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로 토뇬의 감독직 및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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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 ||||
42대 |
AC 밀란 주장 | ||||
카를로 안노바치 (1952~1953) | ▶ | 오메로 토뇬 (1953~1954) | ▶ | 군나르 노르달 (1954~1956) |
이름 | 오메로 토뇬 (Omero Tognon) |
생년월일 | 1924년 3월 3일 |
사망년월일 | 1990년 8월 23일 (향년 66세) |
국적 | 이탈리아 |
출신지 | 이탈리아 왕국 파도바 |
포지션 | 하프백 |
신체조건 | 168cm | 60kg |
소속팀 | AC 밀란 (1945-1956) 포르데노네 칼초 (1956-1957) |
국가대표 | 14경기 (1949-1954) |
감독 | 칼초 산도나 (1961-1962) 엘라스 베로나 FC (1965-1967) SS 아레초 (1967-1970) 라벤나 FC 1913 (1970-1971) SC 피사 (1971) FC 크로토네 (1972-1973) 클로디아 소토마리나 (1973-1974) 키에티 FC 1922 (1975-1976) 사보나 FBC (1976-19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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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토뇬은 AC 밀란에서 거의 모든 커리어를 보냈고 1953-54 시즌에는 팀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2] 그는 밀란에서 1947-48 시즌부터 1951-52 시즌까지 지속된 155경기 연속 출전 기록을 갖고 있으며 2회의 스쿠데토를 얻었다.토뇬의 선수 생활 초기에는 그란데 토리노의 위세에 밀려 우승권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수페르가의 비극 이후 세리에 A는 절대강자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팀 중 하나가 AC 밀란이었다. 토뇬이 첫 스쿠데토를 얻었던 1950-51 시즌 당시의 밀란은 38경기에서 107골을 넣은 최다 득점팀[3]이자 39골 실점의 최소 실점팀이었다.
1954년 이후 토뇬은 부상으로 밀란에서의 입지가 줄었고 1955-56 시즌의 스쿠데토를 끝으로 밀란과 이별하게 되었다.
2.1.2. 국가대표
토뇬은 1950년과 1954년, 2차례 FIFA 월드컵에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출전했다.토뇬은 1950년 월드컵에서는 출전 기회가 없었지만 1954년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의 3경기에 모두 뛰었다.
2.2. 감독
토뇬은 선수 은퇴 이후 주로 세리에 B나 세리에 C 무대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토뇬의 감독 생활 중 주요 경력으로는 엘라스 베로나 FC와 SS 아레초의 세리에 B 승격이 있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토뇬은 체구는 다소 작았지만 강한 몸싸움과 결단력, 역동성을 바탕으로 중앙 하프와 윙 하프로 뛰었다. 그는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탄탄한 발놀림이 있었기 때문에 하프백 라인에서 공격을 전개하는 데에도 재능이 있었다. 또한 토뇬은 수비수임에도 퇴장을 당한 적이 없었다.4. 수상
4.1. 선수
4.1.1. 클럽
4.2. 감독
4.2.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1954년 이후에 그는 부상으로 군나르 노르달에게 주장자리를 넘겨줬다.[3] AC 밀란의 영원한 라이벌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와 시즌 득점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