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3-29 12:09:47

염사치



廉斯鑡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원삼국시대의 인물. 진한의 우거수(右渠帥)였다가 낙랑군에 귀화했다고 한다.

염사치는 실제 인명이라기 보다는 '염사(廉斯)' 지역의 '수장(鑡)'이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2. 생애

정사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인용된 위략에 따르면 신나라 말기인 지황(地皇: 20년~23년) 연간에 낙랑이 살기좋다는 말을 듣고 낙랑군에 귀화하려 했다.

낙랑으로 가던 도중 호래(戶來)라는 한인(漢人)을 만났는데, 호래는 3년 전 벌목하기 위해 진한으로 왔다가 노예로 붙잡힌 1,500명의 한인 중 하나였다.

그는 호래를 데리고 낙랑군 함자현에 이르러 한인의 나포사실을 알렸고, 낙랑군은 그에게 포로를 쇄환하는 임무를 주었다. 염사치는 잠중(岑中)에서 큰 배를 타고 진한으로 왔고, 진한과 협상해서 노예로 붙잡힌 1,000명과 진한인 15,000명, 변한포(弁韓布) 5천필을 받아서 낙랑군으로 귀환했다. 낙랑군은 그의 공과 의를 표창하고 관책과 전택을 주었다고 한다.

3. 기타

그의 후손들은 쭉 낙랑군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125년 그의 후손은 선조의 공으로 부역을 면제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