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0 18:50:13

오르도뉴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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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투리아스 왕조
펠라요 파빌라 알폰수 1세 프루엘라 1세 아우렐리우
아스투리아스 왕조
실루 마우레가투 베르무두 1세 알폰수 2세 네포시아누
아스투리아스 왕조 레온 국왕 →
라미루 1세 오르도뉴 1세 알폰수 3세 프루엘라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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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르도뉴 1세.jpg
Ordoño I de Asturias
가문 아스투리아스 왕조
생몰년도 821년 ~ 866년 5월 27일
출생지 아스투리아스 왕국 오비에도
사망지 아스투리아스 왕국 오비에도
재위
기간
아스투리아스 왕국 국왕 850년 - 866년
아버지 라미루 1세
어머니 우라카
이복 형제 가르시아, 알돈자
배우자 무니아 또는 누냐
자녀 알폰수 3세, 베르무두, 오도아리오, 프루엘라, 누뇨 오도녜즈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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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스투리아스 왕국 12대 국왕.

2. 생애

821년경 아스투리아스 11대 국왕 라미루 1세와 우라카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복 형제로 가르시아, 알돈자가 있었다. 초창기엔 알폰수 2세의 궁정에서 지냈고, 9살에 아버지가 총독으로 임명된 갈리시아로 이주했다. 842년 아버지가 네포시아누를 무찌르고 아스투리아스 국왕이 된 뒤 갈리시아 총독으로 선임되었고, 850년 2월 1일 아버지가 죽기 전에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아스투리아스 왕국 역사상 처음으로 귀족들의 지명이 아닌 상속으로서 왕위에 올랐다.

이 무렵, 라 리오하와 사라고사 사이에 있는 에브로 계곡을 지배하던 비누 카시 족장 무사 이븐 무사 알 카사위(موسى بن موسى القسوي)는 이복형제인 팜플로나의 국왕 에네코 아리차와 동맹을 맺고 후우마이야 왕조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이 후우마이야 왕조와 대적할 때 이웃 국가인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빈틈을 노릴 것을 우려해 그들을 약화시키로 했다.

850년, 아스투리아스 왕국에 살고 있던 바스크인들이 무사 이븐 무사의 사주를 받고 반란을 일으켰다. 오르도뉴 1세는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뒤 오비에도로 귀환하다가 무사 이븐 무사의 군대가 바르둘리아를 공격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자 즉시 군대를 돌려 에브로 강둑에서 그들을 물리쳤다. 그러나 852년 무사 이븐 무사의 또다른 공세를 막으려 했다가 알베다 전투에서 패배했고, 무사 이븐 무사가 라 리오하의 거의 모든 영토를 통제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859년 무사 이븐 무사 알 카사위가 알 벨다를 빼앗은 뒤 요새화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오르도뉴 1세는 팜플로나 국왕 가르체아 에네코이츠와 동맹을 맺고 알벨다로 진군했다. 이리하여 벌어진 제2차 알벨다 전투는 아스투리아스-팜플로나 연합군의 대승으로 종결되었고, 아브로 강 계곡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랍 군주였던 알 카사위는 이 패전의 여파로 쇠락했다. 이후 오르도뉴 1세는 한 세기 동안 버려졌던 두에로 강과 칸타브리아 산맥 사이의 '두에로 사막'에 주민들을 이주시켜서 재개발을 단행했고, 레온, 아스토르가, 아미야, 및 투이 등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들을 재건하고 주민들을 그곳에 이주시켰다.

860년, 후우마이야 왕조 아미르 무함마드 1세는 무사 이븐 무사 알 카사위가 약해진 틈을 타 그를 왈리에서 해임하고 친히 군대를 이끌고 북상해 바누 카시를 재복속시켰다. 뒤이어 팜플로나 왕국으로 쳐들어가 팜플로나를 약탈하고 왕자 오르티 가르세이츠를 사로잡아 코르도바로 개선했다. 이리하여 팜플로나 왕국을 복속시킨 무함마드 1세는 865년 장남 알 문디르를 사령관으로 세워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공격하게 했다. 알 문디르는 두에로 협곡으로 진격했지만 오르도뉴 1세가 전투를 회피하며 별 소득을 보지 못하였다. 다만 코르도바로 귀환하던 중 부르고스에서 카스티야 백작 로드리고를 모르쿠에라 무찌르고 후우마이야 왕조의 봉신으로 삼았다.

866년, 오르도뉴 1세는 일전의 침략에 보복하기 위해 리스본 쪽으로 군대를 보냈다. 그들은 신트라를 불태우고 타구스 일대를 약탈한 뒤 귀환했다. 또한 100척의 전선이 리스본, 세비야, 카디즈 일대를 해상에서 습격해 약탈했다. 무함마드 1세는 이에 맞서 베르베르 기병대를 파견해 갈리시아 국경 지대를 황폐화시켰다.

866년 5월 27일, 오르도뉴 1세는 통풍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 그에게는 무니아 또는 누냐라는 이름의 아내가 있었으며, 알폰수 3세, 베르무두, 오도아리오, 프루엘라, 누뇨 오도녜즈를 낳았다. 그가 사망한 후 장남 알폰수 3세가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