3. 기타
981년 오사성(烏舍城) 부유부(浮渝府)의 발해염부왕(渤海琰府王)이란 인물은 연파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있다.4. 같이보기
[1] 야율길리필 열전에서는 압록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