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8 07:53:55

옥셀로두눔 공방전

갈리아 전쟁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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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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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51년,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카두키족이 농성하는 옥셀로두눔을 포위 공격한 공성전이다. 갈리아 전쟁 최후의 전투였다.

2. 상세

기원전 52년 10월,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1개월 동안 이어진 알레시아 전투 끝에 갈리아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베르킨게토릭스의 항복을 받아냈다. 전의가 꺾인 갈리아인들은 카이사르에게 사절을 보내 항복했고, 카이사르는 전 부대를 갈리아 각지에 숙영케 한 뒤, 다음해엔 갈리아에서 전후 처리를 하기로 했다. 이듬해(기원전 51년) 벨로바키족, 비투리게스족 등의 준동을 모조리 제압한 로마군은 뒤이어 갈리아 남부에 거주하면서 로마와 동맹을 맺은 픽토네스족을 공격한 안데스족을 응징했다. 이때 카두키족이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를 침범하자,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가 이들을 제압하러 출격했다.

카두키 족장 루테리우스와 세노네스족 출신의 드라페스는 연합군을 형성한 뒤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로 진군하고 있다가 로마군이 추격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옥셀로두눔으로 피신했다. 욱셀로두눔은 강력한 요새였다. 마을은 돌멩이와 자갈이 많은 언덕 위에 건설되었으며, 도르도뉴 강에 둘러싸여 있었다. 도시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의 폭은 300피트밖에 되지 않았고, 도시 인근에 천연 샘이 있었기에 수비대가 주기적으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카니니우스는 이 까다로운 곳을 공격하기엔 병력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2개 군단과 보조병들을 시켜 근처의 고지대에 3개의 진지를 건설하고, 마을 주변에 방벽을 설치하기로 했다.

루테리우스와 드라페스는 장기전을 준비하고자 인근 농경지로부터 식량을 대거 공출했다. 그러다가 로마군이 옥셀로두눔 주변을 완전히 봉쇄하자, 두 사람은 이를 돌파하기 위한 계획을 짰다. 드라페스는 병력 절반을 이끌고 진영을 지키며, 루테리우스는 나머지 절반을 이끌고 보급품 수송대를 지키기로 했다. 그러나 루테리우스의 호송대는 로마군에게 발각되었고, 새벽에 로마군의 기습을 받았다.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루테리우스는 옥셀로두눔으로 돌아가는 대신 다른 곳으로 달아났다가 나중에 붙잡혀 로마군에게 넘겨졌다.

카니니우스는 여세를 몰아 기병대와 게르만족 보조병을 이끌고 드라페스의 진영을 공격했다. 게르만인들이 먼저 도착한 뒤 나머지 병력이 따라잡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공격했다. 카니니우스는 뒤늦게 도착한 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걸 확인하고, 군단을 편성해 게르만인들을 돕도록 했다. 이로 인해 카두키족은 대거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고, 드라페스 역시 포로로 잡혔다. 그는 공성전이 끝날 무렵에 카이사르에게 더 심한 처벌을 받을 걸 두려워해 음식을 먹지 않다가 굶어죽었다.

다음날 루아르에서 갈리아 반란군을 물리친 가이우스 파비우스가 25개 코호트를 이끌고 카니니우스와 합세했다. 이리하여 로마군은 4.5 군단을 확보해, 공성전을 벌이기에 충분한 병력이 되었다. 한편, 카이사르는 카니니우스로부터 공략이 임박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가 도우지 않아도 곧 승리할 것은 분명했지만, 그는 옥셀로두눔 공성전을 직접 지휘하기로 했다. 갈리아에서의 지휘권이 다음해 여름에 만료될 예정이었으므로, 자신이 떠나자마자 갈리아에서 새로운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옥셀로두눔 수비대를 본보기로 삼을 작정이었다.

카이사르는 현장에 도착한 뒤 옥셀로두눔의 물 공급을 차단하기로 했다. 먼저 도르도뉴 강변에 궁수와 투석병을 대거 배치해 카두키족이 물을 길어오려고 접근하는 걸 막게 했다. 이후 마을쪽에서 나는 천연 샘마저 차단하기 위해 60피트 높이의 거대한 언덕을 만들고 그 위에 10층 높이의 탑을 세운 뒤, 그 탑 꼭대기에서 샘으로 가는 길을 향해 원거리 무기를 퍼붓게 했다. 이에 옥셀로두눔 수비대는 탑을 불태우고자 마른 나무로 가득찬 통들에 불을 일으켜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뜨려 화재를 일으키게 했다. 이와 동시에, 수비대는 탑을 지키는 로마군을 공격해 불을 끄지 못하게 만들려고 했다. 이에 카이사르는 마을 성벽으로 향하는 언덕 비탈을 향해 위장 공세를 가하도록 했다. 수비대는 깜짝 놀라 도시 내로 돌아갔고, 로마군은 이 틈을 타 불을 껐다.

카이사르는 여기에 더해 샘의 근원을 찾고자 터널 공사를 시행했다. 로마군은 샘의 근원을 찾아내 끊어버렸고, 샘은 곧 말라버렸다. 옥셀로두눔 수비대는 이로 인해 물부족에 시달리다가 결국 항복했다. 카이사르는 항복한 남자들의 양손을 자르고 가고 싶은 곳에 가도록 했다. 그 후 아키타니아로 이동하여 늦은 여름을 보내며 갈리아인들의 동태를 살핀 뒤, 갈리아인들이 더이상 반란을 일으킬 마음이 없다는 게 분명해지자 로마 속주의 나르보를 방문한 후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에서 겨울을 보냈다. 이리하여 갈리아는 로마의 속주로 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