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21 02:56:53

왕춘량

파일:왕춘량.png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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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중식 1세대의 전설적인 셰프. 밑에서 배운 사람은 대표적으로 중화요리 대가로 꼽히는 여경래, 왕육성[1]등이 있다.

2020년대 현재에는 미국에서 중식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 상세

1960년대부터 중식 요리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중화요리를 시작했는데, 22세가 되면서 이미 유명한 중식 요리사가 되었다. 왕춘량에게 중식을 배우고 레전드로 불리는 중식 셰프들이 아주 많은데, 대표적으로 여경래, 왕육성 셰프 등.

중식을 공부하다가 일본으로 넘어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의 중식 요리는 일본화된 중국 요리에 영향[2]을 많이 받았는데, 이는 모두 왕춘량을 포함해 조창인[3], 후덕죽 등 당시 많은 대한민국 중식 1세대들이 일본으로 넘어가 배워 왔으며 그 영향으로 한국의 중국 요리가 일본화된 중국 요리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즉 현재의 한국의 중식은 대체로 일본으로 넘어가 배워왔던 대한민국 중식 1세대들의 계보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1970년 동부이촌동 중식 레스토랑 홍보석[4]이라는 중식 레스토랑이 오픈하면서 왕춘량을 데려왔고 절정의 전성기를 누렸다. 왕춘량은 홍보석의 칼판장으로 주방을 진두지휘하면서 당대 최고라고 불렸다. 이때 아직까지 사천식 요리가 한국에 없었는데 홍보석이 직접 사천 요리사[5]를 초청하여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한국 중식 요리에 두반장이 등장했다.

대한민국의 중식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임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한창 잘 나가던 1982년에 미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대단히 큰 레스토랑에서 연락이 와서 계약을 맺어 넘어갔다.[6] 계속해서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틀림없이 중화요리 대가 중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1] 황진선의 사부이자, 코리아나 호텔 '대상해'의 오너 셰프 출신이며 국내 중식 레스토랑 진진의 대표이자 중화요리 대가로 1970년 동부이촌동 중식 레스토랑 홍보석출신이며 홍보석은 사천 중화요리를 처음으로 선보였던 중식 레스토랑으로 홍보석의 칼판장이자 대한민국 중식 1세대의 전설적인 셰프 왕춘량과는 사제지간이면서 서로 동창친구사이다. 또한 동시에 명동 사보이 호텔 중식당 <호화대반점> 출신이며 이연복의 선배로 왕육성이 5년 선배이며 이 둘은 한국 중식1세대이자 중화요리계의 전설로 일컬어지며 현존하는 최고령 요리사이자 명동 사보이 호텔 중식당 <호화대반점> 오픈&총주방장 장홍기 밑에서 중식을 배웠다.[2] 왕춘량만 아닌 여경래의 또 다른 스승이자 같은 중식 1세대이자 중식 대가 신 중화요리 4대 문파 봉황•개명후의 이름은 타이판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 금룡(그랜드 워커힐 서울), 강남 대려도,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서궁 중에서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서궁의 조창인, 여경래의 동생 여경옥의 스승 후덕죽 역시 일본으로 넘어가 배웠으며 왕춘량, 조창인, 후덕죽을 포함한 당시 많은 대한민국 중식 1세대들이 일본으로 넘어가 배워 왔으며 한국의 중국 요리가 일본화된 중국 요리에 영향을 많이 받은 이유 이다.[3] 여경래의 스승 중 한 명으로 대한민국 중식 1세대이자 중식 대가로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서궁 출신의 주방장으로 여경래도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서궁 출신이면서 조창인 밑에서 중식을 배웠다.[4] 흔히 중화요리 4대 문파로 1920년 소공동 아서원, 신라호텔 팔선, 명동 사보이호텔 호화대반점,1970년 동부이촌동 홍보석 이렇게 꼽히며 홍보석은 1970년 동부이촌동에서 사천 중화요리를 처음으로 선보인 중화 레스토랑으로 당시 많은 요리사들에게 꿈의 식당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남진, 앙드레 김 등 당시 유명 연예인과 동부이촌동 신흥 부자들의 아지트였다.[5] 당시 중국과는 국교를 맺기 이전이므로, 일본이나 대만의 화교 출신 요리사가 아닌가 추측된다.[6] 1980년대에 미국의 레스토랑에서 한국의 요리사에게 중식 요리를 맡기고자 연락했다는 것 자체가 당시엔 어마어마한 일이다.