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00:35:23

앙카라스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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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스포르
Ankaraspor
<colbgcolor=#00539f><colcolor=#fff> 정식 명칭 Ankaraspor Kulübü
창단 1978년 3월 21일 ([age(1978-03-21)]주년)[1]
소속 리그 TFF 2. 리그 (TFF 2. Lig)
연고지 앙카라 (Ankara)
홈구장 오스만르 스타디움 (Osmanlı Stadyumu)
19,626명 수용
구단주 메흐메트 에민 카티폴루 (Mehmet Emin Katipoğlu)
감독 메흐메트 아크 (Mehmet Ak)
공식 웹사이트 파일:Ankaraspor_logo.pn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오스만르스포르 시절과 기행들4. 리그 소속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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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www.sporize.com/osmanl%C4%B1sporaa.jpg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를 연고로 하는 구단. 1978년 앙카라 벨레디예스포르라는 이름으로 창단했으며, 이후 앙카라 뷰육셰히르 벨레디예스포르, 뷔위크셰히르 벨레디예 앙카라스포르[2]로 바뀌었다가, 2014-15 시즌부터 오스만르스포르라는 이름과 현재의 팀 색깔, 별명(오스만사람들)[3]으로 바꿨다. 그러다가 2020년 9월 8일부터 다시 앙카라스포르로 이름을 되돌렸다.

2. 역사

파일:external/3b90599fafb199fa858514b9a087f56f01640d2a6470a7b4e0d5a0259bc6b35f.jpg
오스만르스포르로 개명하기 이전의 앙카라스포르 시절 팀 로고.

1978년 창단, 리그 참여뒤 한동안 하위리그에서 놀던 구단이지만 2004년에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승격에 성공하고 승격 첫 시즌인 2004-05 시즌에 7위를 기록하여 UEFA 인터토토컵에도 나가보는등 돌풍을 일으킨다.[4] 이후 각각 14위-8위-10위-10위를 기록하는등 중위권 클럽으로서 기반과 기존 겐츨레르비를리이, MKE 앙카라귀쥐에 이은 앙카라 3번째 클럽으로의 자리를 잡아가나 싶더니...

2009-10 시즌 진행 도중 갑자기 리그 퇴출을 당하고말았다.

이유는 당시 같은 앙카라시에 연고를 둔 앙카라귀쥐와의 관계였는데 이 당시 앙카라스포르 구단주인 아흐멧 괵첵이 앙카라귀쥐 구단 지분까지 매입하면서 앙카라스포르-앙카라귀쥐 양팀의 구단주자리에 오르는 상황이 나오고 말았고 튀르키예 축구협회는 이걸 페어플레이 위반으로 보고 앙카라스포르를 강제 강등과 동시에 리그 전경기를 0-3 몰수처리를 한 것. 여기에다 2010-11 시즌부터 약 3시즌 가량 출전금지와 앙카라스포르 경영진들의 자격정지까지 얻어맞고 말았다.

어쨌든 쉬페르리그에서도 퇴출당하고 1.리그에서도 3시즌 출전정지기간이 지나서 2013-14 시즌에야 다시 돌아왔는데, 돌아오자마자 그동안 참가 못한 화풀이를 하듯이 1.리그를 씹어먹으며 1, 2위를 유지하며 승격할 기미를 보이다가 막판부진으로 승격 플레이오프 존으로 떨어지고, 거기서조차 승격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삼순스포르에게 1,2차전합계 1-2로 아쉽게 지며 승격라인에서 탈락한다.
파일:오스만르스포르 FK 로고.svg
오스만르스포르 시절 로고

그리고 2014-15 시즌부터 팀이름을 오스만르스포르로 바꾸고만다. 그리고 바꾼 첫해 1.리그 2위를 기록하며 2015-16 시즌 쉬페르리그 참여에 성공. 지난날 강제퇴출의 굴욕을 갚을 기회가 왔다. 그리고 승격 첫해 5위를 차지하며 약 10여년만에 유로파리그 예선 2라운드에 진출한다. 2016-2017 유로파리그 예선 2라운드, 3라운드를 내리 이겨놓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덴마크의 FC 미트윌란을 원정에서 1-0, 홈에서 2-0으로 이기며 조별본선에 진출했다.

조별 본선 1차전에서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를 홈에서 2-0으로 이겼으나 스위스 FC 취리히 원정은 1-2로 패하면서 3차전 비야 레알 경긴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 사실 쉬페르리그 팀이 프리메라리가 팀에게 꽤 약한 편이기에. 그런데, 비야레알 CF 원정을 2-1로 이기며 조 1위로 32강에 올랐다. 32강 상대는 올림피아코스 FC. 그리스 최대 인기팀이랑 제대로 만난 셈이다. 1차전 원정에서 0-0으로 비겼다. 그러나 2차전 홈경기에서 0-3으로 그리스 챔피언에게 패하며 탈락했다.

이후 2018~19 리그에 2부 리그로 강등되었고 앙카라스포르 시절 서포터들 반발로 2020년 9월 8일부로 다시 이름을 앙카라스포르로 되돌리고 로고도 새롭게 바꿨다. 20~21 시즌은 2부리그 17위로 3부리그 강등권으로 추락하고 있다.

3. 오스만르스포르 시절과 기행들

파일:external/fotocdncube.fanatik.com.tr/fft104mm3036306.jpg
예전 앙카라스포르시절 로고와 2020년 9월 7일까지 오스만르스포르 로고.

2014-15 시즌부터 오스만르스포르라는 뜬금없는 이름으로 바꾸는 바람에 모두 다 황당해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기존 앙카라스포르와 어떠한 연관도 있는 것도 아닌 터라 결국 수없는 반발을 불러왔고 이 과정에서 서포터들의 탈퇴도 이루어진다. 현재 팬덤은 예전 앙카라스포르시절보다는 많이 축소된 상태. 그리고 남아있는 서포터들은 아직도 예전 서포터이름인 "겐츠 레오파르라르"(젊은 레오파드들)를 그대로 유지하고있다. 하지만 이들도 여전히 현 오스만르스포르라는 이름에 불만이 많다. 그리고 새로 유입된 팬층과 충돌이 잦은편. 아무래도 현재 튀르키예 정부 수반이며, 권위주의적인 정치적 이슬람주의로 많은 비판을 받고, 또 이와는 별개로 축빠이기도 한 에르도안의 입김이 노골적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는 오스만르스포르의 구단주이자 앙카라 광역시의 도지사인 멜리흐 괵첵(Melih Gökçek)[5]이 집권여당인 정의개발당(AKP) 소속이고 동시에 신 오스만주의자라서 그렇다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구단행사마다 오스만 제국 시절 휘장이나 깃발을 든 팬들[6]이 많이 보이고있다. 웃기기 짝이 없는건 사실 오스만 제국 역사 항목으로 들어가 보면 나오는 설명이지만, 실제로 현대 튀르키예인들이 선망하며 동경하는 전성기 15~17세기 시절의 오스만 제국은 기본적으로 지배 계층은 앙카라가 위치한 현대 아나톨리아 반도 내륙의 튀르크계가 아닌 서부 해안지방과 현대 발칸 반도, 그리스 지방의 이슬람으로 개종 한 토착 그리스, 슬라브계 기독교인들의 후손이었고, 종교적으로도 굉장히 널널한 편이었다. 이슬람 제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오스만이 부각하기 시작한 건 서구 열강에게 마구 걷어 차이며 유럽의 환자 소리 듣던 19세기의 일이고, 그 와중에 또 튀르크인들의 제국으로서 한층 더 작금 에르도안 정부와 현대 튀르키예 민족주의의 입맛에 맞는 정체성의 변화는 제국의 끝자락인 19세기 말, 20세기에 들어서나 주장하기 시작한 이데올로기다.

당연한 말이지만 축구팬들이나 권위주의적 에르도안 정부나 이런 불편한 역사적 디테일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 동네 역사 조금 아는 사람들이라면 알법한 사실이지만, 앙카라는 사실 오스만 제국 시절때는 듣보잡 촌동네까진 아니라 해도[7] 인근에 카이세리콘야에 비해서도 중요성이 떨어지는 크게 발달한 지역은 아니었다.[8] 반면 튀르키예 독립 전쟁 이후 앙카라 수도 천도는 오스만 제국 이후 공화국 튀르키예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상징하다시피한 사건이다. 따라서 앙카라도 친에르도안, 정의개발당 성향 사람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도시 전반적인 분위기와 정치적 성향으론 케말리즘, 세속주의, 그리고 오스만 제국보단 근현대 공화국 튀르키예로서 정체성을 더 강조하는 편인지라 난대없이 번지수도 틀린 오스만제국 드립은 현지인들에게 전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모양이다.

또한 유니폼에도 오스만제국 양식 문양을 넣거나, 경기 전 선수들을 모아두고 오스만 제국 군악대 복장을 한 의장대를 불러두고 오스만 제국 군가를 연주시킨다든가(....), 경기중에도 그 군악대가 군가 연주를 하거나(...) 서포터들의 깃발이 예전 오스만 제국 시대 깃발이든가, 경기장에다 오스만 제국 시대 혹은 이전 튀르크계 여러 국가들 깃발을 장식하는 등 갖가지 기행을 보여주고 있다(...)

우습게도 16-17 시즌 유로파리그 32강에서 만난 상대가 올림피아코스. 그리스 리그 최대 인기팀으로 오스만 제국에게 지배당한 굴욕을 가진 그리스 팀에게 오스만 제국 역사를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오스만르스포르랑 만난 셈이다.

이에 튀르키예 웹에서 여러 종류의 드립이 터져나오고 있는데, 몇 가지 소개하면....
파일:external/static7.bobiler.org/osmanlispor--bdfha2w2.jpg
본격_위엄쩌는_선수명단.jpg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무려 오스만 가지, 오르한 가지, 무라트 1세, 이을드름 바예지트, 무라트 4세, 마흐무트 2세, 압뒬하미트 2세, 셀림 3세, Genç 오스만, 카누니,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 그리고 코치에 '오스만 가지' 의 아버지인 에르투으룰 가지. '야우즈 셀림' 이 빠진 것이 의문이지만, 이만 하면 오스만 제국 창건부터 멸망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군주들은 총출동한... 아니, 출동한 셈이다.[9]

파일:external/static2.bobiler.org/osmanlispor--cjrwv2rb.jpg
오스만 제국군 대 아스날 FC.
위의 그림에서 왼쪽은 유럽 각국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튀르키예 사극 드라마 위대한 세기의 코믹스판 삽화로 남주인공 쉴레이만 대제헝가리를 정복하는 오스만 제국군이다.

파일:external/static3.bobiler.org/osmanlispor--vy95z3ji.jpg
들것을_타고_가시는_황제폐하.jpg
들것에 실려 가는 사람은 오스만 제국의 황제 셀림 3세.

파일:external/beabb4a23250d5d8c073898faa3f69e9a06c0f99fe6ff76681b7e26b1e8cadd9.jpg
검을 들고 공을 차려고 하는 예니체리 전용 군악대 메흐테르(mehter).

파일:external/static2.bobiler.org/osmanlispor--s0o3bg15.jpg
축구장에_친림하신_황제폐하.jpg
알렉스 퍼거슨과 맨유 선수단 옆에서 허리에 찬 검에 손을 올리고 있는 사람은 제국의 창건자 오스만 1세이다. 위의 셀림 3세나 이쪽의 오스만이나, 지극히 멀쩡한 초상화에서 끌려나오셨다(...).

파일:external/www.ajanshaber.com/114717_94478.jpg
오스만르 스포르의 공식유니폼이라고 한다(...) 왼쪽은 홈, 오른쪽은 어웨이 유니폼(...)

하지만 2020년 9월 이후로 앙카라스포르로 이름을 되돌리고 로고까지 새롭게 바꾸면서 옛날 밈이 되어버렸다.

4. 리그 소속 기간

  • 1부/쉬페르리그: 2004-2010, 2015-2018 (9시즌)
  • 2부/1.리그: 1997-2004, 2013-2015, 2018-2021 (12시즌)
  • 3부/2.리그: 1996-1997, 2021- (4시즌)


[1] 2011년 6월 29일 재가입.[2] 줄여서 앙카라스포르[3] 원래는 파랑-하양색, 파란 레오파드라는 별명이 있었다.[4] 하지만 인터토토컵에서 슬로바키아의 두브니카에게 1,2차전 합계 1-4로 패했다.[5] 참고로 굉장히 무능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하수 시설 정비를 제대로 안 해서 해발고도가 800미터에 육박하는 앙카라에서, 비만 내렸다 하면 지하차도부터 시작해서 보도까지 침수사태가 벌어져 도시 전체가 물바다가 되는게 연례행사처럼 열리는데, 때문에 '사실 저놈은 앙카라 도지사가 아니라 오스만 해군 총사령관이다.' 라며 붙인 별명이 Kaptan-ı Derya Melih Paşa (해군 총사령관 멜리흐 파샤)이다(...)[6] 일부 동원된 공무원이라는 얘기도 나도는 중이다.[7] 인구가 한 2만에서 5만대 정도를 왔다갔다했는데 16-17세기 기준으론 이정도는 나름 중요한 지방 도시쯤은 된다.[8] 이래서 가끔 앙카라 자체가 완전 근대에 생긴 도시로 잘못아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사실 인류가 제대로 정착해서 땅을 일군 역사 자체는 오히려 이스탄불보다 더 깊으면 깊지 역사가 짦은 곳은 아니다. 당장 앙카라 인근 중부 아나톨리아 일대 자체가 고대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를 비롯한 수많은 고고학적 발굴현장이 넘치는 동네인데 역사가 짦을리가. 다만 앙카라 자체로 보면 중세 전성기에 튀르크족의 대대적 아나톨리아 진출 이후 하루가 멀다고 주인이 바뀌는 군사변경지가 되어 황폐해지고, 훗날 이 지역 전체를 평정한 오스만 제국도 동로마 제국과 비슷하게 아나톨리아 해안도시들과 루멜리아, 즉 유럽쪽 발칸 땅을 더 중요시하고 아나톨리아 내륙은 크게 관심가지지 않았던지라 한 국가의 수도 같은 중요한 대도시로서 역할은 근대에 와서야 생긴게 맞다.[9] 참고삼아 오스만 제국 역사에 대해 덧붙이면 독립된 나라를 세우지는 못했지만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 '에르투으룰 가지' 이고, 창건자인 '오스만 가지' 와 그 뒤를 이어 나라를 꾸준히 발전시킨 '오르한 가지', '무라트 1세', '이을드름 바예지드' 가 모두 끌려나왔다. 또 투르크족 중심의 왕국 오스만 투르크를 제국으로 다시 세운 사람이 '파티흐 술탄 메메드' 이고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룬 인물이 '카누니'. 그리고 'Genç 오스만' 과 '무라트 4세' 는 사람에 따라 평이 다를 수 있겠으나 17세기에 들어 제국이 막장 테크를 타는 와중에도 몇 안 되는 명군들이었다고 할 수 있고, '셀림 3세' 와 '마흐무트 2세' 는 오스만 제국의 대표적인 개혁 군주들이다. 마지막으로 '압뒬하미트 2세' 는 오스만 제국 최후의 전제군주로,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도 잠깐 나오는 청년 튀르크당에 의해 폐위당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