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08:56:23

김영만(교수)

영맨(마리텔)에서 넘어옴
김영만
金永萬 | Kim Youn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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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출생 1950년 ([age(1950-12-31)] ~ [age(1950-01-01)]세)
경상남도 부산시 (現 부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 학사)
종교 개신교[1]
직업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원장
경력 한국미술연구학회 회장
조형아카데미 회장
종이문화재단의 이사
수원여자대학교 아동미술과 교수
마산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교수
팬덤 코딱지들
별명 한국의 밥로스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경력
2.1. 창작 스타일
3. 여담4. 마이 리틀 텔레비전 출연
4.1. MLT-074.2. MLT-084.3. MLT-09
5. 어록6. 관련 사건
6.1. 페이스북 대학생 사건6.2. 고급 외제차 소유 해프닝
7.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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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 종이문화재단의 이사 겸 수원여자대학교 아동미술과, 마산대학교[2] 아동놀이방송심리과 교수. 김충원 교수 등과 함께 1990년대 어린이들의 아침을 깨워 주던 친숙한 종이공작 선생님 '김영만 아저씨'로 유명한 인물이다. 미국에 미술 대중화를 이끈 밥 로스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종이접기 대중화를 이끈 김영만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코딱지 친구들!

2. 경력

한국 종이공작계의 선구자 거장으로서 종이공작을 대중에게 널리 보급한 인물이다.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그의 이름과 사진이 들어간 색종이 세트와 미술 문구류들이 나왔고 많이 팔렸다.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 출생자들에게는 학교에서 늘 사용하는 문구류와 색종이 등에 김영만의 얼굴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을 정도.

홍익대학교 도안과(현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대우실업(현 포스코인터내셔널)에 취직해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3] 퇴사 후 사업을 했다. 그러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일본으로 건너가 친구의 집에서 얹혀 살게 되었는데,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생소했던 종이접기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귀국, 종이접기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무직이였던 그는 부인과 장인에게 "종이접기 해 보면 안되겠냐" 라고 제안했고, "딱 1년간 해 보라"는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사립학교 특강에 나가면서 본격적으로 이 길에 뛰어들었고, 1988년 KBS의 아동 프로그램인 TV유치원 하나둘셋에 출연하며[4]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리게 되었다. 이후 뽀뽀뽀, 대교어린이TV의 '김영만의 미술나라', EBS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교육용 비디오 '김영만 선생님의 만들기 나라' 등에 출연하며 '김영만 선생님의 아트캠프' 등 각종 행사나 문화센터 등지에 특강을 수도없이 다니는 등 종이공작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사실 198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을 국딩~초딩 시절로 보낸 이들[5]이라면, 농구 팬이 아닌 이상 농구선수 김영만보다 이 인물이 훨씬 더 익숙할 것이다. 아동 프로그램에 출연 당시의 김영만의 인기는 요즘식 표현으로 '초통령'이라 칭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했고 그 파급력이 오래 지속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TV유치원 하나둘셋에서 월화수목은 다양한 코너로 진행하고 금요일은 인형극만 진행하면서 김영만의 출연이 없었다. 그러자 어린 시청자들은 금요일에 하나둘셋을 보는 걸 매우 지루하게 느끼고, 어서 월요일이 와서 김영만 아저씨가 진행하는 종이공작 코너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등엔 인기 연예인들을 초청, 특집 컨셉으로 하나둘셋을 진행하다 보면 김영만 아저씨 코너가 생략됐는데, 아이들은 다정한 목소리의 만들기 아저씨가 나오지 않자 다른 유명한 연예인도 안 보고 유치원에 갈 정도였다.

이후 방송국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에 저 사람은 너무 나이가 많은거 아니냐.'는 이유를 들어 그를 TV유치원 하나둘셋에서 하차시켰으나, 추후 KBS 2TV에서 편성했던 어린이 프로그램 혼자서도 잘해요 등에 다시 한 번 출연해 2000년대 초반까지 어린이 시청자와 함께 할 수 있었다.[6] 현재는 종이문화재단의 이사와 수원여자대학교 아동미술과 교수를 겸하고 있으며, 최근에도 종이접기 공작 DVD를 내놓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관성리에 "아트오뜨"라는 미술체험 학습장을 운영 중이다. 400번이 다니는 아우내장터 쪽에서 한참 북쪽에 있다.
파일:/image/025/2015/05/05/htm_201505050275030103011_99_20150505084103.jpg파일:external/file.mk.co.kr/image_readtop_2015_667154_14367025212023327.jpg
리즈 시절
참고로 위의 리즈 시절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인기와 별개로, 수수한 차림새 때문에 역경을 딛고 열정으로 종이공작 장인이 된 뒷이야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더라. 그러나 사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서울예고 - 홍익대 미대 코스를 밟은 엘리트 미술인이다.[7] 오죽하면 종이공작 관련 사업에 나서게 되자, 그의 대학 동기들이 "학교 망신이다."란 소리를 했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거장이 된 지금을 생각하면, 역시 미래는 모르는 일이다.

2.1. 창작 스타일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려고 하고 만드는 법도 최대한 단순하게 하려는 스타일 종이공작 시의 깨알같은 팁과 현란한 가위질 등 자잘하지만 절묘한 스킬 등도 수준이 높다. 이러한 스타일은 만들고자 하는 3차원의 사물을 평면도형화시키는 unwrap uvw를 전개하여 접선을 미리 정해놓은 다음 접는 현대의 주류 종이접기 창작가들과는 대조적이며 꾸준한 연구와 함께 다년간의 필드 경험이 없다면 절대 이를 수 없다. 어쩌면 너무 복잡하게 접으면 아이들의 눈이 나빠질테니 아이들을 배려하는 것일지도..?

3. 여담

  • 2014년 김치 전사 감독 강영만과 성만 다르고 이름이 같아서 김치 전사 감독으로 오인된 적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강영만 감독도 같은 홍익대학교 미대 출신이다. 물론 대중들의 평가는 '종이로 만물을 창조하는 금손'과,'세금으로 쓰레기를 만든 세금도둑'[8]으로 극과 극이다.
  • 마리텔 출연 전까지는 네이버 인물정보에 아예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 때문에 네이버에 '김영만' 으로 검색하면 첫번째로 나오는 1951년생 아동문학가가 종이접기 김영만인줄 알고 정보를 올리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출연 이후 '예술 기관 단체인'으로 등록해 놓았다.
  • 김영만이 사용하는 가위는 방송을 처음 시작한 이래로 30년 동안 사용한 가위이다. 오랫동안 썼는데도 불구하고 낡지도 않고 전혀 오래돼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마리텔에서도 여전히 사용중이고 섬세한 가위질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본인이 정말 소중하게 다룬다고 하고, 일명 1988년생 가위라고 부른다.
  • KBS 예능국 소속의 최재형 PD[9]가 그의 처남이다. 최재형 PD의 둘째 누나의 남편이 바로 김영만. 즉 김영만의 장인은 곧 최재형의 부친인 셈.
  • 고래밥과 콜라보해서 각종 어류의 종이공작을 설계하여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 2016년 1 대 100 426회 후반전 방송분에서 1인으로 출연했으며 5,000만원을 받게 된다면 이 돈으로 색종이를 산다고 밝혔다. 이날 4단계에서 77명 중 12명만 맞힌 동요 문제를 쉽게 넘겼고 5단계 오로라의 원리 문제[10]에서 1인의 답 사용으로 위기를 넘겼으며 8단계에서 최후의 2인과 대결을 펼쳤다.(여기서 496만원을 받아가는 우승자 결정, 참고로 가수 아스트로 멤버인 차은우도 포함.[11]) 인터뷰에서는 과거에 친구가 갚은 10만원 수표를 접은 후 찢다가 날린 사연을 이야기했으며 이때는 종이접기 버릇 때문이라고 밝혔다.[12] 또한 분교에서 종이접기 특강을 무료로 하려고 했으나 주민들의 오해로 인한 반발로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 맥심 2016년 12월 호의 표지 모델로 선정되었다. 미스맥심 엄상미의 사진을 흐뭇한 표정으로 오려 들고있는 모습을 연출하며 큰 웃음을 선사했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성인이 된 코딱지들을 확인하러 맥심까지 오셨나 했다고...

4. 마이 리틀 텔레비전 출연

4.1. MLT-07

파일:마이 리틀 텔레비전 로고.svg 파일:MBC 로고.svg 마이 리틀 텔레비전 역대 우승자
<rowcolor=#000> MLT-06 MLT-07 MLT-08 ~ 09
No. 004
백주부 (골드)
No. 019
영맨
No. 017
일루셔니스트EG
백종원 김영만 이은결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이 확정되어 2015년 7월 12일 촬영. 사실 팬덤 쪽에서 한 번 나와 줬으면 하는 인물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었는데 그게 실현되었다. 뛰어난 진행 실력과 적절한 유머 및 소통으로 추억의 영만 아저씨를 기억하는 20~30대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전반전 인간계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는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순위 확인 후 눈물짓는 모습.[13]

그리고 이어서 시작된 2부에서는 백주부 방이 총 8만명까지 입장가능한 것에 비해 김영만의 방은 무려 12만명까지 입장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마리텔 시청자들은 김영만이 인간계가 아니라 정말로 우승할 것 같다는 추측을 하였다. 그리고 그 예상이 맞아 떨어지면서 실제로 우승했다.

여기에선 시청자가 일반 복장이 아닌 병아리 색상의 유치원 복장으로 나왔다.

시청자의 대부분은 어릴 적에 김영만이 나왔던 종이접기 프로나 TV 유치원 같은 TV 프로에 대한 향수와 근황이 궁금했던지라 모인 것이고, 추억하며, 다시금 어린이의 마음을 느꼈다는 평가가 많다. 그 와중에 황달 드립에 크게 반응하는 바람에 실검에 황달이 3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금손은 실검 2위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많은 커뮤니티와 SNS에 작품을 따라 만든 것을 올린 시청자 인증샷들이 등장했다.

방송 도우미를 맡았던 여성 작가는 뽀미 언니에서 착안한 뽀미 작가 / 팟미 언니라고도 불렸다. 귀염상인 데다, 김영만이 작품을 만들 때마다 순수한 눈으로 쳐다보고 반응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확 끌어올렸다. 본방 1주차에서는 기뻐서 눈물 흘리는 김영만에게 생글거리며 박수치는 모습만 나와서 통편집인줄 알았으나 2주차에선 처음 소개받는 모습부터 시간을 돌려서 제대로 나온다.

마리텔 방영 여파로 '종이나라'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으며, 심지어는 종이나라 홈페이지 계정이 막히기까지 했다. 몇몇 사람들에게서 종이나라 주식을 사겠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종이나라는 비상장기업이다.이후 종이나라는 홈페이지에 김영만의 마리텔 방송 일정과 색종이 쇼핑몰을 재빠르게 정리해 올렸다. 종이나라 홈페이지 또한 종이나라에서는 1995년에 나온 김영만 만들기나라를 복각해서 레트로 패키지라는 이름 하에 한정판으로 재출시했다.

본방 채팅방도 이례적으로 다른 채팅방에 비해 깨끗했다고 한다. 각종 커뮤니티가 종이접기 아저씨를 지켜 드려야 한다.는 대의 아래 하나로 뭉쳤고[14],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동심에 찬 모습이었다는 훈훈한 미담이 들려온다. 촬영 분위기도 매우 훈훈했다고 하는데, 일례로 자신의 딸뻘도 안 되는 어린 스탭들에게 배꼽인사까지 하며 감사를 표하는 걸 보면 타고난 인품 자체가 매우 선량한 듯.

또한 마리텔에 출연하며 다양한 별명도 얻고 있는 중. 뇌색남, 페이퍼 센빠이, 페이퍼 센쎄 등등. 뇌색남(뇌까지 색종이인 남자)이란 별명은 원래 전부터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널리 알려지고 있다.

이 방송을 통해서 숨은 인연이 공개되었는데, 바로 배우 신세경과의 인연이었다. 그걸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어보자 자신도 그때 말을 참 잘 들어 주던 신세경이 기억난다고 했고, 거기에 신세경김영만의 미술나라에 출연하던 당시, 김영만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리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리고 MLT-08편에 직접 저 사진의 복장을 입고 출연했다.

김영만이 화제가 되자 KBS에서는 네이버TV에 KBS Kid라는 채널을 만들어서 그가 출연했던 TV유치원 하나둘셋의 종이접기 영상을 몇 개 업로드하였다.

마침내 7월 25일 방영된 MLT-07에서 2%차이로 백주부를 누르고 우승자가 되었다. 백종원, 김영만 1위에 광대폭발...왕좌 넘겼다 이때 과장된 효과나 자막을 넣지 않은 연출이 호평을 받았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 백종원은 마리텔에서는 절대 강자로 통하고 MLT-04 때에는 50%가 넘는 시청자를 백주부 채널에서 혼자 독식한 적도 있다. 나중에 백종원이 마리텔에 돌아왔을 때에도 많은 언론들이 왕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마리텔에 관련해서는 끝판 대마왕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이 한번이 마리텔에서 백종원의 유일한 우승 실패이다. 이 방송에서 유일한 전회 출연자 레귤러인 김구라의 표현을 따르면 방송 초창기에는 백주부 채널 한번 이기는 게 그의 소원이였고 나중에 그의 독주가 확실시 되자 김구라의 소원은 다른 모든 게스트들이 힘을 합쳐서 백주부 채널의 50% 이하의 독주 방지로 소원이 바뀌었다.

4.2. MLT-08

김영만, '마리텔' 전반전 1위…신세경·뚝딱이 '환호'

두번째 출연에서 깜짝 게스트로 신세경이 출연했고 이어 뚝딱이가 등장하며 올스타전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반전에서 1위를 지켰지만 후반에는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는 것과 동시에 신세경이 빠지면서 이은결에 이어 2위로 마감하였다.

4.3. MLT-09

지난번에 출연한 뚝딱이가 다시 등장한 걸로 보아서는 고정 출연이 확정된 듯 하며, 중간중간 분량 욕심에 깨알같은 드립들을 쳐주고 소통을 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뚝딱이가 미스 마리테의 선배란 것이 밝혀졌다.[15]

전반전 도중에 게스트로 신화김동완이 출연하여 종이접기를 옆에서 같이 따라하였다. 그리고 잠시동안 전 출연진이 동요에 맞춰 춤을 추며 동심으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청자의 동심은 파괴

후반전에서는 평소와는 약간 다르게 골판지와 물감을 이용한 만들기가 주가 되었다. 초반부와 중간부의 은근슬쩍 이은결 극딜과 뚝딱이의 박식하면서도 동심을 깨버리는 드립들도 어우러졌다.

뚝딱이를 김구라 방에 보냈다고 말해서 낚인 시청자들이 김구라 방에 들어와 뚝딱이를 찾는 시청자들이 생겼었다.

아쉽게도 엎치락뒤치락하였던 접전 속에서 전반전은 4위와 근소한 차이로 5위로[16] 마감하여 지난번 출연 때보다 순위가 떨어졌고 후반전 내내 황재근에 이어 4위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방송 마지막에 뚝딱이 인형 조종 담당 작가와 담당 성우를 소개하더니, 뭔가 마지막인 거 같은 클로징 멘트를 남긴 것 때문에 혹시 이번 방송을 끝으로 마리텔에서 하차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결국 이 방송을 끝으로 하차하면서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을 몸소 실천한 듯. 그리고 그의 역할은 김충원이 바통을 이어받게 되었다.

5. 어록

어린이 친구들, 이거 보세요. 정말 재미있는 모양이 됐죠?

'재미있는 모양'은 당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들조차 외우고 있었을 정도로 그의 종이공작 전매특허 멘트. 종이공작 하는 중간중간 접기 동작이 나오고 나면 그 직후 종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했던 말인데, 주로 펼쳐눌러 접기나 미세한 부분을 어렵게 접는 경우 같은, 어린이가 제대로 하기에 난이도 있는 접기동작 직후에 했다. 어려운 접기 동작을 보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어린이들에게 '성공하면 이렇게 재미있는 모양을 볼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했던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생방송에서도 "재미있는 모양이에요", "자, 재미있는 모양이다!"라고 하며 다시 여러번 사용한 멘트.
아저씨는 미리 준비해 왔어요.

밥 로스의 "참 쉽죠?"와 비견할 만한 능욕 명언(?). 방송관계상 짧은 시간 내에 완성품을 보여주기 위해, 대개는 같은 것을 여러 개 만드는 반복작업을 생략할 때 나온 말이다. 그러나 삽시간에 제작 과정을 훌쩍 건너뛰어 버리기 때문에, 텔레비전 앞에서 열심히 따라하던 어린이들로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면서 밥상 뒤엎기 멘붕하기 딱 좋은 한마디였다[17]. 2015년 7월 12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 생방송에서도 시연해보였는데, 현장의 스태프들은 웃음보가 터졌고 채팅창에서는 시청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18] 본인도 이 말을 할 때마다 웃기단다. 이유는 위의 "참 쉽죠?"와 같다고.
손톱만큼 잘라주세요(풀을 발라주세요, 접어주세요).

TV에서 볼때 얼마나 잘라야 하는지 얼마나 발라야 하는지 잘 알 수 없기에 "손톱만큼~" 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서 기준을 잡아주었다. 마리텔 방송 에서는 "1cm만큼 잘라주세요. 하면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라며, 손톱만큼 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말을 하였다.
예전엔 여러분들이 어려워하는 게 많았는데, 이젠 어른이 되었으니 쉬울 거예요~ 영상
여러분들 어렸을 땐 코 파랗게 하고 눈 빨갛게 해도 아무런 말이 없었는데...
여러분들 이제 다 컸구나, 어른이 됐네... 영상
시청자의 황달 드립을 보면서.
김영만: 어려우면 엄마한테 부탁하세요~
시청자: 엄마가 환갑이신데요?
김영만: 엄마 방에 들어가 환갑이신 어머니께 테이프 좀 붙여주세요 해보세요~ 얼마나 좋아하시겠어요.
시청자2: 제가 엄마인데요
어린이 여러분, 정말 잘 자라 주었어요.

6. 관련 사건

마리텔 출연으로 인기가 오르자 작은 논란이 있었지만 그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으로 결론났다.

6.1. 페이스북 대학생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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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아저씨가 사람들에게 반응이 좋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페이스북에서 수원여대 학생 2명이 김영만 아저씨에 대해서 비난하기 시작했다. 발단은 김영만 교수에게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김영만 교수에 대한 안 좋은 소리를 들었던 지인들 중 한 사람이 방송을 보고 좋은 사람 같은데 왜 그러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실제 수업을 들었던 수원여대 학생 2명은 김영만 씨가 방송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내용이 골자이다.

비난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교수님을 '영만'이라고 그냥 이름으로만 칭하며 반말은 기본이며 교수에 대한 예의는 전혀 없고,
  2. 김영만 아저씨가 자신을 성희롱했다는 말까지 했으며,
  3. 자신들이 만든 것을 '쓰레기'라고 하며 직접 버리라고 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일은 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게시물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졌으나 당시 커뮤니티 대통합이 일어난 상태라 사람들은 이것의 진위를 빠르게 판단하고 근거를 모으기 시작했고 사건은 해결되었다.

성희롱 건은 처음에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사람들이 해당 글을 캡처하며 퍼가기 시작하자 원 글쓴이가 갑자기 해당 글을 지우면서 캡처한 사람들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저질렀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확인이 불가능하니 사실은 알 수 없지만 애초에 그런 거 없었기에 저랬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 일단 다수의 여론. 쓰레기 발언에 대해서 다른 수원여대 학생들이 말하길, "보나마나 집에 가져가면 집에 굴러 다니다가 쓰레기 될 것이 분명하니 가져가서 손으로 버리지 말고 사진만 찍고서 여기서 버리고 가라"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교수님이 매 수업시간마다 항상 하는 얘기라 다 기억하고 있는데 저걸 어떻게 저렇게 전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라고 했다.

여기서부터는 어디까지나 지인이라는 사람의 말과 정황을 바탕으로 한 제3자의 추측의 영역이지만 이후 저들을 안다는 이들이 등장해서 '저 학생들이 영만 아저씨께 받은 학점이 심히 안 좋았다며 그것 때문에 저러는 것 같다'라고 하였다. 대학의 평가 기준은 대부분 상대평가이며, 절대평가인 경우는 P/F 과목 등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고 드물다. 물론 상대평가로 줄세우기 당해 피해를 본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을 수 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상대평가라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이지, 김영만 교수가 개인으로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교수 재량으로 상대평가/절대평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러므로 교수가 모든 학생에게 고르게 점수를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으며, 결국 조금이라도 더 잘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성적이 낮은 것은 자신이 노력을 덜 했거나 운이 없었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등인데, 노력을 덜 했을 경우 혹은 운이 나빴던 경우는 당연히 김영만 교수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말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설령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 하더라도 성적을 잘 안 줬다고 성적 문제와는 관련이 없는 인신공격에다가 사실도 아닌 내용을 SNS에 올린 것은 철없는 대학생들의 잘못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성적을 받은 직후에 저랬다면 또 모르지만 이제껏 잠잠하게 있다가 김영만이 이슈를 모으자 갑자기 공공연히 악담을 퍼붓는 것이라면...

6.2. 고급 외제차 소유 해프닝

마이 리틀 텔레비전 방영분에 김영만이 차를 운전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때 차량이 고가의 고급 외제차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부 네티즌으로부터 비난을 샀다.[19] 타고 다니는 차량은 프리미엄 브랜드인 재규어의 플래그십 모델인 XJ다.[20] XJ는 재규어 중에서도 최고급 차량인만큼 시가 1~2억의 상당한 고가의 차량이다. 이에 김영만이 비싼 차량을 끌고 다닌다고 배신감을 느낀다는 글이 SNS상에서 간혹 보이기 시작했으나, 이에 대해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전국을 돌면서 노력하고 한가지 분야에서 최정상급까지 올라간 사람이 저 정도 차도 못 타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니냐는 반론이 대다수.

'마리텔' 김영만 고급 외제차 논란에 입열다
김영만, 고급 외제차 논란에 대한 입장은? "스트레스 받거나 후회하지 않아…"

기사 내용을 정리하면 미국 이민을 가기 위해 차를 처분하려던 친구를 돕기 위해 X351형 XJ를 중고로 3천만원 정도에 샀는데, 그 이전에 타던 국산 고급 세단인 현대 제네시스를 처분하고 그 돈으로 샀고, 재규어 XJ 신차의 가격은 중고차를 구입한 후에 알았다고 한다. 애당초 친구를 돕기 위해 좋은 의도에서 산 것인 셈. 또한 중고차 시장에서 재규어는 독일 3사 브랜드 차량보다 중고차량 감가율이 꽤 있는 브랜드이며 대형차의 중고차 감가율도 크다. 보배드림에 올라간 X350, X358, X351형 재규어 XJ 중 가격이 등록된 것의 매물만 봐도 구형인 X350/X358형 기준으로 주행거리가 16만 5천 km인 재규어 XJ X350이 1,600만원이다. 또한 X351만 해도 최하 4,500만 원이다.[21] 병천의 작업실에서 서울 등지를 오가는데, XJ가 잔고장이 좀 있다고 한다.[22]

또 그중 일부는 동심으로 접했던 인물이 고급 외제차를 운전하는 모습에 괴리감을 느낀다고 하기도 했는데, SNS와 넷상에서 저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종이접기로 열심히 일하고 다니는 자기보다 좋은 차량을 타고 다니는 것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다. 몇몇 네티즌들은 마치 지금까지 변변찮은 수입이 없어 얼마 못 버는 종이접기 교수가 마리텔에 출연 이후, 우리들에게 추억팔이해서 번 돈으로 차량을 구입한 것처럼 내용을 써 놓기도 하는데, 재규어 XJ 차량은 마리텔 출연 이전에 구입한 차량이다. 설령 마리텔로 인기를 얻은 후에 비싼 차를 샀다고 해도, 정당하게 번 돈으로 차량을 산 것은 결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김영만 교수의 경우에는 수십 년씩이나 한 분야에 종사하면서 최고 권위자인 교수 자리에까지 등극한 사람치고는 아이들과 시청자를 격의 없이 대하는 소탈한 인품만큼이나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종이접기 하는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일해도 고급차 살 돈을 벌면 안된다는 우리 사회의 사고방식이 예술계 종사자를 열정페이에 의한 저임금에 시달리게 만드는 원흉인 것이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백종원이 쉬운 레시피로 선풍적 인기를 모으자 '집밥이 아니고 식당밥이다, 선생이 아니고 사업가다', '그냥 음식하는 사람이다" 라는 등의 온갖 논란에 휘말리게 된 것과 비슷한 수순으로 김영만 역시 고작 마리텔 방영 한 회만에 자신의 잘못과는 무관하게 서술했던 페북 논란과 자가용 논란까지 벌어지는 셈이어서 오랜만의 방송 출연이 득보다 실이 많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3화만에 방송 출연을 마치고 박수칠 때 떠난 것이 오히려 잘 한 일이라고 인터넷 여론이 오히려 격려 일색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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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독교 방송의 간증 프로그램인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한 적이 있다.#[2] 20년째 재임중이라고 한다.[3] 2009년도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졸업 후 대우전자 광고 선전실에서 일했다고 하지만, 5년 만에 나왔다고 한다.[4] 이전에는 유아미술학자 이인태 교수가 진행하는 미술교육 코너가 있었다.[5] 1970년대 후반 생부터 1990년대 중반 생까지. 좁게 잡으면 1982~1991년생. 사실 1990년대 초중반 생들은 만들기 아저씨보단 불어펜 아저씨라고 해야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6]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제시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돈 때문이다. 제작하는데 돈이 많이 드는 어린이 프로그램보다, 수입한 유아용 애니메이션 몇개로 때우는 게 돈이 덜 들었기 때문이다.[7] 다만, 기사에도 나와 있듯이 대학에 들어갈 즈음에 집안이 기울어서 스스로 학비를 충당했고, 일본 유학 시절에는 운전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역경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8] 이후 강영만이 해명하면서 먹튀라는 평가가 와전된 소문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자세한 것은 강영만의 반전 항목 참조.[9] 성우 장정진의 죽음의 원인 제공자이자, 1박 2일 시즌2의 막장화의 원흉인 최재형 맞다.[10] 코어, 솔라빔, 플라즈마였으며 정답은 플라즈마. 여기서 솔라빔은 포켓몬스터 기술 이름이 아니라 태양광선을 의미한다.[11] 같은 녹화분인 황정민 편에서 김영만 편 최후의 1인과 차은우는 각각 6, 5단계까지 생존했다.[12] 그 외에도 큰 목소리로 말하는 버릇으로 인해 동창회에서 기피(?)한다고 한다.[13] 이때 1위를 해서 기쁜게 아니라 당시 어린 친구들이 커서 자신을 기억해주는게 고마워서 눈물이났다고 밝혔다.[14] 백종원의 일시 하차 소식을 들은 몇몇은 임시로 수사대를 결성하여 "만일 김영만 선생님 방송하는 데 채팅창에 악플을 다는 사람이 있을 경우 신상을 모두 밝혀내어, 사회에서 생매장 시킬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후술할 페이스북 대학생 사건의 경우, 이 임시 수사대에 의해 신상명세가 모조리 털렸으나 단지 김영만 선생님에게 누를 끼칠까봐 잠적하고 있었을 정도다.[15] 서유리는 뚝딱이 담당 성우인 김기철에게는 10년 이상 차이 후배다.[16] 방송을 보면 오세득 셰프는 10,432명, 그는 이보다 2명 적어서 5위를 했다.[17] 예를 들어, 어지간히 손이 빠르고 손재주가 좋은 아이가 아니라면 김영만이 보여주는 시범을 제 시간에 따라하기는 쉽지 않았다. TV에서는 1~2단계를 넘어 3단계, 4단계까지 진행되고 있는데 그걸 보고 따라하는 아이는 겨우 2단계쯤 진행하고 있는 것. 그래도 여기까지는 3단계와 4단계의 동작을 머릿속에 기억해두고 열심히 히면 곧 따라잡을 수 있을거라는 헛된 희망을 가져보지만 같은 동작이 반복되는 5단계에서 "아저씨는 미리 준비해 왔어요~" 가 나와버리면 아이는 자신이 오늘 방송 진행중에 아저씨와 같은 작품을 완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18] 당시 채팅으로는 "저 또 시작이다" 라고 올라왔다.[19] 사실 무슨 차를 타든 진짜 큰 잘못을 저지르거나 남의 돈으로 사기를 쳐서 산 것이 아니라면 논란이 될 문제도 아니다.[20] 그것도 현재 팔리는 X351형이다.[21] 주행거리가 길고 같은 차량이라 해도 연식이 오래된 쪽이 더 싸게 나온다. 만일 중고차인데, 가격이 좀 높다면 주행거리와 연식, 사고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22] 실제로 재규어 자동차는 성능은 좋은데 고장이 자주 일어나기로 악명이 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